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낭떠러지로 달려가기
기후변화 시대의
풍경 기억상실
“누가 마시려고 떠 놓은 물에 똥 쌌어!”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위 구절이 담긴 시의 제목이 〈양변기〉란다.
양변기에 끊임없이 고이는 맑은 물은 부엌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맑은 물을 마시지 못해 위태로운 생명을 겨우 이어가는 사람들이 양변기에 대소변을 보는 우리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화가 날까, 부러울까?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칭송받는 양변기는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을 몰아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럽 얘기다. 뒷간에 모인 대소변을 강으로 흘려 보내지 않고 밭 가장자리에서 한참을 곰삭힌 뒤 퇴비로 활용한 우리 조상들은 수인성 전염병을 거의 몰랐다. 마시는 물에 똥이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변기의 레버를 내리게 된 순간 우리 조상이 수천 년 이상 사용한 양질의 비료는 사라졌다.
양변기가 뒷간을 몰아내자 우리의 들판은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에 찌들고 말았다. 화학비료뿐이 아니다. 독성을 거듭 강화해온 제초제와 살충제도 흥건하게 깔린다. 그래야 종자 회사에서 구입한 씨앗이 기대한 만큼의 소출을 보장해 준다는데, 제초제와 살충제 역시 대부분 석유를 가공해서 만든다.
계절 변화에 순응하며 살았던 조상들
1970년대 말 어느 겨울, 술 거나하게 마시고 잠을 청한 청년은 아침에 마실 요량으로 주전자를 머리맡에 놓았는데 그 물, 자리끼를 마시지 못했다. 갈증이 밀려와 잠에서 깼는데 주전자 속 자리끼가 꽝꽝 얼어붙은 게 아닌가. 그 청년은 엄동설한에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감기에 걸리지 않은 이유가 청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 겨울이면 어느 집이든 안팎이 다 추웠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두툼한 이불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청년이 감기에 걸리지 않은 이유다.
무더운 여름철, 냉장고에서 차가워진 음료수를 컵에 따르면 컵은 이내 흥건히 땀을 흘린다. 컵에서 떨어지는 물이 바닥을 다 적실정도인데, 한 세대 전만 해도 겨울철이면 밖으로 난 창의 안쪽은 성에로 가득 찼다. 그러나 지금 이중으로 만든 베란다 창호는 차갑거나 더욱 바깥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는 걸 단호하게 차단한다. 성에가 앉을 자리가 없다. 기하학적 무늬를 다채롭게 펼친 성에에 주먹 쥔 손 아랫부분을 대고 발바닥을 만들려고 녹이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성에가 무엇인지 알까? 또 고드름은 알까?
에어컨이 만든 여름철의 냉기와 중앙난방이 데운 겨울철의 온기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므로 에너지 효율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그런 실내 공간에 머무는 우리는 환절기마다 감기를 조심해야 한다.
아랫목만 뜨거웠던 시절, 밥주발 덮어놓은 이불 속은 겨우 발만 따듯하게 해줄 뿐이었다. 두툼한 요를 푹신하게 깔고 가슴으로 무게를 느끼며 두꺼운 솜이불을 코끝까지 끌어 덮고 잠을 청했던 시절에서 한 세대 지난 요즘, 그런 이불과 요를 사용하는 집은 거의 없다. 요는 침대의 매트가 대신하고 이불은 얇아졌다. 이불마저 걷어차고 마는 요즘 아이들은 요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지.
간장독과 아이들은 겨울에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간장독이 사라진 요즘 우리 아이들은 얼어붙을 것 같다. 집안이 따듯할 뿐 아니라 유치원도 따듯하고 유치원으로 가는 자동차 안도 따듯하다. 아파트 현관에서 유치원 차를 기다리는 잠시 동안에도 아이들은 발끝까지 내려오는 오리털 외투와 털모자, 그리고 긴 목도리로 온몸을 둘둘 만다. 냉기가 피부에 닿지 않도록 원천봉쇄한다. 그 상태로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버스 오르내리기도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자라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년이 되겠지.
며칠을 씻지 않아 때가 켜켜이 앉은 손이 아무리 곱아도 밖에 나가던 시절, 아이들은 내복을 껴입어도 활동이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물이 언 논밭으로 나가 외발썰매를 지치고 자치기와 구슬치기를 하며 해 짧은 겨울을 아쉬워했다. 놀기 바빠 손을 씻지 않았다기보다 때를 걷어낼 마음이 생길 만큼 따뜻한 물이 집안에 없었기 때문인데, 그 시절 따뜻한 물은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책임지는 부뚜막에 한정되었다. 부뚜막? 요즘 아이들이 보았을 리 없다.
회색 도시의 아이들은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안심하고 뛰어놀 공간이 아예 없는 까닭이다. 시골에 친척이 살면 뭐하나. 아이가 거의 태어나지 않는 시골은 명절이 돼야 손주들 칭얼대는 소리가 이따금 들릴 뿐이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시골을 제 고향으로 여기지 않는데, 그런 아이들이 어느새 엄마 아빠가 되었다. 그들의 아이에게 시골은 고향일 리 없다.
빙하로 뒤덮인 그린란드는 빙하가 후퇴하면 자그마한 경작지를 허용했다. 그 땅에 들어온 바이킹은 자기들 방식의 의식주를 고집하며 살았는데, 빙하가 확장되자 생존이 어려워졌다. 빙하가 확장되면서 의식주 재료를 고국에서 공급받지 못하자 굶주리고 말았다고 인류학자는 분석한다. 빙하가 경작지를 덮은 이후의 재앙이었다. 그런데 바이킹보다 훨씬 먼저 자리를 잡았던 이누이트inuit는 달랐다. 물개 가죽을 입고 얼음집에 머물며 사냥하는 이누이트를 미개하다며 조롱한 바이킹의 후예는 결국 생명을 잃었지만 이누이트들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석유라는 한시적 자원에 의지해 겨울딸기를 즐기며 유행 맞춰 입는 오리털 패딩점퍼로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의 체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석유로 겨울철 실내온도를 높이고 여름철에 낮추든, 밍크와 은여우와 토끼들을 비좁은 철망 안에서 비윤리적으로 길러 마구 가죽을 벗기든, 오리와 거위의 앞가슴 깃털을 우악스럽게 뜯든, 겨울은 봄에 바통을 넘길 것이다. 점점 짧아지는 봄이라도 꽃은 곱게 피고 새들은 짝을 찾아 교교하게 울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어 기상이변이 속출해도 아직까지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는데, 오직 사람만 계절의 흐름에 순응하길 거부한다.
우리 시대의 풍경 기억상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자연의 동물들은 체온 유지를 위해 음식과 은거지를 필요로 하는데 사람은 옷을 더 요구한다고 이미 150년 전에 직시했다. 요즘 사람들은 털북숭이 개까지 알록달록한 옷을 입힌다. 그런데 사람에게 옷은 동물의 털가죽 이상이었다. 따뜻한 옷 덕분에 자신의 서식지를 아프리카에서 온대지방과 극지방까지 성공적으로 확장하지 않았나! 과학기술이 만든 유별난 옷으로 지금 인간은 우주 공간에도 머물고 바다 깊숙이에도 들어가지만, 이는 모두 한시적인 것들이다. 석유가 사라지면 그 옷들도 신기루같이 사라질 것이다. 그때 인간은 우주는 물론 바다와 하늘에도 머물 수 없다. 다시 원시 시절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북극해가 얼어 단단해지면 하프바다표범은 새하얀 털이 고운 새끼를 빙원에 낳는다. 이누이트들은 바다표범의 성체를 사냥해 그 가죽과 고기로 체온을 유지했지만, 공장식 축산과 양식장에서 쏟아지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연어 들을 넘치게 먹어 불어난 체중을 줄여야 하는 지역의 사람들은 단지 멋을 위해 어린 하프바다표범의 가죽까지 벗겨 옷을 해 입는다. 석유를 들이부어 생산한 음식으로 포식한 뒤 빙원 위의 새끼들을 때려죽여 벗긴 모피를 구입한다. 그러나 그렇게 호사스럽게 유지한 체온은 머지않아 한계를 만날 것이다.
동물이 누려야 할 복지와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모피 옷이 예전 같은 부러움을 받지 못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더라도 동물 사육은 줄지 않는다. 모피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 줄었어도 모자 가장자리에 모피가 장식된 오리털 외투의 수요와 광고가 넘치는 세상이 아닌가. 오리와 거위도 석유로 키운다. 지금처럼 오리털 패딩점퍼가 넘치게 생산되는 한, 조류독감과 살처분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역사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류는 전기는 물론 석유와 석탄을 몰랐다. 추우면 그저 나무를 태웠을 텐데, 나무를 아무리 심어도 땔감을 무한 공급할 수 없으니 겨울엔 대개 춥게 지냈다. 그렇게 우리 조상은 환경에 적응해 살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렇지 않다. 어떡하나? 한계가 보인다. 석유가 점점 줄어든다. 산유국들이 자료를 제시하지 않아도 관련 전문가들은 석유를 펑펑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추론한다.
흔히 ‘이스터 섬’이라 불리는 ‘라파 누이’Rapa Nui는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하다. 지금은 목장으로 사용하는 태평양의 외로운 섬 라파 누이에 30톤에서 100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 ‘모아이’Moai가 600개 이상 조각돼 있어 흔히 세계의 불가사의로 거론했지만, 문화인류학의 연구는 그 속사정을 밝혀냈다. 원래 야자수를 비롯해 다양한 나무로 숲이 울울창창했는데, 두 종족의 지나친 개발과 모아이 제작 경쟁이 섬 환경을 황폐하게 망쳐놓았다는 걸 추론한 것이다. 비옥한 환경에서 인구가 늘고 씀씀이가 커지자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섬은 한계를 드러냈는데, 그들은 개발 관성을 버리지 못했다. 개발 경쟁을 멈추지 않은 결과는 잘 알려져 있듯 비참한 나락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라파 누이는 어떻게 될까?
라파 누이의 슬픈 역사를 강의한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한 대학원 학생의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바로 전하지 못했다. “마지막 나무를 자른 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서글펐을까? 이 나무마저 자르면 더는 카누를 만들 수 없으니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겨웠을까? 답변을 다음 시간으로 미룬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풍경 기억상실’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마지막 나무를 자르기 한참 전부터 이미 라파 누이는 황량했고, 그래서 아마도 별 생각 없이 잘랐을 거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예전의 울울창창했던 기억은 이미 까마득할 따름이라는 설명이었다.
곡선으로 이어진 우리와 일본의 리아스식 해안은 풍수해에 안전하다. 영겁의 세월 동안 모진 풍파를 받아 그런 지형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들의 토목은 리아스식 해안을 도륙했다. 그리고 파괴한 리아스식 해안 위에 핵발전소를 세운 일본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았다. 지리 교과서 이외에는 리아스식 해안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도 상황이 비슷했다. 인천의 드넓었던 갯벌은 아파트와 공장에 짓밟혔다. 갯벌에 살던 조개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 화석으로 만날지 모르겠다. 갯벌이 사라진 지 30여 년에 불과하지만, 매립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인천 앞바다의 갯벌을 잘 모른다. 전혀 기억할 수 없다.
갯벌만이 아니다. 앞으로는 4대강의 본 모습을 계단식 호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지 모른다. 자동차는 어느새 우리 사회의 공기 같은 존재가 되었다. 자동차 없는 생활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불과 두 세대 전만 해도 자동차는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전기, 석유, 가스, 통신, 도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편리함에 중독되었다. 컴퓨터에 신기해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인터넷 없는 컴퓨터를 상상할 수 없다. 불과 한 세대 전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손전화에 이제 인터넷까지 연결되었는데, 다음 세대는 어떨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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