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의미하는 가장 일반적인 명칭 중 하나는 ‘뮤지엄museum’일 것입니다. ‘뮤지엄’이 음악과 시를 관장하는 아홉 명의 뮤즈들Muses에게 바쳐진 신전이니만큼 ‘뮤지엄’은 학문과 예술의 결실들이 모여 있는 곳이죠. 이 ‘뮤지엄’들 중에서 미술의 결실들이 모여 있는 ‘뮤지엄’이 미술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은 때로는 그냥 ‘뮤지엄’으로, 때로는 좀 더 분명하게 ‘아트 뮤지엄art museum’으로 불립니다. 마로니에북스 『세계 미술관 기행』 시리즈는 열네 곳의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 중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예르미타시 미술관The State Hermitage Museum,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의 이름에는 형태가 조금씩 다르지만museum, musée, museo ‘뮤지엄’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뮤지엄’ 외에도 미술관을 나타내는 다른 용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놀라서 묻곤 하죠. “어, 여기도 미술관이야?” 어떤 이름인지 여러분도 덩달아 궁금해지죠? 미술관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음 질문에 답이 있습니다. 다음 중 미술관이 아닌 곳은 어디일까요?
1. 뉴욕의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
2.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
3. 밀라노의 피나코테카 디 브레라Pinacoteca di Brera
4. 베니스의 갤러리아 델아카데미아Galleria dell’Accademia
5. 베를린의 게멜데갈러리Gemäldegalerie
6.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The Art Institute of Chicago
7. 서울의 갤러리아 디파트먼트 스토어Galleria Department Store
8. 파리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무엇을 답으로 정할까 고민하셨나요? 설마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위 여덟 가지 예 중에는 『세계 미술관 기행』에 소개된 아홉 개의 ‘뮤지엄’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의 미술관이 포함돼 있습니다.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를 제외하고, 런던의 국립미술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베를린의 국립 회화관, 베니스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이름에는 ‘뮤지엄’ 대신 ‘갤러리’가 들어 있습니다. 언어권에 따라 형태는 조금씩 변형돼 있지만요. 위키백과에 의하면 ‘갤러리’는 “이탈리아어 ‘갤러리아galleria’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는 지붕이 있는 긴 복도라는 뜻의 단어 ‘회랑回廊’을 의미합니다. 피렌체의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가 자신의 저택 회랑을 시민들에게 개방해 소장품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에서 시작해 이후 귀족들이 자신이 소장한 그림을 지인들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자신의 집안에 만든 방회화실 혹은 회화관을 의미하게 됐습니다. 이런 회화실繪畫室이 공공화됨에 따라 유럽에서는 ‘미술관’ 또는 ‘박물관’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미술관을 나타내는 두 번째 용어는 ‘갤러리’입니다.
그렇다면 위 문제의 답이 뭔지 아시겠죠? ‘갤러리’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갤러리아 디파트먼트 스토어’는 백화점이기 때문에 미술관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혹시 백화점 안에 미술관이 있다 해도 말이죠.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갤러리’라는 말이 들어 있는 런던의 국립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 베를린의 국립 회화관, 베니스의 아카데미아 미술관, 워싱턴의 국립 미술관The National Gallery of Art은 모두 ‘미술관’으로 통용됩니다. 그런데 ‘갤러리’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미술관은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먼저, 위에 언급된 ‘갤러리’들처럼 공공 미술관으로서 미술작품을 “수집,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 교육”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삼는 ‘갤러리’가 있고, 다른 하나는 작품 판매를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는 ‘갤러리’가 있습니다. 이렇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갤러리’를 우리나라에서는 화랑畵廊이라 부릅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달리 화랑은 자체적으로 컬렉션을 소장할 의무가 없다고 합니다.
국립미술관. 런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National_Gallery_London_2013_March.jpg#/media/File:National_Gallery_London_2013_March.jpg 제공. |
‘미술관’을 나타내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용어는 위 문제 3번에 있는 ‘피나코테카pinacoteca’와 2번에 있는 ‘피나코테크pinakothek’입니다. 제가 ‘피나코테카’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바티칸에 두 번째 갔을 때였습니다. 처음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는 패키지 투어여서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다녔기 때문에 따로 안내도를 살펴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방문 때는 혼자였기 때문에 안내도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티칸에는 민속박물관, 네 개의 조각 박물관들, 라파엘로의 방 같은 여러 개의 ‘뮤지엄’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피나코테카’입니다. ‘피나코테카’는 회화 작품들을 모아놓은 ‘회화관picture gallery’입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피나코테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요. 밀라노에 있는 브레라 미술관의 정식 이름도 ‘피나코테카 디 브레라Pinacoteca di Brera’입니다.
이탈리아어로 회화관을 나타내는 말이 ‘피나코테카’라면 독일어로는 ‘피나코테크pinakothek’입니다. ‘피나코테크’라는 말이 들어 있는 미술관으로는 뮌헨에 있는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가 있습니다. ‘알테 피나코테크’는 ‘구 회화관’을 의미합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로니에북스의 『세계 미술관 기행』에서는 알테 피나코테크를 ‘구 회화관’으로 지칭하지 않고 독일어 원어 그대로 사용했더군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런 명칭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19세기 이전의 옛 거장들의 회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알테 피나코테크 옆에는 노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와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Pinakothek der Moderne가 모여 있습니다. 다섯 개의 ‘뮤지엄’과 한 개의 ‘갤러리’가 한 곳에 모여 있는 베를린의 ‘박물관 섬Museumsinsel’과 마찬가지로 뮌헨에서도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 쉽게 여러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죠. 노이에 피나코테크는 19세기 회화작품들을 전시하는 ‘신 회화관’이고,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는 현대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 ‘현대 회화관’입니다. 뮌헨의 이 세 미술관을 다녀오고 나면 ‘피나코테크’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알테 피나코테크의 대표적 소장품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이 있는 알테 피나코테크 앞 미술관 광고판. 뮌헨. |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같은 독일어권 국가에서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피나코테크’라는 단어 외에 ‘게멜데갈러리gemäldegalerie’라는 단어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독일어로 ‘게멜데gemälde’가 ‘그림’을 의미하기 때문에 ‘게멜데갈러리’는 ‘피나코테크’와 마찬가지로 ‘회화관’을 의미합니다. 위 문제 5번에 있는 ‘게멜데갈러리gemäldegalerie’가 미술관을 나타내는 다섯 번째 용어입니다.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독일에서, 미술관을 부를 때 어느 곳에서는 ‘피나코테크’를 사용하고, 다른 곳에서는 ‘게멜데갈러리’를 쓰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죠? 베를린에 있는 ‘게멜데갈러리’는 우리나라에서 ‘국립회화관’으로 번역돼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 미술관은 뮤지엄 아일랜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찾아가는 데 엄청 애를 먹었습니다. ‘게멜데갈러리’라는 단어는 드레스덴에 있는 ‘게멜데갈러리 알테 마이스터Gemäldegalerie Alte Meister’에서도 발견됩니다. 이 미술관은 ‘고전 거장 회화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빈의 미술사박물관에 가도 ‘게멜데갈러리’가 있습니다. 베를린의 ‘게멜데갈러리’와 드레스덴의 ‘게멜데갈러리’가 독립적인 미술관으로 존재한다면, 빈의 미술사박물관에서는 ‘게멜데갈러리’가 미술관의 일부로서 회화 작품들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가리킵니다.
게멜데갈러리. 베를린. |
미술관을 나타내는 여섯 번째 표현으로는 ‘컬렉션collection’이 있습니다. 원래 ‘컬렉션’이란 수집가들이 수집한 수집품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이건희 컬렉션’처럼요. 그런데 수집가들이 자신의 ‘컬렉션’으로 미술관을 설립하고 ‘누구의 컬렉션’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 ‘컬렉션’이 미술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컬렉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미술관 중에는 뉴욕의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과 런던의 ‘월리스 컬렉션The Wallace Collection’, 워싱턴의 ‘필립스 컬렉션The Phillips Collection’이 있습니다. 프릭 컬렉션에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인상파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컬렉션 주인인 헨리 프릭Henry Clay Frick, 1849~1919이 가장 좋아했다는 로코코 시대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의 방이 특히 유명하죠. 월리스 컬렉션에는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의 작품이 많고,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필립스 컬렉션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뱃놀이 일행의 오찬Luncheon of the Boating Party」1881으로 유명합니다. 이런 미술관들은 수집가들의 개인 저택을 전시 공간으로 개조한 것이라 대부분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찾아가기가 쉬운 편은 아닙니다. 이 미술관들을 생각하면 길 찾느라 고생했던 일들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프릭 컬렉션. 뉴욕.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enry_C_Frick_House_001.JPG#/media/File:Henry_C_Frick_House_001.JPG 제공. |
필립스 컬렉션. 워싱턴 DC.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he_Phillips_Collection.JPG#/media/File:The_Phillips_Collection.JPG 제공. |
이름만 들어서는 미술관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이름의 미술관도 있습니다. 시카고에 있는 시카고미술관이 바로 그런 미술관에 해당합니다. 1879년에 설립된 이 미술관의 공식 이름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The Art Institute of Chicago’입니다. ‘인스티튜트’는 흔히 ‘연구소’나 ‘학교’로 번역되지만, ‘건물이나 회관’을 의미하기도 하죠. 그래서 ‘아트 인스티튜트’는 ‘미술관’이 됩니다. 여기서 ‘인스티튜트’가 ‘학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미술관의 제휴기관인 ‘시카고 미술학교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가 따로 있다는 사실로 분명해집니다. 미니애폴리스 미술관Minneapolis Institute of Art 역시 ‘인스티튜트’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인스티튜트’가 미술관을 나타내는 일곱 번째 표현입니다. 사실 이 두 미술관에는 가보질 못했어요.
시카고 미술관. 시카고.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rt_Institute_of_Chicago_(51575570710).jpg#/media/File:Art_Institute_of_Chicago_(51575570710).jpg 제공. |
‘센터center’ 혹은 ‘아트센터art center’라는 명칭을 붙인 미술관도 있습니다. 이런 미술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예로는 파리의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남준 아트센터를 예로 들 수 있고요.
퐁피두센터. 파리. https://en.wikipedia.org/wiki/File:Pompidou_center.jpg#/media/File:Pompidou_center.jpg 제공. |
미술관을 나타내는 여러 용어들은 한정된 제 개인적인 경험에 토대를 둔 매우 제한적인 리스트에 불과합니다. 세계의 미술관들을 모두 방문하게 된다면 이 리스트가 훨씬 더 길어지겠죠? 앞으로 미술관을 방문하게 되면 그곳의 이름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어쩌면 ‘뮤지엄’과 ‘갤러리’ ‘피나코테카’피나코테크 ‘게멜데갈레리’ ‘컬렉션’ ‘아트 인스티튜트’ ‘센터’ 외에도 미술관을 나타내는 새로운 용어를 더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