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남성성, 식민지 남성성
성 차별이나 가부장제 사회의 불합리성에 대해 말하면 여성 수강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우리는 다 알죠. 이런 교육이 진짜 필요한 사람은 남자들이에요. 그래야 세상이 변하지. 우리끼리 만날 이야기해봤자…….” 일부 남성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성 차별에 관심 있는 남성들에게 여성주의 강의를 하면 여성이 살아가는 현시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반성 모드’로 말한다. “이건 정말 남자들이 들어야 할 이야기예요!” 이러한 상황은 한국인들이 젠더를 대하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정의감과 안타까움은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젠더를 정치적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여성학 강의를 듣고 변하는 남성은 거의 없다. 남성이 교육으로 변하지 않는 현실은, 젠더가 적대를 전제로 하는 권력 관계이기 때문이다. 계급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자본가를 교육하고 각성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없다. 자본가는 촛불 시위나 특별 검사 같은 제도나 물리력을 통해 ‘변화’하고, 동시에 언제나 역전을 노린다. 그들은 멈추는 법이 없다.
인종, 계급, 젠더는 모두 권력 관계다. 그런데 왜 유독 젠더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성별 권력 관계만 교육이나 상담이나 설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이러한 생각은 남성 개개인에 대한 불신과 무관하다. 젠더성별 제도가 가장 오래되고 치열한, 정치의 최종 심급이라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여성주의와 소통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책임과 비난은 여성주의가 짊어진다. 남성들의 합창처럼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면, 자신의 주체성은 어디 갔는가.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어떤 노동을 하는가.
‘여성보다 남성에게 여성주의 교육이 절실하다’는 강력한 통념은 한국 남성에 대한 희망hope을 반영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무기력hopeless한 발상이다. 흔히 가정 폭력으로 불리는 아내에 대한 폭력이 대표적인 증거다. 폭력 남성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젠더를 끊임없이 탈정치화하려는 사회 시스템이 워낙 강력한 데다, 특유의 ‘정情 문화는 남성의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며 다양한 여성 노동을 요구한다. 이러한 기존 문화를 고려할 때, 최근 몇 년간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젊은 여성들의 문제 제기는 젠더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젠더가 뿌리 깊은 정치적 제도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며, 이전 시대 여성에 비해 남성에 대한 기대가 없다.
남성과 여성의 일상생활, 노동, 섹스, 사고방식은 다르다. 몸이 다른 것이다. 젠더 외부에 있는 남성은 거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성성이 모든 남성에게 같은 방식이나 내용으로 내재한 것도, 그 과정이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남성이 남성성을 체화하는 과정은 당연하거나 자명하지 않다. 여성에게도 남성성이 있고 여성들도 남성성을 추구한다. 레즈비언의 삶을 살았고 한 시대 서구 문화계를 풍미했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말대로, “자라서 남자가 될 것이라면, 어린 소년이라는 사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남성성과 남성 사이에 본질적인 관계를 가정하지 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 작업이 가능하다면 젠더는 물론이고 인류의 모든 사유의 기반을 흔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성성은 젠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성은 곧 인간성을 의미하며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사회적 모순과 결합하여 특정한 시공간에서 남성 권력으로 작동한다. 남성성은 맥락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로서 편재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문제가 계급 문제로 환원될 수 없지만 동시에 계급 문제에서 벗어날 수도 없듯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모든 문제가 젠더 문제로 환원되지 않지만 어떤 문제도 결코 젠더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이 글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이다. 정치적 제도로서 남성성과 이에 대한 서구 중산층 여성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여성주의 이론의 역사를 검토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한국 사회의 독자적인 남성성masculinity을 살펴본다. 서구의 남성성과 한국의 남성성은 개념, 작동 원리, 사회적 효과가 매우 다르다. 근대화는 곧 서구화를 의미했다. 서구 내부에서는 불평등이 있었지만, 국가 단위에서는 근대성-민주주의-자본주의가 ‘함께’ 진행되었다. 서구 주도의 근대화·문명화는 비서구 사회에서 제국주의 침략을 의미했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대리전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제국의 남성성과 식민지 남성성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남성답지 못한 남성’이 여성을 더욱 억압하는 종속적주변적 남성성, 식민지masculinity을 살펴본다. 서구의 남성성과 한국의 남성성은 개념, 작동 원리, 사회적 효과가 매우 다르다. 근대화는 곧 서구화를 의미했다. 서구 내부에서는 불평등이 있었지만, 국가 단위에서는 근대성-민주주의-자본주의가 ‘함께’ 진행되었다. 서구 주도의 근대화·문명화는 비서구 사회에서 제국주의 침략을 의미했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대리전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제국의 남성성과 식민지 남성성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남성답지 못한 남성’이 여성을 더욱 억압하는 종속적주변적 남성성, 식민지 남성성에 대한 시론이자 한국 남성 문화에 대한 탈식민 분석이다. 후기 식민 사회, 즉 해방 이후에도 지속된 한국 남성의 강대국 콤플렉스가 한국 현대사와 결합해 온 방식, 교직交織, interweave 상태, 두 사안 사이의 강력한 상호 의존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형성한 뿌리다.
필자의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서구 여성주의 이론은 얼마나 제대로 자리 잡고 이해되고 있는가. 한국 여성 혹은 아시아 여성의 입장에서 가부장제의 정체는 무엇인가. 종속적 남성성에 대한 여성주의의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민족과 젠더라는 이중 과제가 아니라 서구와는 다른 ‘지금 여기’를 파악하는 이론적·실천적 작업이 될 것이다.
남성성에 대한 여성주의 이론
이 장에서는 서구 여성주의 이론에서 남성성 연구의 대표적인 발전 경로를 네 가지로 분류하여 문제의식의 변화를 살펴본다. 근대 자유주의, 실존주의, 1970년대 급진주의 페미니즘, 주디스 버틀러의 행위성 이론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개인의 성 역할gender role이다. 이는 남성성/여성성, 남성다움/여성다움, 조화로운 양성성, 성 역할 사회화, 성 역할 고정관념 같은 개념과 혼용되고 있다. 이때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성별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양성성인데, 이는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에서 젠더는 정치적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적·심리적 메커니즘으로 다루어진다. 대표적인 주장 세력은 여성주의 진영, 합리적 근대화 세력, 개인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조화, 평등, 다양성과 전근대적 신분주의남존여비 극복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주장조차 ‘과격한 여성주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여성 이슈의 가시화와 여성의 목소리 자체를 혐오하기 때문이다.
성 역할 개념은 기능주의 입장에서 전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개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역할 개념에서는 사회 구조의 변화보다 적절한 사회화 과정을 통한 적응과 기여 등 개인의 책임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여기서 젠더 개념은 성 역할=성차로서, 문제시되는 것은 사회나 젠더 자체가 아니라 성 차별적인 사회가 순기능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젠더 담론, 즉 ‘현대 사회와 여성의 역할’, ‘남북 교류에서 여성의 역할’, ‘지역 사회 발전과 여성의 역할’과 같은 언설이 대표적이다.) ‘역할’이 기능주의적 표현이라면 ‘분업’은 이보다 좀 더 분할적, 이분법적 함의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 물론 이분법은 평등한 분업이 아니라 여성의 이중 노동이다. ‘성 역할’은 피억압자인 여성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핵심적인 분업 시스템이다. 동시에 ‘성 역할’은 ‘성별 분업’의 완곡어법이며, ‘성별 분업’은 ‘성 착취, 성 차별’을 평등한 분업처럼 둔갑시킨 말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사상은 신분제 사회에 비해 급진적인 것이었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 신 앞에 과학이나 국가 앞에 평등하다는 근대의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여성들은 보편적 인권 개념을 여성에게도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자유주의 사상은 평등을 내세우기 때문에 보편적 적용의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도 인간이다.”, “남성은 인간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명제는 프랑스 혁명1789~1794으로부터 시작된 보편적 인권론의 성취를 요약한다. 전자는 여성을 비롯한 타자들도 인간의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는 보편성을 향한 호소이고, 후자는 ‘남성=인간’ 혹은 ‘인간=백인 부르주아 이성애자 남성’에 대한 문제 제기, 즉 남성을 보편적 주체에서 ‘땅의 절반’으로 상대화하자는 주장이다.
단두대는 여전히 중요한 상징이며 역사다. 올랭프 드 구주가 쓴 〈왕비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헌정하는 여성 권리 선언〉1791년의 전문前文은 지금 여성 운동 의제로 상정해도 손색이 없다. “남자여, 그대는 정의로울 능력이 있는가? 이 질문을 그대에게 던지는 건 여자다. 적어도 이 권리만큼은 여자에게서 빼앗지 말아 달라.” 그 유명한 제10조는 다음과 같다. “근본적인 견해까지 포함해서 누구도 자신의 견해 때문에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도 있어야 한다.”
근대 자유주의로서 페미니즘은 신분제 사회에 대한 저항, 인간 존중, 여성 인물의 가시화라는 측면에서 현대 페미니즘의 시작을 알렸다. 본격적인 대중 운동으로서 페미니즘은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자유주의의 급진적 양 날개였다. 그러나 자유주의 사상은 그 자체로 ‘성별’과 ‘인간’의 개념 사이에서 갈등을 내포하고 있었다. 여성에게도 인간의 권리가 있다면, 기존의 남성 중심의 인간의 권리는 재구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가부장제의 가장 큰 모순이었다. 하지만 이 딜레마는 사적 영역private sphere이 발명되면서 ‘간단히’ 해결되었다. 인권과 민주주의 개념은 공적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여성을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 할당하는 ‘공사 영역의 성별화(남성은 공적 존재, 여성은 사적 존재)’는 남성을 구원했고 혁명을 중단시켰다. 프랑스 혁명의 당사자인 프랑스조차 여성 참정권은 법률상으로는 1946년이 되어서야 보장되었다.(참정권이 저절로 주어진 남한조차 1948년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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