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성의 몸, 전장이 되다
그들은 이름이 적힌 쪽지를 통에 넣고 뽑기 시작했다. 이름 열 개, 소녀 열 명, 소녀들은 물이 똑똑 떨어지는 수도꼭지 아래 붙들린 아기 고양이처럼 몸을 떨었다. 행운의 뽑기가 아니었다. 통에서 쪽지를 뽑는 남자들은 이슬람국가Islamic State의 전투원들이었고, 각자 소녀 한 명씩 노예로 데려갈 것이다.
나이마Naima는 가만히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옆에 있는 소녀는 나이마보다 더 어렸다. 열네 살쯤 됐을까. 두려움에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 나이마가 소녀의 손을 잡으려 하자 남자 하나가 허리띠를 끌러 두 사람을 후려치며 떨어뜨렸다.
그 남자는 다른 남자들보다 몸집이 더 크고 나이도 많았다. 예순 살쯤 된 것 같다고, 나이마는 생각했다. 불룩한 뱃살이 바지 위로 늘어지고 입술이 심술궂게 말려 올라간 사내였다. 그녀는 이미 아홉 달째 ISIS에 붙들려 있었다. 그들 누구도 친절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았지만 그 남자만큼은 그녀의 이름을 뽑지 않기를 기도했다.
“나이마.”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른 사람은 아부 다눈Abu Danoon이었다. 어려 보이는 사내로, 나이마의 오빠 또래쯤이었다. 턱수염도 아직 솜털처럼 보송보송했다. 그는 어쩌면 덜 잔인할지 몰랐다.
제비뽑기는 계속됐다. 그 뚱뚱한 남자가 나이마 옆의 어린 소녀를 뽑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남자들에게 아랍어로 뭐라고 말하며 빳빳한 100달러 지폐 두 장을 꺼내 탁자 위에 탁 내려놓았다. 아부다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돈을 주머니에 넣고 나이 든 사내에게 쪽지를 건넸다.
몇 분 뒤 그 뚱뚱한 사내는 나이마를 그의 검정 도요타 랜드크루저에 밀어 넣었다. 차는 모술Mosul의 거리를 지나갔다. 한때 나이마가 와보고 싶던 도시였지만 이제 모술은 그녀의 고향에 들이닥쳐 그녀와 여섯 형제를 비롯해 수천 명을 납치한 괴물들의 수도가 되었다.
그녀는 선팅된 유리창 너머를 응시했다. 수레에 앉은 늙은 사내가 당나귀를 채찍질하며 길을 재촉하고, 거리의 여성 모두 검은 히잡을 두르긴 했지만 사람들이 오가며 장을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니 이상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나이마를 억류한 압둘 하시브Abdul Hasib는 이라크인이었고 물라mullah, 이슬람 율법학자 ― 옮긴이였다. 성직자가 최악이었다.
“제게 온갖 짓을 다 했어요.” 나이마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때리고, 섹스하고, 머리채를 잡고, 섹스하고, 전부 다요……. 거부하면 때리고 강요했어요. ‘넌 내 사바야sabaya, 노예야’라고 하면서요.
그다음부터는 그냥 멍하니 누워 마음을 떼어내 몸 위에 띄워놓고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듯 나를 봤어요. 그러면 그가 내 전부를 훔쳐갈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 남자에게는 아내 둘과 딸 하나가 있었지만 나를 조금도 돕지 않았어요. 저는 그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도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어요. 한번은 설거지를 하는데 그의 아내 하나가 오더니 내게 알약을 먹였어요. 비아그라 같은 거예요. 제게 피임약도 줬어요.”
그녀가 유일하게 한숨을 돌릴 수 있을 때라곤 열흘에 한 번 물라가 그들이 세운 칼리프 국가에 속한 시리아의 지역을 방문하러 갈 때뿐이었다.
한 달쯤 뒤 압둘 하시브는 그녀를 다른 이라크인 아부 알라Abu Ahla에게 4500달러에 팔아 짭짤한 이윤을 남겼다. “아부 알라는 시멘트 공장을 운영했고, 아내가 둘에 자식이 아홉 있었어요. 두 아들은 ISIS 대원이었어요. 거기에서도 똑같았어요. 섹스를 강요했고, 나중에 자기 친구인 아부 술레이만Abu Suleiman에게 데리고 가서 8000달러에 저를 팔았어요. 아부 술레이만은 아부 다우드Abu Daud에게 저를 팔았고, 그 사람은 일주일 동안 저를 붙들고 있다가 아부 파이잘Abu Faisal에게 팔았어요. 아부 파이잘은 모술의 폭탄 제조업자였는데 20일 동안 저를 가두고 강간하다가 아부 바드르Abu Badr에게 팔았지요.”
결국 나이마는 모두 합해 12명의 남자에게 팔려 다녔다. 나이마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실명과 가명, 자식들의 이름까지 줄줄이 댔다. 그녀는 그들이 죗값을 치르게 하리라 다짐하며 그 이름들을 모두 기억해두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염소처럼 팔려 다니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자살하려고도 했어요. 차 밖으로 몸을 던져도 보고, 뭔지 모를 약을 찾아내서 엄청 많이 먹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냥 다시 깨더라고요. 죽음마저 저를 원치 않는 것 같았어요.”
나는 지금 전시 강간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전시 강간은 인류가 아는 가장 값싼 무기다. 가족을 무너뜨리고 마을을 텅 비게 만든다. 어린 소녀를 버림받은 사람으로 만들어, 인생을 막 시작하기도 전에 끝내기를 바라게 한다. 공동체에서는 ‘나쁜 피’로 거부당하고 어머니들에게는 그들이 겪은 고통을 매일 떠올리게 하는 아이들을 태어나게 만든다. 그리고 거의 늘 역사책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최악의 이야기를 이미 들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나는 나이마 같은 누군가를 만난다.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 창백하고 지친 얼굴 뒤로 담갈색 머리를 당겨 하나로 묶은나이마는 십대로 보였지만 스물두 살이었다. 그녀는 막 열여덟 살이 됐을 때 붙잡혀 갔다. 우리는 북부 이라크 도훅Dohuk에 자리한 칸케Khanke 난민촌에서 단정하게 비질한 그녀의 텐트 안 방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칸케 난민촌은 수천 명이 야지디족에게 집이나 다름없었고, 그녀의 텐트는 그곳에 줄줄이 세워진 텐트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자 나이마는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그녀를 억류한 남자들에게 가끔 소소하게 복수한 일화를 들려줄 때는 웃기도 했지만 그때 말고는 웃지 않았다.
내가 텐트를 나오기 전 나이마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케이스 뒷면의 여권 사진을 보여줬다. 웃고 있는 여학생 모습의 그녀였다. 강간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없던 어린 시절의 유일한 흔적이었다. “제가 아직도 이 소녀라고 믿고 싶어요.”
어쩌면 당신은 강간을 약탈과 함께 ‘전쟁에서 으레 일어나는’ 일로 여길지 모른다. 남자는 전쟁을 시작한 이래 줄곧 여자를 마음대로 훔쳤다. 적에게 수치를 안기기 위해서든, 복수를 위해서든,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든, 아니면 그냥 할 수 있으니까 그랬든. 사실 전쟁 시기의 강간은 워낙 흔해서 우리는 어떤 도시가 무자비하게 파괴되었을 때 도시가 강간당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전히 남성이 대부분인 전쟁 보도 분야에서 몇 안 되는 여성인 나는 이 분야에 우연히 들어섰고, 내 관심을 끈 것은 요란한 총격전이 아니라 전선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주변에 온통 지옥문이 열린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붙들고 있는지, 어떻게 아이를 먹이고 교육시키고 재우는지, 노인을 보호하는지.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엄마는 폭격을 피해 아이들을 끌고 산으로 도망 다니며 바위에 붙은 이끼를 긁어내 먹였다고 했다. 포위당한 이스트알레포East Aleppo 구도시의 한 엄마는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거리에서 밀가루 반죽 튀김과 여기저기서 따온 잎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아이들을 먹이고, 가구와 창틀을 모아 불을 피워 몸을 덥혔다. 로힝야 여성은 버마미얀마 군인이 남자를 학살하고 마을을 불사르자 아이들을 데리고 안전한 곳을 찾아 숲을 넘고 강을 건넜다.
당신은 역사책에서도, 도심의 전쟁 기념비에서도 이 여성들의 이름을 찾지 못할 테지만, 내게는 그들이 진정한 영웅이었다.
전쟁 보도를 오래 하면 할수록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목격한 참혹한 일들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이야기의 반만 들을 때가 많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아마 이야기를 취합하는 사람이 대개 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까지도 이런 분쟁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남자다. 남자에 대해 쓰는 남자. 그리고 가끔은 남자에 대해 쓰는 여자. 여성의 목소리는 빠질 때가 너무 많았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초반에 나는 《선데이 타임스》 현장 통신원 여섯 명에 속해 있었고,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나중에 나는 이 시기에 보도된 기사를 읽다가 여자 동료 두 사람 중 하나와 남자 동료 셋 모두 이라크 여성의 말은 단 한 줄도 인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이라크 여성은 그곳에 없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분쟁지역을 남자의 땅으로 여기는 것은 기자만이 아니다. 여러 연구가 거듭 입증한 바에 따르면 여성이 참여할 때 평화협정이 더 오래 유지될 가능성이 큰데도 종전 협상에서 여성은 배제될 때가 많다.
한때 교전 지역에서는 우리 같은 여성이 더 안전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성을 대우하는 어떤 명예 규율 같은 것이 있다고. 그러나 테러리스트 집단과 죽음을 파는 장사꾼에게 명예 같은 것은 없었다. 오늘날의 많은 분쟁지역에서는 분명 여자인 것이 더 위험하다. 최근 5년간 나는 해외 통신원으로 보낸 지난 30년 동안 목격한 것보다 더 충격적인 잔학 행위가 여성에게 자행되는 것을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목격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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