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한가운데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을 보며 비통했다. 개성공단은 2004년 가동을 시작했다. 그 뒤 겨울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개성공단 법률자문위원들이 공단에서 숙박을 했다.
시범단지만 입주한 터라 지원시설은 열악했다. 공단 관리위원회 직원들도 컨테이너 숙소에서 살던 때였다. 황량한 공단에 눈이 왔다. 먼동이 튼 아침, 북한 근로자들이 눈발 너머 출근하던 모습이 장관이었다. 군사기지였던 곳을 뒤로 물리고 들어선 공단. 분단된 땅에 남북이 함께 만든 공단. 그 평화에 가만히 눈물이 났다.
개성은 고려의 고도高都다. 전쟁 당시 폭격을 피해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시범관광이 잠깐 이루어진 때 선죽교에 가니 핏자국이 있었다. 정몽주의 핏자국은 아니고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는 해설원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신기했다. 함께 갔던 실향민들은 저 너머가 자기 고향이라며 눈물지었다. 공민왕릉과 민속마을에서, 서원에서 고려가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공단은 남과 북 모두에게 새로운 실험이었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통해 자본주의 제도를 본격적으로 실험하고 학습했다. 처음으로 주식회사 제도가 도입되었고 부동산 등록제도가 만들어졌으며 조세제도를 구체화했다. 저당권 등록 및 임의경매가 처음이라 남쪽에서 절차를 지원했다. 가장 활발하던 시기에는 5만 여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했다. 말이 통하는 고학력의 노동자, 낮은 원가, 무관세에 육로를 통한 짧은 물류 등. 정치적 불안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없는 경쟁력 있는 공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정부는 구정 연휴에 개성공단을 예고절차 없이 폐쇄했다. 나는 이 조치가 법치주의를 뛰어넘는 부당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기대가 커질 때, 나는 개성공업지구의 판을 새로 짜자는 제안을 했다. 개성을 북한의 홍콩이나 쑤저우처럼 만들자는 것이었다. 개성 구도시, 신도시, 공업지구를 결합해 크게 개발하고 새로운 시스템과 산업을 실험하는 특별행정구로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대강의 청사진은 이렇다. 개성시는 도시재생 방식으로 개발하여 주거 편의를 도모하면서 관광경쟁력을 갖춘다. 신도시는 국제공모를 통해 설계하고 스마트시티, 친환경 녹색에너지 등 첨단기술을 동원해 현대적 배후도시로 개발한다. 경제적으로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 경제를 주류화하고 공유경제, 리사이클 경제를 도입한다. 기술적으로는 자율주행자동차, 블록체인, 드론 등 최신기술이 접목된 도시로 만든다. 남쪽에서는 어렵지만 북쪽에서는 새 시도가 가능하다. 홍콩과 신의주의 자치모델, 중국의 특구 입법자치권을 참고해 국제자본의 투자유치가 가능한 법제도를 구축한다. 북한이 과거 신의주 모델에서 구상하였던 대담한 계획을 개성특별구를 통해서 다시 시작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런 제안은 비현실적인 몽상이 되었다. 남과 북은 다시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항구적 평화와 한반도 비핵화, 남북관계의 근본적 전환은 요원한 것일까? 다시 상생과 협력의 공간, 평화의 공간을 회복할 수 있을까? 실향민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우린 개성에 갈 수 있을까?
p.s. 2년전 평양에서 일하는 변호사 이야기로 서초포럼을 시작했다. 이제 개성 이야기로 연재를 마무리한다. 그동안 졸고를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본 기고글은 법률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