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얼굴가을은 추사에게 당도하는 초의의 서신처럼 누군가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의 눈빛으로 오는가 추사가 그랬다지 그대 나를 걱정하는 편지 더는 보내지 말라고 초의가 보내온 차 한 줌 우려 마시면서 추사는 뭍에 사는 이의 뜻을 다 알아챘으리 마루에 홀로 앉아 여기 내려앉는 고요를 다 마시듯이 가을 저녁은 사막처럼 적막하지 하지만 한 점 바람이 취꽃들의 사금파리 같은 얼굴들을 흔들고 급기야 마당 앞의 대추나무 미친 듯 춤추게 하는 회오리바람도 왔다 가리라 마루에 깍지 끼고 누운 사람도 낯선 꿈꾸며 그날 밤의 잠을 청하게 되리라가을밤다시 밤이 오는구나강물은 흘러가도쉼 없이 흘러오는 것처럼별빛은 흘러내려오늘이 영원임을 말하려는 것처럼우리의 끝이란영원으로 가는 한 정거장오래된 의자에 앉은 사람처럼고독은 오일장마다 찾아오는구나어느 가을햇살 반짝거리던 날그대가 하이힐을 손에 든 채플란넬스커트를 살짝 추켜잡고냇물을 건너 내게 오던 기억은이제 어둔 밤하늘의 별자리처럼아련하여라밤도 고독도깊어질 대로 깊어져곳간에서 발효하는 액젓처럼삶의 저 밑바닥부터부글부글 끓는구나소진자정 너머별빛 이슬과 함께 내릴 때섬진강변 집에 들어가아궁이에 불 피우고나무토막을 던져 넣었다논가 한 샌* 집이 불에 타무너져 내린 잔해들이었다한 집안의 세간모조리 태워 버리고세세토록 전해져 온그 집의 내력까지 소진하고이제 이웃에 이사 온한 사내의 아궁이에 던져지는구나남의 집 태우는 거 같아기진맥진해져서죽은 듯이 잠들었다새벽녘 요 아래 손을 넣어 봤더니따뜻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한 마음이 쓰러지는 데에서한 마음이 일어나는 거였다* 생원生員의 전라도 사투리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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