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 이후 현실공간과 다른 상상의 공간을 그려내는 유토피아문학은 서양문학의 중요한 흐름이 되어 왔다. 서양과는 달리 동아시아에서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이러한 문학적 탐색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였다. 유토피아문학의 흐름이 서양에 비해 활발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명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소설에 대한 동아시아 사회의 인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모색은 인류의 보편적 인식의 소산이다. 하지만 이것이 구체적 공간으로 그려지기 위해서는 가상과 허구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양식이 요구된다. 동아시아 사상의 중심에 놓인 유교적 전통에서 소설이란 시정잡배들이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며 나누는 무가치한 이야기로 인식되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시詩가 심오한 뜻을 담아내는 대설大說로 불린 반면, 천박한 인간들의 무가치한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픽션이 소설小說로 불린 정황만 보더라도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관료사회였던 동아시아에서 시가 관료들의 지적 필수품이었던 것도 이러한 전통이 문화적으로 강제한 결과이다. 이처럼 소설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높지 않았고, 당연히 허구적 상상에 대한 문인들의 기호가 낮았기 때문에 유토피아문학은 활발하게 창작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동아시아의 문화 전통 안에서 유토피아 사상과 사회이론이 부재한 것은 아니었다. 유교적 사유 안에서도 ‘대동사회大同社會’와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상은 지속적으로 모색되어 왔다. 구성원 간의 높은 유대감과 결속력에 기반을 둔 이상적 공동체를 추구해온 유교와 달리, 공동체를 상정하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나 최소한의 규제만이 존재하는 연성의 공동체에서 이상사회의 모습을 찾은 도교나 불교의 흐름도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 잡아 왔다. 하지만 이러한 유토피아 사상이 새로운 대안사회로서의 공간적 구체성을 형상화해낸 유토피아 문학으로 제출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의 고전문학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적지 않은 작품에서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며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인식을 발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새로운 대안사회가 구체적으로 제시된 유토피아 문학의 예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율도국’이라는 이상국가를 그려낸 소설 『홍길동전』은 다소 이례적이고도 예외적인 경우라 할 것이다.
『홍길동전』에서 이상사회로 그려낸 공간은 율도국律島國이다. 소설의 후반부는, 홍길동이 서얼의 나라를 허락하지 않는 조선을 떠나 이상적인 나라인 율도국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왕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홍길동전』은 90여 종의 이본이 전해지고 있고 판본별로 다소간의 내용적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그려낸 이상사회를 일률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또한 대부분의 판본들에서 이상사회로서의 율도국은 매우 피상적으로 그려지고 있어서, 과연 율도국이 어떤 사회였는지를 추측해 보기도 쉽지 않다. 대표적인 판본의 하나인 경판 30장본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이때 율도국이란 나라가 있었으니, 그 넓이는 수천 리요, 사방이 막혀 있어 과연 견고하고 풍요로운 나라였다.”라는 묘사 정도가 율도국에 대한 정보를 줄 뿐이고, 완판 36장본의 경우에도, “근처에 한 나라가 있으니 이름이 율도국이었다. 중국을 섬기지 아니하고 수십 대를 자손 대대로 이어오며 널리 덕으로 다스리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넉넉하였다.” 정도의 언급이 율도국에 대한 구체적 묘사로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이상사회로서의 구체적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소략하다. 하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서사 전개 과정을 쫓아가 보면 작가가 생각한 이상사회의 면모를 얼마간 추측해 볼 수는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투영된 이상사회의 이념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자.
적서차별의 아픔을 겪은 홍길동은 철저한 신분제사회인 조선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조선을 떠난다. 중국 남경으로 가던 도중에 그는 율도국을 발견하고 이곳을 정벌하여 스스로 왕이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가 율도국 정벌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는 먼저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여 경제적 안정과 군사력을 강화해나간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웃에 있는 안정된 국가인 율도국을 정벌하기에 이른다. 만약 그가 건설하고자 한 궁극적인 이상사회가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의 탈피였다면, 제도라는 공간으로도 그가 꿈꾼 이상사회 건설은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소규모의 이상적 공동체에 만족하지 않았다. 홍길동은 국가라는 형태를 이상사회의 최종 형태로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교적 충효윤리를 내면화한 홍길동에게는 왕도정치를 실현할 하나의 국가가 궁극적인 유토피아의 형태로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호부호형이 금지된 사회에서 울분과 설움의 성장기를 보내야 했던 어린 길동이 율도국의 왕이 되어 최후를 맞이하는 일대기적 서사를 추동한 힘의 근저에는, 왕도국가 건설이라는 유교적 열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덕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덕치주의의 구현, 이를 실현하는 왕도정치는 상하간의 우애적 연대의식을 근간으로 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왜 하필이면 율도국을 정벌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먼저 율도국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주독립국가의 위상을 가진 나라였다. 이는 그가 생각한 이상국의 조건이 대외적으로 자주독립과 자주국방을 확보하는 데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또한 태평성대를 이루는 율도국의 통치방식은 덕치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홍길동은 대외적으로는 자주국방과 자주독립을 이룬 나라이면서 내부적으로는 강권통치가 아니라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덕치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를 이상적인 국가로 상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홍길동의 선택에는 그가 나고 자란 조선사회가 인식의 대척점에 놓여 있었음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가능하다. 조선사회는 중국의 속국으로 자주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며 자주국방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무능한 조정과 관리들의 부패로 왕도정치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진 상태였다. 이런 조선사회의 내부적 문제를 모두 해결한 곳이 바로 태평성국으로서의 율도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홍길동이 통치한 율도국이 진정한 유토피아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다. 일종의 이민자였던 홍길동은 율도국을 정벌하고 왕이 되는 과정에서 유교적 이상사회를 그곳에 하나씩 실현해 나간다. 홍길동이 왕이 된 후 행한 일들을 살펴보면 그가 꿈꾼 유토피아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자신이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 홍대감을 태조대왕으로 추존하고 어머니를 왕대비에 봉한다. 그가 생각한 이상사회에서 실현할 가치의 궁극에 부모에 대한 효라는 가치가 놓여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그는 함께 정벌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 장수들에게 두루 상을 내려 한 사람도 원통한 이가 없도록 한다. 이때 신분적인 차별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공功에 따라 직위와 포상을 내린다. 이처럼 재능과 업적을 중시하여 억울함이 없는 공정한 사회를 그는 만들고자 한다. 이와 함께 그는 백성을 무력으로 통치하는 패도정치가 아니라 인仁과 덕德으로 통치하는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그 결과 율도국은 “새 왕이 왕위에 오른 후에 시절이 태평하고 풍년이 들고,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여 사방에 일이 없고, 임금이 베푼 덕이 온 나라에 퍼져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는 이가 없”는 사회가 된다. 이를 요약해 보면 율도국이라는 나라는,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가진 국가라 할 수 있다. 특히, 율도국을 묘사한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는 이가 없었다.”를 통해, 이곳이 동아시아에 있어서 전통적 이상사회로 상정되었던 이상향을 분명하게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불습유道不拾遺’로 자주 언급되는 이 말은 『사기』나 『한비자』 등 동양 고전에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서 이상적인 사회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사자성어에 해당한다. 실제로 이러한 사회는 엄격한 법치주의를 통해서만 실현가능한 사회이지만, 그 통치방식과는 무관하게 이 말은 선정이 베풀어져 이상적으로 통치되는 국가를 형용하는 말로 통용되어 왔다. 이처럼 홍길동이 건설하고자 한 이상국은 유가적 군자들이 지속적으로 상상해온 동양적 이상사회의 전형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 나라는 기본적으로 조선과 같은 신분제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저히 체제 내적 상상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다만 이곳이 불평등을 전제한 신분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어떤 불만도 없이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다분히 유토피아적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