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의 북유럽도서관을 다녀와서
2015년 10월 8일부터 17일까지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소속 회원도서관 식구들이 북유럽 도서관탐방을 다녀왔다. 협회 소속 15개의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3개국에서 20개의 도서관을 방문했다. 이 글은 그 탐방 이후에 느낀 소감을 기록한 것이다.
북유럽은 일단 도서관의 선진국이다. 도서관의 개수는 물론, 공공도서관 1개 관 당 서비스대상 인구가 1만 명 단위이며(우리나라의 경우 6만여 명 정도) 서비스도 세계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수적인 우위나 겉으로 드러난 외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도서관들이 ‘시민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가’였다. 10일 동안 3개국 도서관을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이 도서관들은 사람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민에게 먼저 다가가려 하고, 이용자들에게 공간 구석구석이, 서가나 도서들 사서들이 모두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서비스하고자 한다는 점이 느껴졌고, 그중에서도 특히 약자를 더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
약자를 배려하는 나라
북유럽 3개국의 도서관이 가장 중요시하는 서비스 대상은 사회적 약자-어린이, 이민, 난민 등-였다. 먼저 어린이실의 공간 구성과 서비스가 돋보였다.
기본적으로 공공도서관의 어린이실은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 많았다. (좀 더 어린 연령인 영아들을 위한 이야기방은 아늑하고 안전한 분위기로 꾸며졌고, 문화 활동을 위한 공연 공간, 놀이 공간을 대부분 갖추고 있었다. 어린이 신체 크기를 고려한 낮은 크기 서가와 편안하고 안전하면서도 아늑한 의자, 책상 등이 안전장치를 구비해 배치되어 있었고 책들은 전면 배치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원목 마루로 신발을 벗고 올라서게끔 하는 스톡홀롬의 쿨투어후셋 어린이도서관은 입장할 때부터 아늑함과 따뜻함이 돋보였다. 배가도 기존 분류체계가 아닌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분류체계를 구성하여 배치했다. 자동차, 공주, 왕자, 강아지 등 언어와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연령대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어 책을 스스로 골라 읽을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었다.
이민자에 대한 배려도 놀라웠는데, 기본적으로 공공도서관들은 모두 70~100개 외국어로 된 장서를 갖추고 있었고, 이민자들을 위한 언어강좌를 대부분 운영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스웨덴 어, 핀란드 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 강좌도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즉 중국에서 온 이민을 위해 중국어와 스웨덴 어를 같이 가르치는데, 이는 모국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알아야 이 사회에 좀 더 적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당장의 필요보다는 장기적으로 이민자들의 성장과 발전을 염두에 두고 포용력 있게 교육하고 품어내는 북유럽식 공존과 나눔의 정신에서 기인한 것 같았다.
2015년 IFLA로부터 최고의 도서관 상을 받은 스웨덴의 시스타 도서관은 11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언어 전문 사서들을 확보하고 있어서 11개 언어로 책읽어주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시스타 도서관이 위치한 지역이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해서라고 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어제 이 나라에 도착한 난민들을 위해 도서관을 안내하는 사서들의 모습이었다. 난민으로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부터 지역의 도서관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는데, 이 정도의 배려를 보여준다면 어떤 난민이 이 나라에서 문제를 일으키겠는가.
시민에게 더 다가가는 도서관
북유럽 3개국 모두 도서관 이용률이 높은 나라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도서관을 아직 많이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지하철역, 쇼핑센터, 시내중심가에 도서관이 설립되고 있는 것이 추세라고 한다. 그중 하나인 헬싱키의 라이브러리10도 시내 중심가 우체국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도서관은 음악 전문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을 들어서면 사서데스크 뒤로는 전자 기타가, 열람실 한쪽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위치해있다. 이용객들은 장르별 음악 CD나 LP판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악기도 연주한다. 또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녹음 시설을 갖춘 작업공간도 대여해주고 있어서, 작곡과 녹음, CD 제작까지 가능하다. 젊은 아마추어 예술가들은 이 공간을 이용해서 음악을 만들고, 이 도서관의 작은 공연장에서 영상과 음향, 조명 장치까지 사용해서 공연도 진행할 수 있다. 헬싱키의 음악 산업은 이 도서관에서 씨앗을 태동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짐작이 된다.
현대의 도서관은 시민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역동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탐페레도서관 관장님의 이야기처럼 북유럽 도서관들은 다양하게 시민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북유럽 도서관의 어디에서든 느껴지는 약자에 대한 배려, 모든 시민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은 정말 놀라운 정도였고 열흘간의 시간을 보내고서 우리는 그것이 결코 도서관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사회 체제 자체가 약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고 정치인, 권력자, 부유층에 대해서는 치밀한 규제와 세금 부과로 그 권력만큼의 책임을 요구하는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강점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보인다.
이처럼 한 사회의 도서관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정치체제와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고, 이는 근대사회로부터 노동조합이나 사제 집단들의 다양한 독서모임으로부터 국가가 설립되어온 북유럽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시민들의 다양한 독서모임과 작은도서관 운동 등으로 독서문화운동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도 이런 과정을 거쳐 북유럽과 같은 도서관을 운영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