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교육하고 독서로 치료하고
독서교육기관에서는 독서지도사나 글쓰기지도사 과정으로 '참 재미있었다', '이제부터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겠다'와 같이 책이 주는 교훈으로 마무리하는 독후감 쓰기가 아닌 책을 읽고 독서 신문 만들기나 장면 그리기 같은 여러 가지 독후활동 방법을 교육하고 개발해왔다. 초등 논술이나 창의 논술 프로그램은 독서논술지도자 과정을 마치고 나면 신문 활용 교육(NIE) 논술이나 역사논술 과정을 후속 교육으로 듣도록 알려 주고 있다. 요즘은 학교와 공공 도서관에서 어린이 독서 활동으로 독서치료 프로그램도 필수로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어린이가 책 읽는 일에 관계된 수많은 교육과정이 개설되었고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자연스러운지 기이한지 짚어 볼 새도 없이, 사설 독서논술 교육은 평생 학습과 여성 취업 교육이라는 공공 영역에서 이미 광범위로 제공되었다. 그런 나머지 독서논술 교육은 기본 교육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독서논술 교육의 혜택을 고루 나누기 위해 지역아동센터와 방과후 교실에도 독서를 교육하는 선생님들을 국가 지원으로 파견하고 있다. 민관 협력에 따른 광범위한 독서연계시스템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우리 아이들은 책을 읽고 꼭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놀이라 말하기 어려운 책놀이
'책놀이'라는 말에는 어린 시기에 독서 경험을 즐거운 놀이로 기억하기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라는 매체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릇이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과 놀이로 소통한다는 뜻을 담은 이 말은 독서교육보다 자유롭게 느껴진다. 책놀이는 도서관에서 영유아 독서 프로그램이나 저학년 어린이들 독서 체험 활동에 주로 쓰고 있는데 실제로 책놀이하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이 어린이를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초록색 색종이로 개구리 접기를 하거나 노란색 색종이로 꽃 접기 하는 것을 종이접기 놀이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개구리》나 《강아지똥》을 읽고 하는 책놀이라고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아이들은 종이접기를 좋아한다. 찰흙 놀이도 좋아하고 신문지 찢기도 좋아한다. 이러한 놀이를 자기가 읽은 이야기와 이어 보는 것도 재미있어한다. 그런데 이런 놀이를 책놀이 자료집으로 만들고 어른들 사이에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정보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노는 것을 우습게 보는 어른들이 '이거 읽고 이렇게 놀기'를 정하는 것이 돼 버린다.
아이들은 명쾌하다. 책을 읽고 무엇을 하든 놀이는 놀이다. 재미있는 놀이는 또 하자고 하고, 재미없는 놀이는 열심히 하지 않고, 만든 것을 버려두고 간다. 이야기도 놀이다. 감동이 있는 이야기는 자꾸 또 해 달라고 하고, 재미가 없으면 딴짓하고, 가르치려 하면 도망간다. 아이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는 어느새 놀이가 되어서 "모자라네 모자라." "아브라카다브라." 하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주인공 흉내를 내거나 인형들을 죽 세워 놓고 이야기를 재현하기도 한다. 글을 몰라도 동생에게 책장을 넘기며 그림책을 줄줄 읽어 줄 수 있다.
아이가 꼭꼭 눌러 그린 장수하늘소, 공룡, 자동차, 로봇, 공주 그림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양들을 그려 놓은 종잇조각을 소중하게 여겨 주는 것이 어른들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몸에서 넘쳐 나오는 감정과 상상을 공감해 주는 것, 아빠는 코끼리가 되고 아이는 생쥐가 되어 보는 것, 엄마와 아이가 이야기를 마치고 가만히 서로 바라보는 것들이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이야기가 담긴 책을 또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
골목들이 위험하다.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고 난리다. 순찰차가 수시로 지나다니고 가로등이 있어도 여성들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불안하다. 동네 놀이터와 골목에서 아이들이 사라진 지도 오래되엇다. 동네에서 아이들이 어울려 다니는 것이 안심이 되지 않아 학원에 보낸다는 부모도 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학교와 학원, 지역아동센터와 복지관, 피시방에 가면 볼 수 있다.
어른들이 힘을 모아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고 싶다면 골목이 살아 있는 마을을 만들어 줘야 한다. 골목이 재미있어서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도록 해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자꾸 만드는 수고와 참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덜어 마을에 재미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에 쓰면 좋겠다. 배움터 지킴이나 시민 경찰관보다는 마을 공간을 가꾸고 안내하는 어른이 늘어나면 좋겠다.
미술인들이 맘대로 이 담 저 담에 그림을 그려 놓고 가는 공공 미술 말고, 가수가 오고 이벤트 전문가가 진행하는 동네잔치 말고, 동네 사람들이 이웃과 함께 마을 공간에서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특히 원래 아이들 생활공간이었던 골목 안 자투리 공간들을 잘 활용하여 아이들이 놀고 쉬고 성장하는 공간으로 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 문화가 살아 있는 마을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잘 몰라서 소통하기 어려운 어른일수록 어린이책을 많이 읽는 게 좋다. 아이들한테 좋은 책을 알려 주기 위해서라도 자꾸 읽다 보면 우리네 어린 시절을 만나고 추억 속에 살아 있는 어릴 적 친구들 모습도 떠올리게 되면서, 결국은 어른들을 위한 책 읽기도 함께 된다. 어린이책을 읽으면서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 보면 아이들이 어른들 걱정을 많이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을 걱정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경찰관이나 소방관만큼은 아니어도 아이들이 우리 동네 아저씨 아줌마와 엄마 아빠에게 '와 멋지다' 하고 말할 수 있다면, 아이들은 잘 자랄 것이다.
최근 마을 문화공간으로 알게 된 가제트 공방과 성미산 마을극장, 탑골 만화방과 석수시장 예술공간 스톤앤워터 같은 멋진 곳이 우리 동네에도 있으면 좋겠다. 요즘 우리 도서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날마다 나누고 있다.
★ 본 기고글은 <개똥이네 집>(2012.12, 여든다섯 번째)에 게재된 글로서, 보리출판사와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