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퀴어
이반지하
생존자
“But you know, we are broken.”
근데 너도 알잖아. 우린 이미 망가졌어.
미국 드라마 시리즈 〈로 앤 오더 성범죄 전담반Law&Order: Special Victims Unit〉에는 아주 어릴 때 소아성애자 집단에 납치되어 성인이 될 때까지 붙잡혀 있던 아이 둘이 은신처에 출동한 경찰의 도움으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얻는 장면이 있다.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 같은 그 순간, 그들은 그 지옥을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지옥 이후의 삶을 알 수 없음에 두려워한다. 지옥을 빠져나온 그들이 과연 지옥을 모르는 사람들과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힘을 내어 도망칠지 아니면 포기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마지막 순간, 성인이 된 소년의 입에서 체념하듯 울음 섞인 저 말이 나온다.
정확한 복기는 아닐 수 있다. 다만 나는 저 대사를 오랫동안 기억해왔다. 소리내어 혼자 읊조려본 적도 많다. 이미 망가졌는데, 이미 망쳐졌는데, 이다음에 뭐가 있겠어, 라는 말. 이미 망가졌는데, 처음부터 근본부터 다 망가졌는데. 나는 이미 그들 밑에서 너무 오래 살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몸으로 세월로 체화하고 말았는데. 어디까지가 나이고 그들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텐데. You know, I’m broken.
넷플릭스에서 〈퀸스 갬빗Queen’s Gambit〉을 보았다. 엘리자베스 하먼이라는 천재 체스플레이어의 성장드라마다. 드라마에는 주인공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 당대 최고의 러시아 출신 체스마스터 보르고프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주변인들이 곧 그와 경기를 치를 주인공 하먼에 대해, 잔재주 좀 피우는 어린 여자애에 대해, 뭐 별게 있겠냐는 식으로 가볍게 험담을 늘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보르고프는 그들에게 그녀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고,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투로 이런 대사를 뱉는다.
“She is an orphan. A survivor.”
그애는 고아야. 생존자라는 말이지.
나는 저 대사가 참 좋았다. 어린 여자 체스 상대에 대해 당대 최고의 마스터가 긴장해야 하는데, 그 이유가 ‘생존자’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이 훅 흔들렸다.
피해자에서 생존자가 되는 것은 무척 존엄하게 느껴지지만, 이 사회가 실제로 생존했다고 해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어떤 보상을 주지는 않는지라, 그 생존의 의미가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피해자를 생존자라는 단어로 대치하는 것이 도리어 ‘정말 생존했는가’를 되묻게만 하는 것 같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 말을 〈퀸스 갬빗〉에서 저런 맥락으로 들으니, ‘생존자’라는 말이 가슴 중간에 팍 꽂혀, 가슴을 펴고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또 생존자라는 말이 상대방을 이토록 위협할 수 있는 요소라는 것에 아주 천진한 쾌감을 느꼈다. 근원조차 알 수 없는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 그 자체로 살아남았다, 그 사람은 생존자야―라는 쓰임이 나에게 새삼 낯선 울림을 주었다.
세상아, 너는 두려워해야 할 거야. 나는 생존자거든―그런 태도.
그럼에도 〈퀸스 갬빗〉을 보는 내내 나는 주인공이 강간당할까봐 걱정했다. 미디어 시청자로 살아온 경험적 통계로 미루어보아 몇 번의 강간 모먼트가 있었기 때문에, 악― 이제 나온다 하며 그만 볼 준비를 하다가 말다 했다. 여러 명의 남성 체스 전문가 동료들이 ‘돕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로 얘를 ‘실력자로 성장시켜주려는 의도’였다는 게 놀라웠다. 재능 있는 여자를 진심으로 도우려고 하는, 재능 있는 우리 남성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판타지임을 알면서도, 화면에서 그것이 구현되는 장면을 본다는 건 딱 구태의연한 만큼 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새삼 잊고 있었던 오랜 장롱 속 페미니즘의 먼지를 털며, 이렇게 강간당하지 않는 잘난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픽션/논픽션을 계속 보는 삶을, 도무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달으며.
주인공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계속 실험해나가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성욕을 느끼고 표현하고 거절하고 이용하고 등등. 강간당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보통 이러면 사회로부터 성性적으로 크게 혼나곤 하는데, 이 시리즈에는 그런 것이 나오지 않아서 좋았다.
그러니까 잘난 여자를 감히 혼내지 말자. 제발 좀 그르지 말자.
버릇이 나쁘다 싶어도 제발 좀 내버려두자. 구린 구석 없이 정정당당하게 도와도 주자.
이토록 심플한 메시지를 전해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존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빨리 깨닫도록 하자.
생존자는 살아남은 자다.
그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She is an orphan. A survivor.
Losing is not an option for her.”
그애는 생존자야. 애초에 질 생각이 없어.
아니, 러시아 체스마스터 보르고프도 무서워한다고, 이 양반들아.
생존자 조심해라.
이반지하의 말
“감히 너희가 나를 기억하기보다는 너네는 그냥 나를 외워야 할 거야. 모든 역사적 사건처럼.”
― 〈이반지하 최초마지막단독인권콘서트〉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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