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궤적
언니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기 전의 어느 수요일이었다. 언니와 나는 어학원에서 몇 달째 수업을 같이 듣고 있었다. 열다섯 명의 외국인 틈에서 우리 둘만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서로 말을 섞어본 적은 없었다. 언니는 언제나 강의실의 오른쪽 둘째 줄에, 나는 왼쪽 맨 뒷줄에 앉으니 그럴 기회가 없기도 했지만 사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한국 사람들하고만 어울릴 거면 서른 살의 나이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파리에 올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으로 한국인들을 피하고 있었다.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건 날에는 비가 홑뿌렸다. 그날을 떠올리면 비 때문에 어둑어둑해진 강의실에서 〈비 오는 날Le jour où la pluie viendra〉이라는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바싹 깎은 짧은 머리에 푸른색의 커다란 원석 귀걸이를 차고 있던 젊은 강사는 화이트보드에 마커로 “Le jour où la pluie viendra/ Nous serons, toi et moi/ Les plus riches du monde”라고 가사를 적었다. 비 오는 날 그대와 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 될 거예요. 우리는 화이트보드에 적힌, 미래시제를 연습하기에 적당한 가사의 내용을 한 줄 한 줄 배운 후 노래를 들었다. 강사는 나보다도 어려 보였는데 고전적이게도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다녔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시디플레이어를 타고 흘러나온 남자의 목소리가 향기로운 빵처럼 부풀어올라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몇몇의 학생은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웃었다. 나와 언니, 그리고 몇몇 아시아인을 제외하면 수업을 듣는 대부분은 이탈리아나 스페인 혹은 독일에서 온 십대 후반의 학생들이었는데, 그들은 별것도 아닌 일에 쉽게 웃었고, 해맑았다.
사실 대단한 노래는 아니었다. 그냥 오래된 샹송이었고 강사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곤 했다는 노래일 뿐이었다. 하지만 배경음악처럼 깔리던 빗소리 때문이었을까?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어쩐지 그리운 이들로부터 너무 오래 너무 멀리 떨어져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탓이었을 것이다. 가방을 챙겨서 강의실을 빠져나오는 나에게 복도에 서 있던 언니가 “한국인이죠? 바쁘지 않으면 술이라도 같이 한잔할래요?”라고 물었을 때 평소답지 않게 “좋아요”라고 한 것은. 언니도 나와 비슷한 감정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걸까? 나는 그것을 미처 묻지 못했다.
언니와 나는 그날 수업이 끝나고 우산을 각자 쓴 채 나란히 걸었다. 가랑비는 그칠 듯 말 듯 계속 내렸고, 밤이 내린 도시는 온통 습기로 가득했다. 어학원 건물에서 멀지 않은 팡테옹 앞에는 비옷 차림의 관광객들이 서 있었다. 관광객들을 피해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찾은 카페 겸 술집은 한산했고, 우리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를 가려줄 우산이나 정신을 쏟아가며 찾아야 할 목적지가 사라지자 낯선 사람과 단둘이 마주보고 앉아 있는 일이 새삼 어색하게 느껴졌다.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포도주가 나왔고, 우리는 이런저런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언니는 삼십대 후반이었고, 뜻밖에도,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파견 나와 있다고 했다.
“주재원이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그때까지 프랑스에서 반년 가까이 살면서 내가 알게 된 젊은 한국 여자들은 유학생이거나 유학 준비생 또는 여행객이었고, 그게 아니면 유학생이나 주재원 혹은 프랑스인의 아내였다. 주재원이라는 말을 듣자 나는 그때까지 별 관심 없었던 언니에게 흥미가 생겼다. 그렇게 포도주를 마시며 우리는 두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각자 프랑스에 오기 전에 어떤 도시에 살았고, 무엇을 공부했으며, 언제 프랑스에 오게 됐는지를 말했다 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은 단지 언니가 직장인이고 나 역시도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는 직장인이었다는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 둘 다 에리크 로메르의 〈녹색 광선〉과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들을 좋아하고, 비슷한 정치 성향을 가졌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사람 모두 삼십대 초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삶을 꿈꾸며 프랑스에 건너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사이를 어색하게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었다. 외꺼풀의 커다란 눈과 짙은 눈썹을 지닌 언니는 화려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묘한 분위기의 매력을 풍겼고, 목소리의 톤이 높지만 성량은 작아 말을 하면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언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웃으면서 박수를 치다가 입을 가렸고, 그럴 때는 수줍어 보였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들을 때면 수줍음과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날 언니와 나눈 대화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사실을 나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러니까, 어떤 이와 주고받는 말들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들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대화를 마치고 카페 밖으로 나왔을 때 거리에는 더이상 비가 내리지 않았다. “가끔 이렇게 만나서 놀까요?” 언니가 지하철역 앞에서 헤어지기 전에 물었다 외국에 사는 날이 쌓일수록 한국인 지인을 만드는 것이 외국인 지인을 만드는 것보다 쉽지만, 취향과 마음이 맞는 한국인 친구를 만나는 것은 취향과 마음이 맞는 외국인 친구를 만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가던 차였으므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답했다. “전 좋아요.” 언니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는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넜다. 그후로 몇 주 동안 언니와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학원 수업이 끝나면 지하철역까지 같이 걷어가다가 옆길로 새어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주말에는 영화를 보러 가거나 번화가에서 아이쇼핑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오후 우리는 퐁피두센터에서 비상설 전시회를 같이 보았다. 카키색 샤스커트에 겨자색 카디건을 걸치고 나온 언니는 나이에 비해 어려 보였다. 함께 전시를 본 뒤에는 걸어서 튈르리공원까지 갔다. 파리의 봄답지 않게 모처럼 햇살이 좋은 날이었고, 산들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머리카락을 자꾸 흐트러뜨려 우리는 철제 의자에 앉아 웃었다. 그러고도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다시 조금 더 걸어 교자와 라멘을 먹으러 일식당에 갔고, 그후엔 식당 근처의 작은 술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 술집의 이름도 풍경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언니가 나에게 이렇게 “프랑스에 와 지낸 지 이 년이 되었지만 이렇게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난 것은 정말 처음이야”라고 말했을 때의 표정과 말투만큼은
그리고 그날 언니는 내게 싱글인 여성 주재원으로 사는 일의 고충에 대해서 많은 말을 했다. 주재원들끼리 모임도 있고 회식도 있지만 대부분 남자이다 보니 언니는 어울리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것도 불편할 때가 많다거나, 그런 모임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주재원의 아내들과 주로 말을 섞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아니, 나는 주재원의 아내가 아니라 주재원인데, 왜 매번 그런 식이 되어버리느냐고.” 언니가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언니의 말을 듣는 동안만큼은 답답한 마음이 나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나는 언니를 따라 속상해하거나 같이 분개했다. 대화를 나누다가 가끔씩 말이 끊길 때면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렇게 대화에서 한발 물러나는 순간 갑자기 프랑스어가 사방에서 들려왔고, 그제야 나는 그곳이 서울이 아니라 파리의 한복판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우리가 흘러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은 취기가 조금 더 올랐을 때였다. “바보 같은 이야기 해줄까?” 그날 언니는 주재원으로서의 고충을 이야기하던 끝에, 아주 좋은 남자였고 좋은 남편과 아빠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삼십대 중반에 주재원 자리에 지원해보고 싶어한 언니의 마음만큼은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옛 애인에 대해서 처음으로 나에게 말했다. 어느 가을밤 언니에게 “넌 왜 그렇게 독하고 이기적이니?”라고 말하고는 언니를 한강 둔치에 두고 혼자 성큼성큼 가버렸다는 그 남자와, 택시 안에서 너무 많이 울어서, 어디 아프냐고, 응급실에 데려다줬으면 좋겠냐고 택시 기사가 언니에게 물었다던 그 밤에 대해서. 그리고 언니는 여전히 외로운 밤마다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어버린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짧은 통화를 하고 나서는 혼자 운다는 이야기를 내게 비밀을 털어놓듯이 말했다.
“바보 같지?”
언니의 어조는 장난스러웠으나 표정은 쓸쓸했다. 나는 언니가 유부남이 되어버린 옛 애인에게 여전히 연락을 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그 순간 언니가 더 좋아졌다. 언니에게도 그런 바보스러운 면이,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덜 외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언니에게 새내기 시절부터 사귄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대학의 같은 과 선배로 나의 첫사랑이자 스무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사귄 유일한 연애 상대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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