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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자기계발서
한때 자기계발서 열풍이 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비롯하여 『카네기 인간관계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아침형 인간』 등 인생의 성공 비법을 담은 온갖 비밀 전서들이 차고 넘쳤으며 사회적으로도 자기계발서를 권장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모두 부자가 되십시오. 성공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서십시오. 그걸 위해 이 책들을 읽으십시오. 사람들의 자기계발서에 대한 인식도 나쁘지 않았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자기계발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꽤나 변화했다. 사람들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는다고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봤자 남들에게 일찍 일어난다고 으스댈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별로 좋은 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자기계발서가 개인의 노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공동체 의식 대신 각자도생의 세계관을 주입한다는 비판도 늘어났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기계발서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베스트셀러 순위에 여전히 많은 자기계발서가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예전처럼 ‘무조건 노력해라’, ‘최선을 다해라’라는 메시지는 먹히지 않으므로 약간의 변형을 거친 상태로. 예를 들면 인간 관계로 고민 중인 사람을 위해 ‘미움받을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든지, 자존감이 부족해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자존감 수업’을 한다든지, 매번 생각이 너무 많아 고민인 사람에게는 ‘신경 끄기의 기술’을 전수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아니 이것들은 심리학 서적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변화를 도모하는 어떤 가르침’을 준다는 측면에서 자기계발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성공하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똑똑해지고 싶어서,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서 등등. 무엇이든 답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욕구의 근원에는 ‘달라지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진 나. 더 성실하고, 더 열정적이고, 더 확신을 갖고 움직이는 나. 혹은 더 신중하고, 더 통찰력 있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나. 어찌 됐든 지금과는 다른 나, 달라진 자신. 이러한 욕구를 지니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들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더 나아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나?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근본부터 자기계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읽는 사람은 자기 나름의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우치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자기계발을 하려는 욕망이나 이러한 필요에 부합하려는 시도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하여 실질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피상적인 이야기만을 가볍게 풀어내고 대중을 현혹하는 함량 미달의 자기계발서가 차고 넘친다는 사실이다. 이런 책들은 인생의 수많은 변수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노력 혹은 정신승리만을 막연하게 강조하여 때로 읽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100퍼센트 쓸모없고 무용한 행위는 아니다. 사람에 따라 특정 자기계발서를 읽고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다만 그와 같이 책을 읽고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얻으려면, 무엇이 납득 가능하고, 무엇은 그렇지 않은지, 책에서 어떤 부분은 유용하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은지를 판가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이 챕터는 그런 시각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유명한 자기계발서를 읽고 진짜로 그 책들이 삶에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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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로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인플루엔셜, 2014
책이라면 일 년에 한두 권 읽을까 말까 한 사람이라도 『미움받을 용기』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는 2014년 발간 이후 지금까지 15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5년여 지난 현재까지도 꾸준한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어찌나 화제가 되었는지 후속작이었던 『미움받을 용기 2』는 2016년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15만 부가 팔렸다. 어지간한 베스트셀러라도 20~30개 수준이기 마련인 인터넷 서점 서평은 무려 1,000개가 넘는다.
본래 인간관계와 심리를 다루는 서적이 잘 나간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미움받을 용기』의 인기는 그만큼 독보적인 데가 있었다. 무엇이 『미움받을 용기』를 이렇게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아마 대부분은 ‘누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 받아. 누구에게 미움받는 건 괴로워. 어디 이런 심리에 대해 말해주는 책 없을까?’ 싶은 생각으로 뭔가 근사한 해답을 기대하고 이 책을 찾았을 듯하다. 실은 제목부터가 결정타다. ‘미움받을 용기’라니, 남에게 미움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현대인들의 가슴속에 그대로 날아와 꽂힌다.
그러나 어떤 해답이나 구원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책을 주문했을 사람들은 첫 장을 펼치자마자 깜짝 놀랐을 확률이 높다. 내용은 둘째치고 일단 책의 스타일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답 형식, 마치 희곡과도 같은 대화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장면은 한 청년이 철학자를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시기심이 강해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시달린다는 청년이 ‘풍문으로 전해 들은’ 철학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다. 청년은 계속 이의를 제기하고, 철학자는 그런 청년의 말을 반박하면서 설득해나간다. 그것이 『미움받을 용기』의 기본 구조다.
즉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이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주장하는 데 반해, 이 책은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라는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페이지가 넘어감에 따라 독자를 대변하는 역할인 청년은 철학자의 주장에 감화되어간다. 독자의 실제 생각이 어떤지는 관계없이.
그렇다면 청년이 ‘풍문으로 전해 들은’ 철학자의 주장은 무엇이었을까. “자고로 인간은 변할 수 있으며 세계는 단순하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철학자의 믿음이며 그의 세계를 지탱하는 기본 축이다. 이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인 알프레트 아들러의 심리학에 근거한 것인데, 아들러는 모든 것은 우리의 의지로 극복 가능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을 정도로 의지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학자이다. 과연 스스로를 갈고 닦아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강조하는 자기계발의 신념에 걸맞은 이론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어떻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37쪽)
인간은 언제든, 어떤 환경에 있든 변할 수 있어. 자네가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네.(62쪽)
이처럼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자유의지와 노력이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철학자에 빙의한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아들러의 이론을 빌어 인간관계 및 내적 고민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즉 청년을 위해 말해주는 조언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모든 것은 의지의 문제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 또한 내가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고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잊어버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자.
둘째, 사람 간에 적절한 거리감은 필수이며 타인의 마음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살면 된다.
셋째, 인생은 어차피 이어져 있는 길이 아닌 매 순간 순간의 연속이다. 잃어버릴까 두려워 갖는 것을 포기하거나 실패가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누리자.
결국 책의 메시지는 ‘최선을 다하자’는 것으로 함축된다. 모든 것을 의지의 문제로 치환한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할 만한 주장이다. ‘아니 내 마음이 내 뜻대로 안 돼서 찾아온 건데 고작 해줄 말이 의지를 가져라라니! 그게 그렇게 쉽냐고요, 오늘부터 내 의지대로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의지가 막 생기냐고요!’ 뭐 그런 마음일 것이다.
실제로 청년은 몹시 분개하며 각종 반론을 펼친다.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화를 낸다. 그러나 책에서 등장하는 아들러의 이론, 아들러를 인용한 기시미 이치로의 주장은 현실에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하기 위한 밑거름에 가깝다. ‘누구나 행복해지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당신도 마음만 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다. 즉,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말이다.
이는 현재 ‘노오력’ 담론에 가해지는 많은 비판과 다르게 어느 정도는 의미 있는 이야기다.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거나, 과거의 잊을 수 없는 상처로 괴로워하거나, 실패할까봐 도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등등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내라는 실질적인 조언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어떤 큰 실패를 겪은 뒤 “난 아마 안 될 거야”, “이제 끝이야” 하고 엉엉 울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아니야,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지금부터가 중요해” 아니겠는가.
이 책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아들러 심리학의 기본 이론 및 철학자의 주장에서 타당성을 느끼고 일견 위로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마음은 타인의 것이므로 내가 어쩔 수 없다, 나는 나의 길을 걷자. 오늘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타인은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를 위해 살라는 것 또한 꽤나 합당한 조언으로 느껴진다.
문제는 모든 이론이 그렇듯이 타당하지 않은 부분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단일한 심리학 이론으로 수많은 변수를 지닌 사람들을 정의하고 조언을 건넨다는 자체가 무리수이다.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제각기 너무나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획일화된 조언을 강요한다는 데 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과거의 특정 경험을 통해 생겨나는 트라우마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주장부터가 그러하다. 물론 과거의 안 좋은 경험에 사로잡혀서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가까운 누군가 그러고 있으면 때로는 독한 소리라도 해서 일으켜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이 극복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의 주장과 같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는 흔적을 남긴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의지의 문제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다. 아니 매우 많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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