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어진말
“버들 애기씨, 내년이면 열여덟이지예? 포와로 시집가기 않을랍니꺼?”
부산 아지매가 물었다. 버들과 그의 어머니 윤 씨의 눈이 둥그레졌다.
구포에 사는데도 부산 아지매로 불리는 아주머니는 동백기름, 박가분, 빗, 거울, 바느질 도구, 성냥 같은 물건을 이고 마을마다 다니며 파는 방물장수다. 아지매는 윤씨가 어릴 때부터 그의 친정에 드나들었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어진말을 찾아오는 부산 아지매는 언제나 버들네 집에서 보따리를 펼쳐 장사하고 하룻밤 묵었다.
매봉산 자락 골골이 들어앉은 동네들에선 우물 속처럼 하늘만 빼꼼 보였다. 쉰 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동네인 어진말은 그중에서도 외진 편이었다. 어진말에서 가장 가까운 주천 장에 한 번 가려면 산 고개를 세 개나 넘어야 했다. 어진말 여자들은 부산 아지매가 마을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썩거렸다. 보따리 속 물건 중 바늘 쌈지나 성냥을 겨우 살 뿐 나머지는 그림의 떡이었지만 구경만으로도 눈 호강이었다.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부산 아지매로부터 바깥세상 소식 듣는 것 또한 귀 호강이었다.
방 안 가득했던 아낙네들이 돌아가고, 동생인 광식과 춘식도 건넌방으로 자러 갔다. 이부자리를 펴던 버들은 부산 아지매의 느닷없는 혼인 말에 슬쩍 어머니 눈치를 보았다. 포와라는 동네는 처음 들어 보는 곳이었다. 지명이 낯설기는 윤 씨도 마찬가지였다.
“포와? 거가 어데고?”
윤 씨 얼굴에 반색과 근심이 동시에 어렸다. 버들은 근심의 원인을 알았다. 아무리 좋은 혼처라고 해도 혼수로 가져갈 새 이부자리 하나 장만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팔 년 전, 훈장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버들네 집엔 무거운 적막과 함께 맑은 날에도 산 그림자 같은 그늘이 드리웠다. 강 훈장이 저세상으로 간 지 이태 만에 장남마저 죽자 집에 드리운 그늘은 윤 씨의 얼굴에도 거죽인 양 자리 잡았다.
“그기, 쫌 멉니더. 미국이라고 들어 봤습니꺼?”
“들어 봤네. 주천 교회 목사라는 코쟁이 양반이 미국 사람이라 카데. 포와가 그 사람들 사는 데가?”
윤 씨가 말했다. 버들이 읽은 『혈의 누』라는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미국에 갔다. 미국 가는 일이 책에나 나오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갈 수 있다니. 버들은 믿어지지 않았다.
“맞습니더. 미국 땅인데 섬이라 카데예. 거 가면 돈을 쓰레받기로 쓸어 담는다 캅니더. 그뿐 아이라 옷이고 신발이고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어가 맘에 드는 기를 따서 입고 신으면 된다 캅니더. 날씨는 또 우떻고예. 사시사철 늦봄맨키로 따시니 겨울옷이 필요 없다 아입니꺼.”
부산 아지매는 물건 팔 때보다 더 신나는 얼굴이었다.
“극락도 아이고 무신 그런 데가 있습니꺼?”
버들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그래가 포와를 낙원이라 안 캅니꺼. 거 가기만 하면 팔자 피는 기라예. 열 살만 젊었어도 분칠하고 내가 시집가고 싶다 아입니꺼.”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지매 말에 윤 씨와 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결혼 이야기에 긴장됐던 방 안 분위기가 누그러들었다.
“그란데 거 조선 머스마가 있나? 아지매가 우째 그런 머스마를 안다 말이고?”
윤 씨가 물었다. 버들도 궁금했다.
“십 년도 전에 조선 사나들이 포와로 엄청시리 일하러 갔다캅니더. 그 사나들이 성공해가 색싯감을 찾는 기라예.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좋다 카는데 평생 살 각시는 우떻겄습니꺼? 부산 사는 시집 푸네기 중 딸을 포와로 시집보낸 집이 있습니더. 가시나가 갈 때는 울면서 갔는데 오 년 만에 즈그 집에 땅도 사 주고, 집도 지어 줬다 안 캅니꺼. 그 아가 지만 잘 사는 기 아까벘는지 즈그 오래비한테 신랑감들 사진을 보냈는 기라예. 조선 색시 좀 구해 달라꼬 말입니더. 그 오래비가 아예 중신애비로 나서가 특별히 좋은 자리라 카면서 지한테 부탁한 깁니더. 신랑감 사진도 있습니더.”
부산 아지매가 보따리에서 사진을 꺼내 내밀었다. 버들은 실제 남자가 앞에 있는 양 똑바로 보기가 쑥스러웠다. 그 대신 윤 씨가 받아 들어 찬찬히 살폈다. 버들은 어머니 표정을 훔쳐보았다.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궁금했다.
“아씨, 사윗감으로 우떻습니꺼? 사나답지예? 인물만 좋은 기 아이라 농사를 아주 크게 짓는 지주랍니더.”
부산 아지매가 덧보탰다. 그 말에 윤 씨와 버들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휘둥그렞졌다.
“지주라꼬? 미국서 말이가? 왜놈맨키로 남의 땅 뺏은 기도 아닐긴데 우찌 남의 나라서 지주가 됐노?”
윤 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농사지을 자기 땅을 갖는 건 조선 사람들 모두의 꿈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더. 얼매나 부지런했으면 맨몸으로 남의 나라 가서 땅을 다 장만했겄습니꺼. 그런 자리니까 지가 이레 중신 서는 기라예. 와 그레 사진은 꼭 쥐고 있습니꺼? 아씨가 분칠하고 갈라 캅니꺼?”
부산 아지매 농담에 윤 씨가 “남사시러버라.” 하며 얼른 버들의 치마폭에 사진을 던지듯 놓았다.
버들은 수줍게 사진을 집어 들었지만 눈은 진즉부터 양복 입은 남자를 보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동자, 곧은 콧날, 꽉 닫힌 입매를 가진 사내가 자신을 쏘아보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부산 아지매에게 시집 소리를 듣는 순간 동요하기 시작한 버들의 심장은 사진을 보자 더 크게 뛰었다.
“뒤에 이름하고 나이 있습니더.”
버들은 부산 아지매 말에 사진 뒷면을 보았다. 단정한 글씨체로 서태완, 26세라고 쓰여 있었다. 아홉 살 더 많은 나이보다 서태완이라는 이름 석 자가 버들 가슴에 각인됐다.
“스물여섯 살이면 적은 기라예. 포와 신랑감들 나이가 많은기 좀 흠이라 캅니더.”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부산 아지매는 목소리를 낮췄다.
“재취 자리만 아이면 아홉 살 차이야 우떻노. 고향은 어데고 부모 형제는 우찌 되노?”
윤 씨는 마음이 반은 기울어진 얼굴로 물었다. 버들의 눈은 사진에 붙박여 있었다. 사람이 마음에 든다 해도 너무 멀리 있었다. 가까이 살아도 일 년에 한두 번 친정 나들이 하기 힘든데 포와라는 곳에 가면 가족과 다시는 못 만날지 몰랐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두고 그렇게 멀리 가고 싶지 않았다.
“고향은 평안도 용강이라 캅니더. 어매는 몇 년 전 시상 떠나고 여형제들도 조선서 다 시집가 삐리고, 식구라고는 아배하고 아들뿐이라 캅니더. 시집살이할 일도 없다 아입니꺼. 참, 그라고 애기씨, 거 가면 공부도 할 수 있습니더.”
버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그기 참말입니꺼?”
“야. 우리 시집 가시나는 일자무식이었는데 거 가서 공부해가 집에 펜지도 척척 쓰고, 그 나라 말도 쏼라쏼라 한다 캅니더.”
버들은 그 가시나가 자신인 양 가슴이 벌렁거렸다.
주천에 보통학교가 생기자 강 훈장은 장남을 학교에 보냈다. 세상이 변하고 있으므로 자라나는 아이들은 신학문을 해야 한다는 게 강 훈장 생각이었다. 이 년 뒤에는 여덟 살이 된 버들도 입학시켰다. 홍주도 제 아버지를 졸라 버들과 함께 입학했다. 버들네가 어진말에서 살게 된 건 홍주 아버지, 안 부자 덕분이었다.
강 훈장은 어려서부터 과거에 급제해 몰락한 집안을 일으키고 썩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망을 품었다. 과거의 1차 관문인 초시에 합격해 강 초시로 불렸으나 세상 못지않게 부정부패가 심하던 과거제도가 폐지됐다. 과거 준비만 해 온 강 초시에게 그런 날벼락이 없었다. 병아리 오줌 같던 본가의 원조가 끊긴 것은 물론 윤 씨 친정도 진즉 망한 터라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관직에 나가지 못하고 돈도 없는 양반은 빛 좋은 개살구와 같았다.
강 초시는 먹고살기 위해 장터에 대서방을 차렸지만 윤 씨마저 삯바느질을 해야 할 만큼 곤궁한 처지가 됐다. 안 부자는 강 초시를 어진말 훈장으로 초빙했다. 아직 버들이 태어나기 전 일이었다. 대대로 상민이었던 안 서방은 소 장사로 돈을 벌어 어진 말 땅을 사들였다.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기와집을 짓고 정착한 다음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됐다. 그런 내력을 아는 동네 사람들은 호칭이 마땅치 않자 안 부자라고 불렀다.
강 훈장도 돈 주고 산 양반임을 알면서도 열 살도 더 많은 안 부자를 형님으로 모셨다. 윤 씨도 안 부자댁을 형님으로 불렀다. 우애 좋은 어른들 덕분에 버들과 홍주도 단짝 친구가 됐다. 위아래 여형제들이 어려서 죽은 탓에 둘 다 고명딸이었다. 버들은 남매들 중 둘째이고 홍주는 오빠들과 터울 지는 막내였다.
버들은 아버지의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울 때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한글, 일본어, 산수, 율동을 배우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어린 나이에 고개를 세 개나 넘어 다니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하지만 강 훈장이 세상을 떠나자 윤 씨 혼자 두 아이의 월사금을 댈 수 없었다. 둘 중 하나가 그만두어야 한다면 당연히 딸이었다.
2학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둔 버들은 그때부터 집안일을 하며 동생들을 돌보았다. 고만고만한 사내 녀석들만 세 명이었다. 이듬해 윤 씨는 버들의 바로 아래 동생 규식을 입학시키면서도 버들은 보내지 않았다. 버들은 서운하고 억울했다.
“지는요? 규식이도 가는데 지는 와 안 보내 줍니꺼? 지도 핵교 다시 보내 주이소.”
버들은 대들기도 하고 사정하기도 했다.
“가시나가 지 이름자 읽고 쓸 줄 알면 되제 무신 공부가 더 필요하나?”
윤 씨 말에 버들은 밥도 먹지 않고, 집안일도 하지 않고 골을 부렸다.
“니, 어매 죽는 꼴 볼라꼬 이라나? 그래, 내 매봉산 용소에 가가 빠져 죽을 테이까네 니 맘대로 하그라.”
윤 씨가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서자 버들은 겁이 덜컥 났다. 어머니마저 없으면 고아가 되는 것이다. 버들은 방을 나가려는 어머니 다리를 부둥켜안고 다시는 학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 뒤 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글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부지깽이로 땅바닥에 써 보며 마음을 달래는 것뿐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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