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건강하시기를.
오랫동안 이 말을 마지막 인사로 써왔다. 불완전하고 모호하고 순진한 데다 공평하지 않은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늘 마음을 담아 썼다. 당신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랐다. 지금도 당신의 건강,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작년 11월에 파주로 이사했다. 이 집에서는 경의중앙선 너머로 호수공원이 보인다. 직선거리로는 150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철길이 가로지르고 있어 1킬로미터를 걸어야 호수공원의 일부인 소리천에 다다른다. 거기서 호수 둘레를 3킬로미터쯤 걷거나 달린 뒤 다시 1킬로미터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에 5킬로미터쯤, 빠르면 46분, 보통은 52분, 걸으며 생각할 것이 많을 때에는 1시간 1분 정도의 산책을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움직이고 나면 근력운동을 하기에 적당한 상태가 된다. 데드 리프트 90개, 스쿼트 60개, 플랭크 3분을 목표로 두고 보통 2분 30초에서 단념한다을 기본 세트로 하고 푸시업도 조금씩 한다. 센 강도의 운동은 아니지만 쉽지도 않다. 어쩔 수 없어서 이런 운동을 하고 있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이고 하루 작업의 질은 대체로 원고 앞에서 버티는 시간의 양에 달렸다. 버티는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내 경우엔 척추와 디스크다. 2010년과 2011년에 앉지도 눕지도 못할 정도의 허리 디스크 질환을 겪은 뒤로 운동을 시작했다. 걷기가 가장 유효했고 지금은 네가지 근육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다. 복직근, 복횡근, 기립근, 둔근. 발음해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한번 더 써야겠다. 복직근, 복횡근, 기립근, 둔근. 이 근육들의 도움을 받아도 하루 작업을 마치고 나면 등이 뻣뻣하고 몸이 차고 팔다리엔 감각이 없다. 책상을 떠나자마자 걸으러 나가곤 했다. 의식해서 호흡하고, 먼 것을 보고, 몸을 데우고 땀을 흘려 피를 잘 흐르게 하는 운동으로 내게 가장 유효한 것은 여전히 걷기/산책이다.
서울 모처에 살 때에는 어디를 언제 걸어도 매연을 듬뿍 들이마실 수밖에 없어 산책 대신 실내운동을 했다. 하지만 이제 ‘공원’이라는 주거 조건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서해랄지 한강 하구라지, 하여간 서쪽출판단지 쪽이라는 것을 나는 의미심장하게 생각하고 있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당히 차고 매서워 나가기가 매번 쉽지 않았지만, 11월과 12월엔 그래도 거의 매일 산책이나 조깅을 했다. 1월에도 꽤 열심히 했다. 이사하자마자 발을 다쳐 운동하기에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발을 자주 다치는 편인데, 이번엔 발 모양이 달라질 정도의 부상이었다. 걷거나 달리면 통증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러지 않으면 다른 통증으로 읽기나 쓰기를 할 수 없으니까, 꾸준히 공원에 나갔다. 원고 노동자들은 알 것이다…… 척추질환 증상을 겪는 것보다는 발이 아픈 게 낫지 않습니까.
대구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난 시기에 내가 사는 주택 앞 주차장에서 사람이 쓰러졌다. 저물녘에 책을 읽다가 먼 데서 다가오는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가까워지는 듯했다가 금방 멀어져, 구급차가 지나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래층 이웃이 전체 세대에 사진 한 장과 메시지를 보내왔다.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원의 뒷모습과 이제 막 구급차에 실린 사람의 발이 찍힌 사진이었다. 양말을 신은 두 발은 벌어져 있었다. 그 사진을 찍은 내 이웃은 구급차가 당도했을 때 마침 주차장에 있었거나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일부러 나가본 모양이었다. 그는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을 급히 사진으로 담은 뒤 확대하고 잘라내 공동주택 연락망에 올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사진 올린 게 저희 옆 동 앞에서 코로나로 의심되는 한분이 갑자기 쓰러져 맥박도 없고 의식불명으로 119에 실려 갔습니다 동 여러분들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구급대원은 개인정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하는데 방역복 입고 하는 거 봐서 확실한 것 같아요 당분간 창문들 닫고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 메시지를 받은 뒤로 발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피구조자의 신발이 구급차에 같이 실렸는지 주차장 바닥에 남았는지 누가 챙겼는지, 아무튼 신발의 행방이라거나 공동주택 연락망에서 기척 없이 사라지는 방법 등등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 발을 자꾸 생각하고 있다. 남의 발을. 몰라서인 것 같다. 내가 가장 모르는 것이 그 발이니까.
3월엔 공원에 가지 않았다. 대신,이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공원이 보이는 창에 책상을 붙여두고 그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광화문에도 종로에도 가지 않았다. 어린 조카들이 있는 동생 집에도 가급적 가지 않았다. 파주와 종로와 강서구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동선을 확인했다. 월요일 몰리김밥가명입니다(자차), 화요일 몰리김밥(도보), 수요일 몰리김밥(도보), 금요일 몰리김밥(자차). 노출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한 사람의 생활과 식사, 그런 걸 보면 그런 걸 보고 있다는 것이 민망하고 미안했다. 몰리김밥이 그 동네 맛집인가, 멍하니 생각하기도 했다. 몰리김밥 점주도 격리되었고, 확진자가 되었다면 그도 자기 일상을 고백해야 했을 것이다. 이따금 확진자의 동선이라고 공개되는 리스트를 보며 그게 작성된 과정을 상상하기도 했다.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자동차 내비게이션 기록이 유용했을 테지만 일단은 확진자의 기억에서 기록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며칠간의 이동과 생활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그 사람을 생각했다. 확진자는…… 확진자의 동선/일상에 쏟아지곤 하는 비난을 걱정했을 테지만 한순간이라도 자신과 같은 공간에 머물렀다가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지 모를 타인을 걱정하기도 했을 것이다. 집단적 트라우마가 사람들에게 남긴 흔적 중엔 그런 것도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내가 확진자가 된다면, 하고 생각하는 날도 있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실은 그걸 자주 생각했다.
해가 지면 경의중앙선 시간표를 확인해 동거인을 마중하러 갔다가 돌아왔다. 왕복 2킬로미터, 하루 25분 산책. 그밖엔 거의 나가지 않았다. 부족한 활동은 트레이닝 앱이 추천하는 플랜을 따르며 채웠다. 복직근, 복횡근, 기립근, 둔근을 단련하는 데 좋은 데드 리프트, 스쿼트, 플랭크도 빼먹지 않았다. 플랭크 2분을 버티며 근래 내 동선이 선線이라기보다는 점點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일할 수 있으니까, 내 주소지에 점으로 머물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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