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오랜 세월 동안 수렵과 채취로 그날그날의 생활을 자연에서 해결하던 인간이 경작을 배워 자연에 울타리를 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경작은 오로지 인간의 눈높이에서 자연을 사유화하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몇몇 동물들이 먹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울타리 안을 기웃거리다가 그만 자유를 빼앗기고 길들여졌다. 이제 울타리 안의 동물들은 본성이 억압된 채 사람의 입맛을 위해 예측 가능하게 사육된다. 아니면 자연을 떠나 허전해진 인간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하고 때때로 대신 죽어야 한다.
수렵채취 사회라고 해서 고기가 주식은 아니었다. 영양의 대부분을 수렵에 의한 고기보다 채취에 의한 엽채소나 구근류로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의 입맛은 강력하게 고기를 원했고, 울타리 안에 들어온 동물을 고기를 위해, 또 고기 이외의 목적을 위해 사육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물의 질병이 예기치 않게 인간에게 창궐했다는 것과 가축화로 인한 인간 사회의 변화를 1장에서 들여다보고, 2장에서 농경 사회에서 소박하게 가축 한두 마리를 키워 자급자족하던 인간이 욕심 부려 산업축산을 도입한 배경을 살펴보았다. 3장은 그 중에 소, 4장은 돼지, 5장은 닭에 얽힌 사육의 역사와 산업축산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둘러보았다. 6장은 개와 고양이를 중심으로 애완동물의 역사와 현실을 검토하고 개고기 합법화의 문제를 따져 보았다.
길들여지지 않고도 인간의 울타리 안에 들어온 동물들이 있다. 7장은 오직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도모하는 실험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과 볼거리를 위해 동물원에 수용되는 동물들의 역사와 실태를 알아보았다. 마지막 8장은 인간 그 자신이 주인공이다. 자연의 이웃인 동물을 울타리 안에 끌어넣어 신세 망치게 한 장본인인 인간은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얼마나 호사스러운 삶을 불공정하게 누리는지, 그런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반성적으로 살펴보았다.
인간의 울타리 안에 들어왔어도 이 책에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은 동물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사육하지 않는 양이나 말, 또 쓸개즙을 얻기 위해 잔혹한 방식으로 사육하는 곰과 모피를 위해 사육하는 동물들이 거기에 해당된다. 드물게 키우는 애완동물이나 실험동물, 그리고 수족관의 동물들도 아쉽지만 이번엔 다루지 않았다. 그 동물들이 울타리 안에 들어오면서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까지 논할 지식이 내게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단으로 울타리 안에 들어오기도 하는 곤충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른 지면에서 그 동물들을 만난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1960년대 인천의 주안은 분명 도시였지만 쟁기를 맨 소가 갈던 논과 밭이 널린 곳이었다. 신작로를 따라 납작 엎드린 약국과 양복점, 시계방, 중국 음식점 뒤로 펼쳐지는 들판과 과수원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연 날리려 뛰어오른 과수원 언덕에 때까치가 날아오르고, 가을이면 파란 하늘에 선회하는 매 한두 마리를 언제나 볼 수 있었다. 그만큼 개구리와 쥐도 많았다. 다채로운 자연의 이웃과 우리는 그렇게 공존했다.
네 가구가 함께 살던 공동 주택의 화장실은 주기적으로 퍼내야 했던 뒷간이었다. 아침 먹고 얼마 지나면 “똥 퍼~ 똥 퍼~” 하고 마치 요즘 아파트 복도마다 “세탁~ 세탁~” 하며 지나치는 목소리의 주인공처럼 마을을 순례하는 낯익은 아저씨가 있었고,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은 그를 불러야 했다. 뒷간에 모인 똥은 이윽고 들판이나 과수원으로 나갔다. 이랑마다 똥이 뿌려지면 잠시 코를 막았던 우리는 밭에서 과수원으로, 과수원에서 밭으로 놀이터를 옮겼고 일 년 내내 그 밭과 과수원에서 나오는 채소와 과일을 먹었다.
그 넓던 논밭이 메워져 주택과 상가와 공장으로 채워지고, 동네의 가게를 몰아낸 슈퍼와 그 슈퍼마저 물리친 대형 쇼핑몰이 화려하게 들어선 지금, 우리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은 동네에 없다.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보낸 엄마들이 승용차를 몰고 냉장 에어커튼이 보기에도 시원한 쇼핑몰의 식품매장에 들어서면 낯선 미소로 반기는 상냥한 아가씨가 어제와 똑같이 친절하지만 공허하다. 다듬을 필요도 없이 가지런한 채소, 데우기만 하면 진수성찬인 가공식품, 도저히 소를 연상할 수 없게 잘 준비된 불고기감과 갈비세트가 가득한 매장의 구석구석에 폐쇄회로 카메라가 번뜩이지만 돈만 낸다면 아무 탈이 없다.
요즘 도시 아이들이 눈 똥엔 파리가 들러붙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여름 놀러갔던 야영지 인근 노천 화장실을 기억해 보라. 도시 아이들이 주로 사용했던 노천 화장실에 군데군데 보이던 똥은 햇볕에 말라 가루로 흩어질 뿐 며칠이 지나도 구더기가 끓지 않는다. 밭떼기로 매점매석하는 식품매장의 책임자는 그 까닭을 알리라. 요즘 종합병원 소아과 병동에 가면 소아성인병으로 입원한 아이들이 전에 없이 늘었다는 걸 알게 된다. 계란, 우유, 고기를 대량 생산하는 산업축산 관계자는 그 이유를 짐작하리라. 어디 그뿐인가. 영국에서 촉발된 광우병, 멕시코에서 세계로 퍼진 신종플루도 축산 자본이 숨기고 싶은 원인이 있기에 우리는 긴장했다. 아니 땐 굴뚝에서 난 연기가 아니다.
식량을 지역에서 자급자족하고 이웃과 나눠 먹던 가족농 시절, 콩 심던 아낙은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쥐가 먹고, 한 알만 싹 트게 해” 달라고 노래했다던데, 지금은 어떤가. 싫든 좋든 농협 빚내어 종묘상에서 씨앗과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사고, 무거운 농기계를 할부로 구입해서 석유 펑펑 태우며 땅을 짓이긴다. 남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농사지어야 손해 보지 않는 산업농업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다국적 기업이 이끄는 산업농업은 중앙 집중 산업축산을 낳았고, 기업이 제공하는 편의에 길들여진 우리는 자신은 물론 후손의 내일마저 불안하게 만들고 말았다.
김용택 시인이 회상했듯, 거울만 보면 여드름을 짜던 윗집 누나와 보리밥 한 양푼을 앉은자리에서 다 먹고 궂은 일 마다않던 아랫집 형이 떠나기 전, 마을은 생기가 넘쳤다. 벌레를 쪼아 먹던 마당의 씨암탉은 사위가 찾아왔을 때 백숙이 되었고, 새끼를 여러 번 낳은 이장의 누렁이는 모내기 마친 뒤 가마솥으로 들어갔다. 동네 어른의 잔칫날에는 돼지를 잡았고, 교장 선생님은 아들 혼인식에 소 한 마리를 끌고 나왔다. 그때는 광우병도 구제역도 조류독감도 알 필요가 없었는데, 지금은 과거에 몰랐던 가축의 질병을 참 많이도 안다. 농경지가 대거 개발돼 사라진 지금, 그 건강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탐욕이 이끄는 산업사회는 어느새 한계를 맞았다. 지구 온난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바닥을 드러내며 치솟은 원유 값은 도무지 내려갈 줄 모르는데, 우리는 삶의 관성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석유와 곡물 사료를 과소비하는 산업축산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남아도는 듯 보였던 세계 식량도 어느새 모자란다는 신호를 보낸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동물들의 사정도 전 같지 않다. 징후가 더 흉흉해지기 전에 삶의 궤적을 바꿔야 한다.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다분히 인간의 탐욕과 몰염치 때문이다. 후손의 내일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와 탐욕의 역사는 울타리 안에 들어온 동물들의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한다. 내일의 대안을 서둘러 찾으려면 어쩌다 인간의 울타리 안에 들어온 동물들이 들려주는 애증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 동물원의 진상이다. 위기를 맞은 인간 동물원은 새로운 정언명령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해야 할 정언명령은 복잡하지 않다. 물려받은 땅에서 자연의 이웃과 지속가능하게 살아가는 어제의 삶이다.
1장
인간의 울타리로 들어온 동물
남성 중심
수렵채취 사회가 부른
슬픈 천형
그린란드 다음으로 큰 섬인 뉴기니는 호주 대륙 위쪽 적도 부근 열대우림 지대에 걸쳐 있다. 문명의 전파가 가장 느린 지역 중 하나인 뉴기니는 지형이 험하고 종족 사이의 반목이 심해 1000여 개 부족이 철저히 분리돼 살았다. 부족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지구촌 언어의 거의 절반인 700여 가지인 게 그 증거다. 그 섬의 동북부 산악에 포레족이 산다. 그들은 근육질의 사냥꾼으로 돼지를 사육하기도 했지만, 궁할 때에는 타조만큼 크고 날지 못하는 화식조나 주머니쥐, 도마뱀 따위도 잡아먹었다.
누구에게도 충성하지 않는 대신 집단의 행동을 철저히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포레족은 평소 남녀가 떨어져 집단생활을 했다. 여성과 접촉하면 약해진다고 믿었던 남성들은 다 자란 청년들과 커다란 집에서 살며 사냥을 했고, 여성들은 소년 소녀들과 마을에 콩과 고구마, 사탕수수를 심었다. 여성들은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며 육식이라고 해야 기껏 곤충의 애벌레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붉은 살코기는 남성들이 독차지했다. 먹일 사료가 없을 때에는 여성들이 젖을 물려가며 키운 돼지도 남성들이 맛있는 부위를 선점했다. 그런 불평등한 관습에서 여성들의 반란이 비롯되었다.
전사가 미워했던 적을 잡아먹거나 매장 의식의 하나로 사랑했던 피붙이의 신체 일부를 먹었던 포레족의 반란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인류학자들이 한 할머니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고 믿는 그 반란은 죽은 친지의 몸을 먹는 은밀한 행사였다. 곧 욕심 사나운 남성들에 대한 소박한 반란은 맛있고 좋은 고기라는 소문이 돌면서 당연한 권리의 행사가 되었다. 여성들은 야심한 밤, 시체가 손상되기 전에 모여 거의 모든 몸, 심지어 뼈까지 삶거나 찌어 어린 아이들과 나눠 먹었으며, 심지어 죽을 때에는 모유가 잘 안 나오는 처자에게 ‘내 유방을 먹으라’는 유언을 남기기까지 했다.
습관적으로 같은 종種을 먹자 포레족 여인과 어린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질병이 발생하고 말았다. 적의 사체를 먹거나 사랑했던 이의 몸을 먹는 일은 특별한 경우였지만, 일상적으로 먹는 친지의 시체는 사정이 달랐다. 비록 나병이나 설사병으로 죽은 시체는 먹지 않았다 하더라도 수십 년 지속된 동족 식인 풍습은 ‘웃음병’이라는 치명적인 뇌질환 ‘쿠루kuru’를 발생시켰다. 뇌의 ‘프리온prion’이란 단백질이 변성돼 발생하는 이른바 ‘광우병’과 같은 증세인 쿠루로 포레족의 여성과 어린 아이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슬픈 천형이자 남성 중심의 수렵채취가 빚은 치명적 부작용이었다.
쿠루는 집단 내 여성의 성비를 태부족하게 만들었다. 일부일처는 물론 불가능했고 족장의 아내도 잇따라 죽어 나가자 남성들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었고, 갈등은 종종 살인으로 연결되었다. 젊은 여성이 웃는 표정을 짓다 미친 것 같이 죽어가자 이윽고 주술사가 나서 “저자의 저주 때문”이라며 한 남자를 지목했고, 나머지 남성들이 지목된 자에게 달려들어 끔찍하게 살해하는 행위가 반복된 것이다.
결국 1950년대 미국과 호주에서 파견된 의사와 인류학자의 끈질긴 노력 으로 포레족의 처참한 풍습이 드러나고 쿠루의 원인이 밝혀져 무서운 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포레족은 백인을 죽은 조상이 되돌아온 모습으로 인식해 식인 풍습을 제한하라는 미국인 의사와 호주인 인류학자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웃는 죽음’이라던 쿠루가 자취를 감추었는데, 과학이 해결한 셈인가?
서양에서 과학을 배운 대부분의 학자들은 과학이 주술 사회를 몰아냈다고 주장한다. 포레족의 사례를 보아도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출신 의사 칼턴 가이듀섹Daniel Carleton Gajdusek은 포레족의 풍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과 치명적인 질병을 차단하기 위해 과학이 개입해야 한다는 사실 사이에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물론 과학자인 그는 개입했고, 쿠루 연구의 업적으로 나중에 노벨상을 받았다.
이제 과학이 새로운 주술 사회를 이끌어가는 형국이다. 과학 자체보다 과학을 앞세운 탐욕스런 상업주의가 과거보다 훨씬 치명적인 주술 사회를 확산시키고 있다. 과학으로 자연의 생명을 예측 가능하게 개조하면서 나타난 주술 사회, 다시 말해 요즘 볼 수 있는 ‘공장식 축산’이 그 사례의 하나가 되리라. 값싸고 위생적이며 맛있게 대량 생산되는 살코기로 인류의 식량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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