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가 생기면서 터미널이란 말이 입에 붙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큰형이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때 처음으로 고속버스를 타보았다. 1970년대 초, 경제가 5년 단위로 개발되던 시대였다. 국민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태어나던 시기, 마을마다 ‘새벽종’을 울리며 ‘새마을’로 탈바꿈하던 시절. 이른바 조국 근대화는 ‘속도전’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증산하고 수출하고 건설하는 사이, 시골은 텅텅 비어갔다. 돈 벌러 외지로 나간 자식과 고향에 남은 부모는 버스 터미널과 기차역에서 헤어지고 만나기를 거듭했다.
터미널은 마중과 배웅이 일어나는 공공장소다. 가족 몰래 고향 집을 등지거나, 도시에서 무너진 삶이 한밤중에 귀향할 때 남몰래 마음을 추스르는 개별적 장소이기도 하며, 잊지 못할 여행의 기점이나 종점이기도 하다. 터미널에 관한 아린 추억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근대화 시기, 부모와 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던 젊은 가장들이 초고령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노후를 맞이하고 있다. 오독誤讀일 수도 있겠는데, 나는 이홍섭의 시 「터미널」에서 경제성장 제일주의의 명암을 읽는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이란 구절에 눈길이 머문다. 한 세대 사이에 부자父子의 위치가 바뀌었지만 이 대물림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대학병원에서 암 아니면 치매 판정을 받았을 ‘산업 전사’ 출신 아버지와 그때 그 아버지 나이에 접어든 아들은 이제, 무엇을 배웅하고 또 무엇을 마중할 것인가.
가족이 무너지고 시골이 버려지는 ‘이 짐승 같은 세상’에 5월 가정의 달이 또 찾아왔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