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두아 홀 홀로그래프*
*holograph. 자필로 작성한 문서. 빛의 간섭으로 3차원 이미지를 기록하는 홀로그래피와 어원은 비슷하나 전혀 다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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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에게만 석상이 허락되건만, 나는 아직 살아 있는데도 석상을 하사받았다. 이미 화석이 된 것이다.
이 석상은 내가 세운 무수한 공적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시라고, 헌사에서 말했는데 이를 대독한 사람은 비달라 ‘아주머니’였다. 윗 사람들의 지시로 대독을 맡은 비달라 아주머니는 하나도 고맙지 않은 눈치였다. 내 안에 있는 겸손을 모조리 끌어올려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밧줄을 잡아당겨 수의처럼 나를 덮은 천을 걷었다. 펄럭이는 천이 땅에 떨어지자 내가 거기 서 있었다. 여기 아르두아 홀에서는 환호성을 올리지 않지만 얌전한 박수 소리는 좀 났다. 나는 고개 숙여 예를 갖췄다.
석상이 대개 그렇지만 내 석상도 실물보다 크고 근래의 내 모습보다 젊고 날씬하며 훨씬 나은 모습이다. 어깨를 젖히고 똑바로 서 있고, 휘어진 입술에 확고하지만 선한 미소를 띠고 있다. 나의 이상주의,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헌신적 의무감, 모든 장애를 불사하고 전진하려는 결단을 표현하고자 시선은 우주의 한 지점에 고정되었다. 그러나 아르두아 홀 정문에서 나오는 오솔길 옆 음침한 나무와 덤불 속에 묻혀 있으니 하늘에 행여 뭐가 있더라도 내 동상의 눈에 보일 리가 없다. 우리 ‘아주머니’들은 주제넘게 굴면 안 된다. 심지어 돌의 형상이 되어서도.
나의 왼손을 꼭 쥔 여자아이는 일고여덟 살쯤 되었고, 신뢰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내 오른손은 옆에 쭈구리고 앉은 여자의 머리에 얹혀 있다. 여자는 머리카락을 베일로 가리고 갈망이나 감사, 둘 중 하나로 읽을 법한 표정으로 눈을 들어 위를 본다. 우리 ‘시녀’ 중 한 사람이다. 내 뒤로는 ‘진주 소녀’ 한 명이 선교사업을 시작할 준비를 마치고 서 있다. 내 허리를 감은 벨트에 걸린 물건은 테이저건이다. 이 무기를 보면 내 실패를 떠올리게 된다. 내가 좀 더 효율적이었다면 저런 거추장스러운 물건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내 목소리에 깃든 설득력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전체 군상으로 보면 대단한 성공작은 아니다. 너무 바글바글하다. 내가 좀 더 강조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제정신으로 보이는 건 다행이다. 이 늙은 여성 조각가는수십 년째 참된 믿음을 지켜 온 사람이다. 열렬한 신심을 강조하기 위해 눈알을 툭 튀어나오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서, 그조차 안 됐을 수도 있다. 그 여자가 제작한 헬레나 ‘아주머니’ 흉상은 흡사 광견병에 걸린 몰골이고, 비달라 아주머니 흉상은 갑상선 항진증 환자 같고, 엘리자베스 ‘아주머니’의 흉상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석상 개막식에서는 조각가는 초조해했다. 자기가 표현한 내 모습이 충분히 보기 좋았나? 과연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걸까? 내가 기분이 좋다는 티를 내 줄 것인가? 천이 벗겨지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는 건 어떨까 잠시 생각도 해 보았지만 결국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도 측은지심을 아예 모르는 위인은 아니다.
“아주 실물과 흡사하군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게 9년 전 일이다. 그 후로 내 석상은 풍상에 닳았다. 비둘기들이 나를 장식하고 이끼가 내 축축한 틈새에 싹을 틔웠다. 참배자들이 내 발치에 헌물을 두고 가는 일이 많아졌다. 다산을 비는 달걀, 만삭을 상징하는 오렌지, 달을 뜻하는 크루아상. 빵 종류는 무시하지만보통은 비를 맞아 엉망이다. 오렌지는 챙겨 호주머니에 넣는다. 오렌지는 정말 상큼하다.
아르두아 홀 도서관 관내 나만의 성역에서 이 글을 쓴다. 우리 땅 전역을 휩쓴 열광적인 분서焚書 이후로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도서관이다. 앞으로 반드시 도래할, 도덕적으로 순수한 세대를 위한 청결한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타락한 과거의 피 묻은 지문을 싹 지워 버려야만 했다. 이론은 그랬다.
그러나 피 묻은 지문 중에는 우리가 찍은 것도 있고, 이런 자국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난 세월 동안 나는 무수한 유골을 파묻었다. 이제는 다시 파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단지 당신의 계몽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미지의 독자여. 지금 당신이 읽고 있다면 이 원고는 적어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미망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아마도 내게는 영영 독자가 없을지 모른다. 아마도 나는 벽에 대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이상의 의미로.
오늘은 이 정도의 집필이면 충분하다. 내 손은 아프고, 내 허리는 쑤시며, 밤마다 마시는 뜨거운 우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장광설은 감시 카메라를 피해 은닉처에 숨겨 둘 것이다. 나는 감시 카메라들이 어디 있는지 안다. 내 손으로 설치했으니까. 이렇게 조처해두긴 했으나 여전히 내가 무릅쓰는 위험은 잘 안다. 글쓰기는 위험할 수 있다. 어떤 배반이, 어떤 탄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르두아 홀 내부에도 이 원고를 손에 넣고 기뻐할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잠깐 기다려, 나는 소리 없이 그들에게 충고한다. 훨씬 나빠질 게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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