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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바보
2009년 봄이었다. 동네 서점에서 특별 진열대를 보았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서점과 출판사들이 과학교양서를 알리려고 만든 서가였다. 선 채로 책을 뒤적이다가 세 권을 골랐다.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파인만!』. ‘이렇게 열심히 홍보하는데 명색이 글 쓴다는 내가 그냥 지나치면 되겠다. 교양인이라면 과학도 좀 알아야지.’ 의무감 반 허영심 반으로 한 일이었다. 과학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코스모스』와 『이기적 유전자』는 저자 세이건Carl Sagan, 1934~1996과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은 그날 처음 알았다. 그런데도 구술 자서전 『파인만!』을 집어든 건 가벼운 읽을거리 같아서였다. 그 책에는 최초의 핵폭탄 폭발 실험을 비롯해 과학의 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을 진지하게 회고한 대목도 있었지만, 죽음을 앞둔 여인과 결혼한 경위, 암산 시합에서 일본인 주산 마스터를 이긴 요령, 술집에서 여자를 유혹한 방법, 금고 따기로 동료들을 놀라게 한 비법 같은 사생활 일화가 더 많았다. 그런데 거기에서 생각하지 못한 문장을 보았다.
토론회에는 거만한 바보가 많았고, 그들이 나를 궁지에 몰았다. 바보는 나쁘지 않다. 대화할 수 있고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는 거만한 바보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정직한 바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직하지 않은 바보는 골칫거리다! 나는 토론회에서 거만한 바보를 무더기로 만났고 아주 낭패했다. 다시는 학제적 토론회에 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거만한 바보’는 역사학자·사회학자·법률가·신학자들이다. 파인만은 흔한 물리학자가 아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천재였고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뒤를 이은 ‘과학 셀럽’이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최초의 핵폭탄을 제조한 맨해튼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첫 핵폭발 실험을 현장에서 보았다. 양자전기역학과 입자물리학을 비롯한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업적을 냈다. 1965년 다른 두 과학자와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을 때 놀라는 이가 없었을 정도였다. 이륙 직후 폭발해 승무원 일곱 명이 전원 사망한 1986년의 미국 챌린저 우주왕복선 사고 원인을 규명해 세계인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왜 인문학자를 그토록 혹독하게 비난했을까?
파인만은 1970년대에 과학자들이 잘 하지 않는 활동을 했다.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라든가 핵폭탄의 윤리적 쟁점 같은 문제를 연구하면서 강연회와 토론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공개한 것이다. 그가 인문학자들과 다툰 사건은 ‘평등의 윤리’를 주제로 뉴욕에서 열린 ‘학제적’ 토론회에서 일어났다. ‘학제적’이란 평소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인문학자와 과학자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뜻이다. 파인만은 그 토론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주최자가 미리 보내준 도서목록에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토론회에서 듣기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교육에서 평등의 윤리’라는 주제 자체가 모호해 토론자들이 아무 말이나 막 해도 주제와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주제를 명확하게 정의해 엉뚱한 이야기를 걸러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호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지막 평가모임에서 주최 측은 ‘우리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을 개발했는가’라는 주제를 제안했다. 파인만은 솔직하게 의견을 말했다. ‘평등의 윤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자기 관점에만 집착했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를 한 게 아니라 혼돈을 만들었다고 했다. 다른 참가자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반박하자 파인만은 그들이 자신을 조롱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회고록에 ‘뒤끝 작렬’ 촌평을 남겼다. “그들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믿는 거만한 바보였다.”
나는 파인만을 의심했다. ‘너무 나간 것 아닌가?’ 문과여서 그런지 반감도 들었다. ‘그래, 파인만 선생은 물리학 천재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진리를 아는 건 아니지 않나? 오류는 누구나 범할 수 있지. 인문학은 원래 그래. 명확한 진리를 밝힌다기보다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그럴법한 이야기를 만드는 학문이지. 파인만이 보기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분명했겠지만, 거만한 바보라고 한 건 지나쳤어.’
내 생각이 잘못이라는 걸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스모스』와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나자, 표현이 과격해서 그렇지 파인만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거만한 바보’였다. 나는 물질세계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무지했다. 우주·은하·별·행성·물질·생명·진화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문과니까.
하지만 ‘인간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이론이 옳다는 증거가 있는지 여부를 따져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진리인 양 큰소리를 쳤다. 내가 바보라는 생각을 하니 심사가 뒤틀렸다. 민망함·창피함·분함·원망스러움을 한데 버무린 것 같은 감정이 찾아들었다.
‘거만한 바보’를 그만두기는 쉬웠다. ‘난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렇게 인정하고,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점검하는 습관을 익히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크게 나아진 건 없었다. ‘정직한 바보도 바보는 바보 아닌가. 나이 오십에 바보라니.’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래야 별건 아니었다. 과학교양서를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게 다였다. 그래도 꾸준히 하니 바보는 면한 것 같다. 그게 자랑이냐고? 그렇다. 나는 ‘운명적 문과’다. 그 정도만 해도 뿌듯하다. 어디 자랑하고 싶다.
운명적 문과의 슬픔
다들 그런 것처럼 나도 수학이 어려워서 문과를 선택했다. 선택이라고 했지만 진짜 선택한 건 아니다. 수학을 못하는데 무슨 선택을 하겠는가. 문과 말고는 갈 데가 없었다. 수학을 못한다고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연과학대학이나 공과대학에 들어가려면 문과보다 높은 수준의 수학을 알아야 한다. 수학을 잘하지 못하면 대학에 들어가기 어렵고 들어가도 공부하기 힘들다. 어찌해서 학위를 딴다 해도 과학자나 엔지니어로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뭐 하러 굳이 이과에 가겠는가.
선택은 수학을 잘해야 할 수 있다. 수학을 잘하면 아무데나 가도 된다. 인문학도 수학과 통계학을 쓰는 분야가 있다. 특히 경제학은 수학의 식민지 또는 수학으로 무장한 학자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신고전파 경제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마셜Alfred Marshall, 1842~1924, 거시경제이론을 창안한 케인스John Keynes, 1883~1946, 게임이론으로 경제학을 혁신한 내시John Nash, 1928~2015, 경제지리학으로 무역이론을 한 차원 높인 크루그먼Paul Krugman, 1953~ 등 보통 사람이 이름을 아는 경제학자는 대부분 수학자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사람이다. 나름 공부를 잘한다는 경제학과 학생들이 머리를 쥐어뜯는 문제를 부전공으로 경제학 강의를 듣는 수학과 학생들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광경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수학은 범용 학문이다. 수학을 잘하면 문과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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