본래 마음
안개 뒤의 푸른 산을 보라
산도, 들도, 나무도, 스님들도 동안거에 들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잘 성장할 수 있다.
이때 주저앉거나 피한다면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꽃 피는 봄은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오랫동안 산에
살다 보면 산의 아름다움과 변화들을
가슴으로 바라보고 좋아하게 된다.
그렇다고 산이 날마다 환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안개에 싸여 산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이럴 때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미안하다.
마치 무언가 소중한 것을 나만 보고 남에게는
감춰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흰구름 같은 번뇌는
우리가 매 순간 만드는 것들
山 山 水 水
처음 온 사람에게 안개 속의 산을 설명할 길이 없다. 잘 찍은 사진을 보여줘도 실감하는 표정은 아니다. 산이 안 보인다고 산이 없는 것은 아닌데, 구름에 싸여 있으면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할 뿐이다. 임제 선사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지 마오.
산도 물도 그대로 한가하니
서방 극락세계 묻지도 마소.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是是非非都不關
山山水水任自閑
莫問西天安養國
白雲斷處有靑山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이 그대로 드러나듯 마음 또한 그러하다. 흰 구름과 같은 번뇌는 우리가 매 순간 만드는 것들이다. 눈, 귀, 코, 혀, 피부, 분별 의식에서 쏟아지는 욕심과 나와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갖가지 감정들(칠정七情 - 기쁨·성냄·슬픔·즐거움·미움·두려움·사랑), 그리고 과거의 경험들이 무의식에 저장이 되고 그 경험들이 하나의 고정된 생각이 되어 현재 의식을 방해하는 구름이 된다. 《화엄경華嚴經》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시고 처음으로 내놓은 말씀이 있다.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일체중생이 여래와 같은 지혜智慧와 덕상德相, 자비심이 있건만 분별망상으로 인해 알지 못하는구나.”
이 말씀은 누구나 본래 부처라는 선언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내용은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 대사의 어록에도 나온다.
“중생과 성인은 동일한 진성眞性, 참성품을 가지고 있다. 다만 중생은 객진번뇌客塵煩惱, 번뇌는 본래부터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와 청정한 마음을 더럽힌다는 뜻로 말미암아 그것을 모를 뿐이다. 객진번뇌는 벽관壁觀, 번뇌가 들어올 수 없도록 마음을 집중하여 벽과 같이 함을 통해 없앨 수 있다.”
수행을 통해서 번뇌 망상을 내려놓으면 성인과 그 깨달음이 같다는 말이다. 얼마 전 태국의 아잔 차 스님의 《마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첫머리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마음으로 말하면 마음에는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 마음은 본래 깨끗하고 마음 안은 이미 고요하다. 요즘 들어 마음이 고요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마음이 감정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본래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다. …… 기쁨도 슬픔도 마음이 아니며 그 어느 것도 마음의 본질이 아니다.”
이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선禪의 스승들은 한결같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본래 마음에 기준을 두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의 경험이나 자신의 추측, 상상하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는 무아적 관점, 그리고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모든 것은 홀로 있을 수 없다는 연기緣起적 통찰이 살아있어야 지혜가 나온다. 그런 지혜의 마음을 늘 살아있게 쓰는 것이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자재한 삶으로 가꾸는 것이다.
결국 모든 대상의 본질을 본다는 것은 밝은 눈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밝은 눈으로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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