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은 시·군 단위로 자급자족이 기본이었다. 군청이나 시청 소재지를 중심으로 동일 생활권으로 묶여 있었다. 시·군은 그 자체로 일상생활을 충분히 꾸릴 수 있었다. 읍내만 나오면 어지간한 일들은 다 해결이 되었다. 읍내에는 목재소·가구점도 있었고 라디오전파상도 있었고 편물공장도 있었고 술도가도 있었다. 오뎅공장도 과자공장도 아이스케키공장도 국수공장도 통닭튀김가게도 있었다. 양복점과 의상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런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과자공장과 아이스케키공장은 롯데제과나 해태제과의 대리점이 되었고 목재소와 가구점은 현대가구 등의 대리점이 되었다. 라디오 전파상은 삼성·금성·대우전자의 대리점이 되었다. 편물공장·의상실·양복점 또한 그에 걸맞은 무슨무슨 패션의 대리점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사실은 이렇게 대리점으로 바뀌지 못한 것들이 더 많았다. 그냥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오뎅공장이나 국수공장 같은 것들이 그랬다.
1970년대 들어 시·군 지역에서 자급자족과 일상생활의 완결성이 사라지게 된 것을 두고 어떤 경제학자는 ‘독점자본의 국민경제 장악’이라고 표현했다. 신발 옷 라디오 텔레비전 냉장고 녹음기 과자 국수 술 책장 옷장 등등 대부분 사람들이 일상을 꾸리는 데 필요한 모든 생산을 재벌 대기업들이 독점 또는 과점하게 된 것이다.
이런 때문에 대부분 시·군에서는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일자리가 사라지자 거기 매달려 있던 숱한 사람들도 덩달아 사라졌다. 이렇게 사라진 사람들은 서울 또는 부산 같은 대도시에 나타났다. 아니면 창원처럼 독점자본 위주로 새롭게 형성된 신도시에 나타나거나.
대도시와 신도시는 대도시나 신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사람을 빨아들였다. 빨대를 꽂아서 빨아대는 것보다 더 센 흡인력이었다. 대도시와 신도시는 넘쳐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지역은 텅텅 비게 되었다. 독점자본이 국민경제를 장악한 결과다. 1970년대 중반 이후로 대부분 지역이 자립할 능력을 잃은 결과다. 지난 4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대도시와 신도시는 더욱더 중심이 되었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더욱더 변방이 되었다.
그런데 중심이 너무 많이 빨아들였다. 넘칠 지경이 되었다. 좀 거칠게 단순화하면 이렇다. 오래 전부터 중심이었던 부산은 공해 공장이 넘쳐나게 되었다. 새롭게 형성된 중심인 창원은 사람이 넘쳐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김해는 부산과 창원 사이에 있다. 공장과 사람이 부산과 창원에서 김해로 흘러들게 되었다.
김해는 도시 지역인 김해읍의 김해시 승격과 나머지 농촌 지역 읍·면의 김해군 유지로 분리된 적이 있다. 1981년 일이다. 그러다 지방자치제 부활과 그에 따른 지방의원 선거를 앞둔 1995년에 통합 김해시가 되었다. 도농통합 김해시가 등장한 1995년 그 어름에 공장과 사람이 김해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다. 아무 공장 아무 사람이나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악취나 소음·진동이 없어서 부산에 있어도 될 만한 공장은 김해로 오지 않았다. 마찬가지 창원이 땅값이나 물가가 비싸도 거기서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김해로 오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반드시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어쨌거나 처음에는 부산이나 창원에서 버티기 어려운 공장과 사람이 먼저 넘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맞는 얘기다. 사람도 공장도 폭발하듯이 늘었다. 김해 인구가 1995년에는 25만 정도였다. 2017년 12월 현재는 53만을 넘겼으니 22년 만에 2배 넘게 많아졌다. 공장도 비슷하다. 1995년 통합 김해시 출범 당시 통계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2001년 5월에 작성된 경남도민일보 기사 「김해 지역 공단 태부족」 기사를 보면 “3025개가 현재 가동 중”이다. 김해시가 2016년 12월 현재 시점으로 제조업체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7461개 업체가 8만2738명을 고용하고 있다. 16년 만에 업체가 2.5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물론 김해가 언제나 변방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세기 이전 전통시대에는 김해가 내내 중심이었다. 지금 경남을 두고 얘기하면 낙동강 동쪽은 동래와 밀양이 남과 북에서 중심이었고 낙동강 서쪽은 김해와 진주가 동과 서에서 중심이었다.
보기를 들면 이렇다. 1270년대 고려가 원나라에 등을 떠밀려 일본을 정벌하러 갈 때 그 연합군의 출진 기지가 창원마산이었는데, 당시 창원마산은 김해 관할 아래에 있었을 뿐 독립된 행정 단위를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정벌에서 실패한 뒤1282년 고려 조정은 의창현과 회원현이라는 독립 행정 단위를 내려준 적이 있다. 없는 살림에 부족한 노동력으로 배 만들고 곡식 장만하고 짐 나르느라 지역 주민들 고생했다면서 위로·격려 차원에서 선심을 쓴 것이었다. 그러나 지명 따위는 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고 덮고 잘 수도 없었다. 일반 대중한테 지명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 의창과 회원에서 한 글자씩 딴 이름이 지금 창원이다.
또 조선시대에는 태종이 김해를 그냥 ‘부府’에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켰다. 지금으로 치면 부는 시市에, 도호부는 광역시廣域市에 대체로 해당된다. 세조 시절에는 군사 제도로 김해에 진관이 설치되었는데 그 관할 지역이 창원도호부, 함안군, 거제·칠원·진해·고성·웅천현이었다. 지금 시·군으로는 거제·통영·창원시와 함안·고성군이 되는데 말하자면 경남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중부 경남을 호령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정은 1890년대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1990년대부터 진행된 인구와 공장의 급증은 모두 김해가 대도시 부산과 신도시 창원의 변방이기 때문에 생겨났다. 김해는 중심과 가까이 붙어 있는 변방이다. 변방 가운데는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도 많다. 그런 변방들이 보면 김해는 같은 변방이지만 어쩌면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경남으로만 한정해 보면 이렇다. 인구가 3만도 되지 않는 의령군을 비롯해 군 지역은 인구가 대부분 1960년대와 70년대의 절반 또는 3분의1 수준이다. 변방이라는 말조차 걸맞지 않고 황무지라 해야 마땅한지도 모른다. 사람이 적으면 아무래도 활기가 떨어진다. 이런 까닭에 김해처럼 되고 싶은 시·군들이 없지 않다.
김해는 그런 시·군들에게 반면교사 노릇을 하고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일단 업체들 규모가 지나치게 조그맣다. 7461개 업체 가운데 74%에 해당하는 5500개 남짓이 10인 미만 고용이다. 50명보다 많은 고용은 223개로 3%밖에 안 된다.
게다가 김해는 공장의 80%가 개별공장이다. 계획적으로 조성된 공업단지에 들어가지 않고 아무 데나 들어서서 개별공장이다. 개별공장은 절대농지 빼고 어디에나 들어갔다. 논·밭이나 과수원은 물론 깊은 산 속 임야나 마을 한가운데 사람 사는 주거지에도 들어섰다. 2016년 8월 기준으로 김해시에 등록된 개별공장은 5715개다. 진례면은 850개를 넘는 사업장 100%가 개별공장이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건축면적 500㎡150평가 안 되는 공장은 설립 승인을 별도로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김해는 처음부터 그랬다. 1969년 가장 먼저 한일합섬 방적공장을 받아들인 안동공단도 마찬가지였다. 1981년 흥아타이어공업넥센 김해공장과 1991년 부산 사상에서 옮겨온 국제상사LS네트웍스를 받아들였지만 안동공단은 그때는 물론 지금도 정식 공단이 아니다. 개별공장들이 모여서 형성된 '공장지대'일 따름이었다. 그래도 평지에 주거지와 구분지어 모였기에 아무 데나 들어서는 다른 개별공장보다는 낫다고 해야겠지만.
개별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 후반이다. 사상공단 등 부산에 있던 제조업체들이 싸고 넓은 터를 찾아 김해로 몰려왔다. 창원에서도 국가산업단지가 잘 돌아가면서 2~4차 협력업체들이 많이 유입되기도 했다. 1990~2000년대 조선·자동차·기계산업은 꾸준하게 성장했고, 김해는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이 들어서기 안성맞춤이었다.
김해에 개별공장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조성되어 있는 공단이 별로 여유가 없기 때문이 하나고 공단보다 논·밭·과수원·임야가 땅값이 싸기 때문이 다른 하나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 이유는 되지 않는다. 지역 발전에 필요하다면서 김해시청 당국이 마구잡이로 허가를 내주었던 것이다. 김해시에 상동·생림·한림면을 중심으로 1000개 넘는 공장이 ‘깊은 산 속 나홀로’ 처지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김해가 난개발의 전형”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노 대통령의 고향이 김해다. 2005년 12월 7일 제5회 지역방송의 날 간담회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 관련해 견해를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 규제에 대한 한 가지 고민은 총량을 규제했을 뿐 질적으로 규제가 잘 안 되어 난개발로 퍼져 간다는 것이다. 난개발의 전형적인 예는 오히려 김해를 보면 알 수 있다. 김해라는 고장 하나가 작은 공장으로 가득 차 버렸다. 상동·생림면 등은 참으로 산수가 아름다운 곳인데도 다른 데가 전부 규제가 되어 있으니까 산골짝에 (공장들이) 들어가 그야말로 아름다운 자연이 다 망가져 버렸다.”
공장이 곳곳에 흩어져 있으면 진입로나 공업용수 확보 또는 화재 대비 등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제대로 갖추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식수원 오염이나 소음·진동 발생,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지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이에 더해 깊은 산 속 나홀로 공장은 집중호우나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붕괴·매몰 같은 사고를 당할 개연성도 크다.
(계속)
★ 이 글은 『두 도시 이야기:기억의 서사적 아카이브전』에 김해 소개글로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