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싸움에서 이기는 법
Q 싸움에서 이기는 법 비공개저는 초등학교 5학년인데 곧 싸움을 해야 돼요. 제 상대는 몸무게 55에 키는 160이나 돼요. 태권도를 잘해서 전교에서 알아줘요.전학 온 지 2주밖에 안 됐는데 그 애가 자꾸 머리를 때리고 남으라고 해요. 지금까지는 수업 끝나자마자 도망쳤는데요. 앉는 자리를 내일 바꿔요. 뒷문에서 멀어지면 끝장이에요. 우리 반은 4층이라서 창문으로 튈 수도 없어요. 작은 애가 큰 애를 이길 수 있는 비법이 있을까요?답변 채택되면 제가 가진 포인트 다 드릴게요.
A re : 싸움에서 이기는 법 다덤벼나는 올해 장원 초등학교를 먹은 6학년이다. 못 믿겠으면 찾아와도 좋다.불쌍하니까 비법을 알려 준다. 싸울 때는 무조건 안 우는 게 중요하다.안 울려면 먼저 때려야 된다. 때리고 그놈이 반격하기 전에 또 때려라.한군데만 계속 때리면 누구든 운다. 싸움은 울면 끝이다.
울지 않는 거라면 자신 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조용한 날이 드물 정도로 날마다 꾸준히 싸웠다. 돈 때문에 싸우고, 술 때문에 싸우고, 망했다고 싸웠다. 그러다가 3년 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날 편지를 한 통씩 남겨 두고 집을 나갔다.
엄마 편지에는 아빠 말을 잘 들으라고 쓰여 있었고 아빠 편지에는 엄마 말을 잘 들으라고 쓰여 있었다. 둘 다 전화번호도 바꿔 버렸다. 평소에는 서로를 절대 믿지 않더니 마지막에만 서로 나를 책임질 거라고 믿어 버린 것이다.
나는 빈집에서 혼자 울었다. 눈물이 말라 눈까풀이 달라붙고 목이 쉬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어서 다음 날 삼촌이 찾아왔을 때에는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평생 울 걸 그때 다 울었기 때문에 그 뒤로 절대 울지 않았다. 울면 엄마 아빠한테 지는 것 같아서 크리스마스나 운동회 같은 날은 일부러 눈을 부릅뜨고 다녔다. 하지만 김진기한테 맞고도 안 울 수 있을까?
A re : 싸움에서 이기는 법 보이지않는주먹나는 중학교 2학년인데 우리 학교에서 노는 쪽으로 알아주는 편이야.싸움을 잘하려면 권투를 배우는 게 좋아. 권투를 하면 상대편 주먹이 보이는데 그럼 게임 끝나는 거야. 넌 권투 배울 시간이 없으니까 비법을 알려 줄게.싸울 때 코를 노려. 코뼈는 잘 부러져서 돈이 많이 들지만 코뼈 킬러라고소문이 나면 아무도 안 건드린다. 포인트 부탁해.
내 코를 만져 보았다. 코끝은 말랑말랑한데 콧등은 뼈 때문에 딱딱했다. 콧구멍을 때려서 코뼈는 안 부러지고 코피만 나게 할 수는 없을까? 시험 삼아 내 코를 때려 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코도 절반만 때리기 어려운데 남의 코를 정확하게 때리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A re : 싸움에서 이기는 법 혼자사는인생시험 잘 보려고 문제집을 많이 풀듯 싸움을 잘하려면 사람을 많이 때려 봐야 합니다. 먼저 반에서 가장 만만한 애를 불러서 팔뚝이나 허벅지를 때려요.꾸준히 때리면 감각이 생기죠. 그다음에는 두 번째 만만한 애를 때려요.그렇게 차근차근 끝까지 올라가면 님은 학교 최고 주먹이 될 거예요.
만만한 애를 생각했더니 송인주가 떠올랐다. 인주는 전학 와서 혼자인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주었다. 급식실에서 가끔 밥도 같이 먹어 주었다. 하나뿐인 친구를 때릴 수는 없다.
A re : 싸움에서 이기는 법 발차기왕이건 백 퍼센트 경험담입니다. 먼저 발끝으로 거시기를 찹니다. 세게 차면거시기가 터지니까 적당하게 차야 합니다. 맞은 애는 자동으로 거시기를 잡고 몸을 웅크립니다. 그때 발꿈치로 등을 찍습니다. 그러면 옆으로 쓰러지는데이때 발바닥으로 옆구리를 찹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군데를 맞으면고릴라도 쓰러집니다. 그다음에 한마디 하면 됩니다.“손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상대의 기까지 죽여야 완벽한 승리입니다.
‘발차기왕’은 내가 올린 질문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것 같았다. 김진기는 태권도를 잘하고 다리도 길다. 김진기가 이 기술을 알고 있다면 거시기가 터질 사람은 나다.
A re : 싸움에서 이기는 법 불신지옥예수님께서는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까지 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악마의 방법입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방법이 여기 있습니다. 91XX-9191로 전화 주세요. 원수를 사랑하게 됩니다.
나는 김진기에게 어느 쪽 뺨도 내주기 싫다. 김진기를 사랑하는 건 더더욱 싫다.
답변을 수십 개나 읽었지만 내용이 비슷했다. 어떤 답변은 말다툼이 붙어서 댓글이 수십 개나 이어져 있었다.
싸움에는 권투가 기본이다. 아니다. 발차기가 강한 킥복싱이 더 세다. 발차기라면 태권도가 최고다. 태권도는 스포츠지 실전 무술이 아니다. 다들 검도의 위력을 모르는군. 무기를 쓰는 검도는 빠져라. 안 그러면 펜싱이나 양궁까지 들어오게 된다. 이기면 땡이지 싸움에 규칙이 어디 있냐? 그럼 사격을 넣어도 되냐?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까부터 반말인데 너 몇 살이냐? 알아서 뭐할래, 늙은 게 자랑이냐? 등등.
무술 전문가들이 모여들어 패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도 어딘가에 비결이 있을 것 같아 열심히 읽다가 눈에 띄는 글을 보았다.
A re : 싸움에서 이기는 법 모래요정누군가 널 괴롭힌다면, 싸우기 싫은데 싸워야 한다면, 어차피 맞을 거라면,주머니 속에 모래 한 줌 넣었다가 그놈 얼굴에 확 뿌려 버려라.어차피 너는 두들겨 맞게 되어 있다. 모래 한 줌이 딱 한 번 승리를 가져다줄거다. 큰 반칙을 하는 놈에게 하는 작은 반칙은 신도 용서해 준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불쌍한 자식아.
‘모래요정’도 나 같은 경험이 있는 걸까? 하지만 모래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싶었다.
A re : 싸움에서 이기는 법 청소년의친구안녕하세요. 청소년의친구 고민상담센터입니다. 우리 친구가 원하지 않는 싸움을 하게 된 모양이군요.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물어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거랍니다.폭력으로 폭력을 해결하려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잘 참은 것처럼 조금 더 참고싸움을 거는 친구와 상대를 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무조건 참으라는 건 아닙니다.괴롭히지 말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세요.그래도 계속 괴롭힌다면 부모님과 선생님, 혹은 경찰서, 검찰청, 교육청, 폭력예방재단에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이기는 건 어떨까요?괴롭히는 친구보다 공부를 더 잘하거나 반에서 더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 뛰어난 특기나 취미를 갖는 것도 좋겠네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 괴롭혀도 ‘나는 괜찮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갖는 겁니다. 싸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요. 또 다른 싸움을 부르고 불러서 결국 누군가 크게 다치게 되지요. 싸우려는 친구에게 물어보세요.“우린 왜 싸우는 거지? 정말 싸워야 하는 걸까? 친하게 지낼 수는 없을까?”둘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싸울 이유가 없다는 걸 발견할 거예요. 우리 친구는 다른 사람에게상처를 주지 않고 이 위기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응원할 테니 힘내세요! 우리 친구 파이팅!
좋은 말이긴 한데 읽고 나니까 남는 게 없었다. ‘우리 친구 파이팅!’을 외치는 어른들은 진짜 세상을 모른다. 싸우고 싸우지 않고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댓글을 다 읽었지만 내가 원하는 비법은 없었다. 고민하다가 결국 ‘모래요정’에게 포인트를 주었다. 마음에 남은 말 때문이었다.
‘반칙은 저쪽에서 먼저 했다는 것, 그러니 모래 한 줌 쥐고 살아남으라는 것.’
새로 앉게 된 자리는 뒷문에서 먼 교실 안쪽이었다.
“야, 이소령! 오늘은 도망 못 가겠지? 끝나고 체육관 뒤로 와라.”
김진기는 뒷문을 지키는 저승사자 같았다.
점심시간에 돈가스와 요구르트가 나왔지만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송인주가 나를 지나치며 속삭였다.
“할 말 있으니까 도서관으로 와.”
도서관에 갔더니 조금 있다가 송인주가 나타났다.
“너 김진기한테 완전 엎드려야 돼. 뻣뻣하니까 자꾸 찍히지.”
내가 뻣뻣한지 부드러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왜 김진기한테 엎드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송인주가 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유부초밥 사건 잊었어?”
그러고 보니까 기억이 났다. 전학 온 날 점심시간에 유부초밥이 나왔다. 나는 그때 유부초밥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 엄마도, 삼촌도 나한테 유부초밥을 해 주거나 사 준 적이 없다. 감자처럼 생긴 걸 받았는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식탁에 앉아 젓가락으로 꾹 눌러 보며 혼잣말을 했다.
“감잔가?”
옆에 있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입에서 밥알이 튀어나온 아이도 있었다. 시끄럽던 급식실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저쪽에서 누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뭐라고 했어?”
알고 보니 전교 최강 주먹이며 6학년도 안 건드리는 김진기였다. 큰 소리로 웃던 아이들이 마술처럼 조용해졌다.
“빨리 말 안 해? 방금 뭐라고 했냐고?”
내 옆 아이들이 하나둘 식판을 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감잔가?’라고 했어.”
김진기가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식탁을 엎을 것 같았는데 다행히 담임선생님이 불러서 그냥 지나갔다.
그날 김진기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궁금했다. 송인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교생 앞에서 김진기 별명 불렀잖아.”
“안 불렀어. 도대체 별명이 뭔데?”
송인주가 주위를 살피더니 속삭였다.
“감잔가?”
“뭐?”
“김진기 별명이 ‘감잔가’야.”
송인주가 설명했다.
“김진기는 그 별명 엄청 싫어해. 3학년 1학기 첫날에 자음만 적어서 이름 알아맞히기 놀이 했는데 어떤 애가 ㄱㅈㄱ를 감잔가라고 읽었거든.”
“난 정말 모르고 한 거야.”
나는 이상한 별명을 지은 애가 갑자기 미워졌다. 그 애 때문에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니까.
“그 별명 지은 애 누구야?”
“김진기한테 찍혀서 4학년 때 전학 갔어.”
누군가 등에 얼음물을 부은 것 같았다. 자동차에 치인 고양이를 본 것 같은 얼굴로 송인주가 물었다.
“너 어쩔래?”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나 어떡하지?
수업 시작종이 울렸지만 도저히 교실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지금 들어가면 절대 도망갈 수가 없다. 나는 들키지 않게 허리를 숙이고 우리 반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신었다. 밖으로 나와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렸다. 교문에 서 있던 학교 보안관 할아버지가 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늘은 수요일, 삼촌이 동산 아파트 후문에서 장사를 하는 날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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