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폭이 넓어졌지만 그가 마주하는 장애물은 아직 높다. 시외버스, 고속버스에는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져 '모든 교통수단에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도입된 지 10년이 훨씬 지난 우리 현실이다.
국진씨는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수동휠체어를 탔다. 몸의 경직이 심해 전동휠체어 운전레버를 조작할 수 없었다.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는 10cm를 이동하지 못했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장애인의 삶은 이렇게 다르다. 전동휠체어를 타면 혼자 이동할 수 있다. 지하철이나 저상버스를 탈 수 있고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있다면 어느 건물에나 갈 수 있다.
꽃동네에 살던 국진씨는 탈시설 공익소송의 원고였다. 소송에선 졌지만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공동원고였던 박현과 함께였다. 박현은 전동휠체어를 탔다. 휠체어에 오르면 그는 혼자 산책을 하고 커피숍도 가고 전철을 탔다. 그러나 국진씨는 혼자서는 어디도 가지 못했다. 꽃동네에서는 그래도 견딜만했다. 수녀님과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하면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자립을 하고나니 수동휠체어는 너무나 불편했다.
그가 전동휠체어에 도전했다. 얼굴과 입을 움직일 수 있는 그는 얼굴 근처에 레버를 단 전동휠체어를 탔다. 자립이 가져온 혁명. 고난도인 엘리베이터 진입에 성공한 날에는 동영상을 찍어 보내주었다. 전동휠체어를 타면서 그의 삶이 달라졌다. 이동 반경이 넓어졌다. 페이스북에 여기저기 여행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서울대공원, 아차산 같은 가까운 곳부터 영종도, 목포 같은 먼 곳까지 다녀왔다. 극장에도 가고 전시관도 다녔다. 투표일에는 인증샷도 올렸다.
삶의 폭이 넓어졌지만 그가 마주하는 장애물은 아직 높다. 시외버스, 고속버스에는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져 '모든 교통수단에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도입된 지 10년이 훨씬 지난 우리 현실이다. 카페, 미용실, 약국 등 1층에 있는 가게 대부분에는 턱이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 관련 법이 규모와 건축시기를 기준으로 예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 실태조사에 의하면 전국 수퍼마켓 중 98%, 음식점 중 96%, 미용실 중 99%가 의무에서 벗어나 있다)
유모차를 끌고 다녀보면 같은 심정이 된다. 계단 몇 개가 넘을 수 없는 큰 장벽이고 오를 수 없는 버스는 무용지물이다. 본래 저상버스는 유모차 탑승이 가능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유모차를 위해 리프트를 내리는 저상버스를 본 적이 없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 모두는 이동장애를 겪고 있다. 해외여행은 불가능하고 국내여행도 쉽지 않다. 이동하고 싶어도 이동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뉴질랜드에 간 동료는 비행편을 마련하지 못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는 국진씨가 타던 수동휠체어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유럽에서 키 큰 전동휠체어를 보았다. 늘 앉은키인 전동휠체어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선키로도 올릴 수 있도록 만든 휠체어였다. 외국에서는 계단을 오르는 전동휠체어나 전동휠체어를 탄 채 들어가는 승용차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진씨는 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이다. 밝은 기운으로 주변을 기분 좋게 만든다. 국진씨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수 있기를. 시외버스를 타고 단풍구경도 가며 누구나 이용하는 편의점에도 들어가고 동네 어느 식당이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 본 기고글은 법률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