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치 형과 쓰레기산을 넘어 학교 앞에 있는 애견천국까지 가보기로 했다. 애견천국은 동물병원이었는데 강아지들이 새끼를 분만하기도 하고 다친 동물들이 치료를 받으러 오기도 하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팔고 사는 곳이기도 했다. 형하고 나는 그 집 앞에 있는 빨간 색 우체통 옆에서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했는데 들창코 시추가 얼마나 짖어대는지 주인 보기 민망해서 자리를 떴다. 개들은 하여간 소란스럽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배가 고프다고 하니까 아치 형이 아구찜집 쓰레기통을 뒤져보자고 했다. 얇은 비닐봉지를 뜯으니까 매운 냄새와 콩나물이 쏟아졌다. 아구 뼈다귀를 씹어봤지만 혀에 불이 나는 것 같아 못 먹고 돌아서는데, 주방 뒷문이 열리더니 웬 뚱뚱한 아줌마가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물바가지를 내둘렀다.
“이놈의 도둑고양이들!”
우리는 누명만 쓰고 물을 뒤집어쓴 채 달아났다. 아무것도 못 먹고 뜀박질만 하니까 배가 더 고팠다. 우리는 덥기도 하고 털 손질도 해야 되고 해서 멈춰서 있는 검은색 승용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몸을 떨어 대강의 물기를 털어낸 다음 앞발부터 차근차근 털 손질을 해나갔다. 혀로 앞발을 핥다가 이 발이 꽁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배고픈 고양이는 싫어. 배부른 고양이가 좋아” 하는 동요를 계속 불렀다.
어린 고양이들은 대개 말을 배우기 전에 노래를 먼저 배운다. 그중에서 제일 많이 부르는 노래가 <배고픈 고양이는 싫어>이고 그 밖에 <주룩주룩 비가 오네> <나뭇잎 사이의 달> <초록 꽁치> <쥐야 쥐야> 등이 있었다.
1절부터 4절까지 네 번쯤 부르니까 털 손질이 거의 끝났다.
우리는 차 밑을 빠져나와 학교 담장을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오다가 시커멓고 덩치가 산만 한 시궁쥐를 만났는데 어찌나 으스스하게 생겼는지 온몸의 털이 다 섰다. 아치 형은 그래도 덤벼보려고 했는데 꼬랑지 길이만 해도 우리 몸통만 하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나는 형 뒤에서 <쥐야 쥐야>를 죽을힘을 다해서 불렀다. 그때 나는 그 가사가 어린 고양이에게는 안 맞는다는 걸 알았다.
“귀엽고 통통한 쥐야. 너의 갈 길을 묻는 나에게 부드러운 눈빛을 보여줄 수 있겠니?” 하는 대목인데 저놈의 시궁쥐는 귀엽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빨이 얼마나 억세게 생겼는지 한번 물리면 곧장 애견천국으로 가야 할 판이었다. 우리는 뛰어서 도망가고 그 쥐는 어슬렁거리면서 굴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집에 도착하니 슈슈 누나가 징요와 함께 턱을 땅에 대고 힘없이 엎드려 있었다. 우리가 멜론상자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할 수 없이 조금 비켜서면서 슈슈 누나가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대책이 없어.”
나는 그 말을 딱 한 번 들었는데, 한밤중에 아빠가 엄마랑 얘길 하다가 그 말을 하고 바깥으로 나가버렸기 때문에 “안녕"이나 “잘 자"처럼 무슨 인사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형하고 내가 돌아오자마자 누나가 그 소리를 하기에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누나, ‘대책이 없어’가 무슨 말이야?”
“ ‘대책’이 ‘없다’는 말이야.”
“뭐가 없다구?”
“대책이 없다구.”
“ ‘대책’이 뭔데?”
“ ‘대책’은… 응… 지붕 같은 거야. 지붕이 없으면 비를 맞지. 그러니까 대책이 없으면 지붕이 없는 거고 그러면 비가 오면 비를 맞는 거야.”
“그럼 비가 안 오면 지붕이 없어도 되니까 대책이 없어도 되는 거겠네.”
“그렇지. 근데 제일 큰 대책은 먹을 것이야. 비는 가끔 오지만 배는 항상 고프잖아. 쥐, 개구리, 벌레, 뱀, 나비,… 넌 뭐가 제일 먹고 싶니?”
“나는 도마뱀.”
“맞아, 그것도 다 대책이야. 그런데 그런 게 하나도 없어서 ‘대책이 없다’고 그런 거야.”
누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웽웽거리는 날파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쓰레기더미 위로 불쑥 솟아나왔다. 입에는 커다란 개구리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실로 며칠 만에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너무나 행복해서 잠도 오질 않았다.
아치 형과 나는 꼬리밟기 놀이인 쿰보쿰보를 하고 엄마는 슈슈 누나와 징요에게 기품 있게 걷는 자세를 가르쳐주었다. 사실 우리 고양이들에게 걸음걸이는 교양의 척도다. 모든 사냥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혈통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 집 혈통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는 슈슈 누나와 징요에게 하얀등대족의 걸음걸이를 연습시켰다.
누나는 금방 따라 하긴 했는데 아직도 고개가 좀 처진다고 몇 번씩 다시 걸어보곤 했다. 막내 징요는 앞다리가 벌어져서 도대체 자세가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는 개도 걷겠다.”
얼마나 속 터졌으면 엄마가 그런 심한 말을 했을까.
징요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걸음걸이 연습을 했지만 우리가 봐도 영락없이 푸들의 걸음걸이였다.
우리는 막내를 징요라고 안 부르고 주로 별명인 팅요라고 불렀는데, 징요는 작은 불꽃이라는 뜻이고 팅요는 치와와나 말티즈같이 작은 개를 일컫는 말이었다.
“팅요라 팅요라 팅팅요 팅요, 팅요 팅팅요.”
형과 나는 쿰보쿰보를 하면서 박자에 맞춰 팅요 노랠 즉석에서 지어 불렀다. 듣다 못한 엄마가 한 말씀 하셨다.
“고양이는 남의 상처를 가지고 놀리지 않는다. 나의 상처는 명예지만 다른 고양이의 상처는 나의 수치다. 이제 징요를 그만 놀려라.”
엄마는 꼬리로 가볍게 징요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우리가 징요를 놀리기는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고양이를 꼽으라면 단연코 징요를 꼽을 것이다. 앞발을 모으고 엎드려 자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멜론상자 입구의 해 그림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 있었다. 한마디로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싫지가 않았다.
징요는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더 많았다. 깨어 있을 때도 우리처럼 신나게 놀거나 하기보단 골똘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처럼 느릿느릿 기어 다녔다. 엄마는 그런 막내를 놀리는 우리를 나무라시지만 솔직히 우리는 징요를 어떻게 하면 웃게 만들까 하는 배려로 오히려 막내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것이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징요가 곧 우리 곁을 떠나갈 거라는 걸 엄마를 비롯해서 우리 식구 모두 알고 있었다. 엄마는 좋다는 약초 뿌리를 캐오기도 하고 애견천국에 입원이라도 시킬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사람세계에 편입되지 못한 동물들에게 자비는 내리지 않았다.
징요는 고양이 류케미아에 걸렸다. 이제는 젖 빠는 흉내도 내지 않는다. 마른 들풀처럼 거칠어져가는 털은 더 이상 윤기가 흐르지 않는다. 서서히 꺼져가는 작은 생명의 불꽃, 징요. 엄마는 몇 번이나 징요를 발로 세웠지만 징요는 헝겊인형처럼 쓰러졌다. 우리는 목에 통나무가 박힌 것처럼 울음을 참았다.
징요가 떠나자 멜론상자 안은 아주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형과 나는 더 이상 쿰보쿰보를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을 누르듯 쓰레기는 점점 더 높이 쌓여갔다. 쓰레기산의 높이는 우리가 태어났을 때의 거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아무리 쓰레기가 많아도 먹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간혹 삼치구이를 덮었던 신문지에서 나는 비린내가 전부였다.
나는 이다음에 죽어서 불가사리가 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불가사리라면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것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어둠이 그 자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이 없는 것이 어둠이듯이, 절망도 그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는 것이 절망인 것이다. 징요의 죽음도 우리로부터 희망을 빼앗지는 못했다. 징요의 모습은 아침이 올 때마다 조금씩 바래갔다. 나는 징요의 모습을 점점 잊는다는 것이 슬퍼서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징요가 자던 모습을 생각해놓고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윤곽선이 희미해져갔다. 제일 먼저 코 오른쪽에 난 수염 중에 첫 번째 것이 제일 길었는지 세 번째가 길었는지 까먹었다. 그리고 귀가 뾰족했는지 뭉뚝했었는지도 점점 희미해지고 한 보름쯤 지나니까 전체적인 윤곽은 기억이 나는데 발 포갠 모습이나 털의 윤기 정도, 눈, 코, 입의 정확한 선은 기억나는 게 없었다. 고양이의 기억력이 나쁜 게 아니라 매일매일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