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씨름선수였던 달구 아버지에 의해 2층에서 내던져진 만세는 팔과 다리가 부러졌지만 다른 곳은 멀쩡한 채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퇴원하는 대로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록 범죄를 방지하는 명분이었다지만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달구 아버지는 정상참작과 동네 사람들의 탄원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나는 오히려 달구 아버지에게 상을 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달구 새엄마는 어느 밤 아무도 몰래 짐을 싸서 달구네 식당을 떠났다. 아니, 동네를 떠났다. 달구 새엄마가 동네에서 종적을 감췄을 때 함께 사라진 이가 또 한 사람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오토바이 상회의 계씨 형이었다. 계씨 형 역시 자신의 동생에게 가게를 맡기고는 갑자기 종적을 감춘 것이다. 달구 새엄마와 계씨 형이 한날한시에 동네에서 자취를 감추자, 소문치고는 지나치게 간단명료한 소문이 돌았다. 두 사람이 눈이 맞아서 야반도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씨 형이 달구 새엄마와 함께 달아나버리고 일주일 후에, 처음 보는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오토바이 상회에 들이닥쳐서 내부를 샅샅이 수색하고 계씨 동생을 조사했다는 이야기가 동네에 돌았다. 알고 보니 사라진 계씨 형은 장물 취득 및 사기 혐의로 오래전에 지명수배된 사람이라고 했다. 오토바이 가게는 무기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달구 새엄마가 계씨 형과 작당을 하고 사라진 것이 명백해진 어느 날 목욕탕 주씨 아저씨는 술을 먹고 달구네 식당에 가서 달구 새엄마 내놓으라고 생떼를 쓰다가, 이제는 정의의 호위를 받는 힘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알게 된 달구 아버지에 의해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장맛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그칠 기색 없이 계속 내렸다. 정말 이 세상을 긍휼히 여긴 신이 있어 단죄를 내리려는 것인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을 깨끗하게 소지하고자 하는 신의 영험한 뜻이라고 나는 생각하기로 했다. 빗물이 흘러서 먹이를 주워 먹지 못한 비둘기들이 눈에 띄게 비실비실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비 맞은 쥐처럼 나뭇가지에 앉아서 비굴하게 울고 있었다. 비둘기 똥 역시 이제 한곳에 쌓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족족 깨끗이 쓸려나갔다. 비둘기의 지배력-그렇다 그것은 분명 지배력이었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고 그만큼 동네사람들의 우울증도 줄어들고 있었다. 비록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노인들이 착한 딸이나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산책을 하기 시작했고 특히 만세의 오토바이에 치였던 할머니도 세발 보행기를 짚으며 산책을 시작했다.
그 즈음의 어느 저녁, 장맛비가 가늘어진 사이 먹장구름 사이로 잠시 햇빛이 비치던 순간, 어머니가 드디어 뜨개질바늘을 손에서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손에서 놓은 그물의 끝에는 깔끔한 매듭이 져 있었다.
“아이고 이제 다 끝냈다. 하하하, 이 손가락 곱은 것 좀 봐. 꼭 고사리 같네. 아기 손이 다 되어버렸어. 아버지한테 물어내라고 해야겠어.”
어머니의 농담은, 자신이 짠 그물이 얼마나 완전무결한 것인지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주는 것이었다.
사흘쯤 뒤 달구네 식당에 사람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비둘기 추방을 위한 주민들의 모임’ 회원들이었는데 그들은 그날 아주 의미 있는 행사를 치르기로 했다. 옥희 씨와 달구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심씨 아저씨를 대신해서는 그 집의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그 사이 아주머니는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많이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나와 아버지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가지고 그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 가방 안에는 예의 어머니가 완성한 그물이 담겨 있었다. 세상의 모든 비둘기들,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위선과 거짓된 상징과 왜곡된 정의를 한 번에 포획할 수 있는 거대하고 튼튼한 그물 말이다.
“아주머니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물, 아니 아무도 만들 수 없는 그물을 완성하셨다면요. 정말 대단해요. 아주머니를 ‘그물의 여왕’이라고 불러야겠어요.”
그렇게 말한 이는 철물점 송씨 아저씨였다. 드디어 가방을 열고 그물을 꺼냈다. 몇몇 아저씨들이 그물을 펼치는 것을 도왔다.
“와우 대단해요.”
“정말 멋져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그물이네요.”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찬사가 터져 나왔다. 내 어머니가 소녀처럼 손으로 승리의 브이자를 만들어 보이며 그 찬사에 화답했다. 어머니의 그물은 사실 가로세로 5미터가 채 되지 않았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 그 누구도 그물의 성능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그물에 성능이 있다고 믿기보다는 그 그물에 효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효험은 언제나 성능을 이기는 법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물의 귀퉁이를 손으로 잡고, 식당 2층을 지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달구 아버지가 맨 앞장을 섰다. 하늘에선 빗방울이 여전히 듣고 있었다. 비둘기들은 방심한 채 나뭇가지에 앉아 한가하게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부리는 지치지 않는 것 같았다. 거짓 상징은 그렇게 최후의 순간까지도 도도하기만 했다.
“자 이제, 열대의 시절로 돌아가는 겁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슬픈 열대>를 읽은 나와 달구 정도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좀 어려운 비유였지만 사람들은 그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달구가 ‘하나’ ‘둘’ ‘셋’을 세면, 한데 힘을 모아 그물을 공중에 흩뿌리기로 했다. 가장 힘이 좋고 팔이 긴 달구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팔로드로’를 하면서 힘을 실어 그물을 부챗살처럼 퍼지도록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로 처음부터 정해놓은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의 역할과 다른 사람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달구가 드디어 하나 둘 셋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사람들이 공중으로 그물을 던졌고 그물이 날아갔다. 어머니의 졸린 손끝에서 한 올 한 올 곰살 맞게 제 살을 늘려나간 그물이 끝없이 넓게 퍼져 나갔다. 그것은 지평선 끝까지 펴져나갈 태세였다. 어머니의 눈에 눈시울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돌아가신 심씨 아저씨 아주머니의 눈도 붉어졌다. 말없이 계속 미소만 짓고 있던 옥희 씨가 박수를 쳤다. 옥희 씨와 눈을 마주치며 나도 박수를 쳤다. 그것은 훌륭한 그물에 대한 찬사이기도 했지만,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상징, 변할 수 없고 변해서는 안 되는 단 하나의 가치인 사랑을 지켜나가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격려이기도 했다.
빗방울이 별빛처럼 느껴지는 환한 대낮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