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온갖 잡다한 수다를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그때마다 방 안은 고요해졌다. 그 작은 침묵 때마다 감정의 표출이 희박해져가던 어머니는 “앗, 지금 천사인지 귀신인지 아무튼 뭔가가 우리 위를 쓰윽 지나갔어”라고 장난을 치고 그 말에 여동생은 기겁을 하곤 했다.
한낮에는 인기척 없는 산길을 그냥 걸었다. 어머니는 노상 입는 보풀이 일어난 울코트 위에 타탄체크의 무릎덮개를 걸치고, 나는 정원 작업용 멜빵바지, 여동생은 플리스의 재킷을 두 개나 껴입은 채 꽃가위나 낫을 휘두르며 걸었다.
여동생은 아름다운 소프라노로 ‘투아 에 모아’의 <아무도 없는 바다>, ‘빌리 방방’의 <하얀 그네>를 흥얼거렸다. 나는 젊은 시절에 좋아하던 우자키 류도의 발라드 <나도 모르게>를, 가사를 잊어버려서 멜로디만 콧노래로 부르며 걸었다. 아사카와 마키의 <빨간 다리(橋)>,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노래는 차례차례 입을 뚫고 나왔다. 십대부터 이십대에 걸쳐 내가 살았던 세계의 한 귀퉁이에서 시대적인 분위기를 풍풍 풍기며 군림하던 노래들. 어둡고 센티멘털했던 나의 분신을 거품처럼 온몸에 휘감기게 하는 노래들. 젊음을 잃어버린 몸에서 젊은 시절의 노래가 여전히 퇴색되는 일 없이 떠오르는 그 신비함 때문에 나는 문득 눈물을 글썽일 뻔했다. 노래 속에서도 몇십 년이 흘렀다. 하지만 노래하는 자가 있는 한 노래는 결코 늙는 일이 없다.
마을 사람들과 숲 속에서는 웬만해서 마주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음치라도 우리는 태연했다. 정적 속에서 겨울새(분명 개똥지빠귀일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가 삐이익 찌이이 하고 날카롭게 마주 울어대고, 주위의 대나무 숲은 곳곳에서 줄기와 섬세한 잎을 맞비비며 가느다란 시냇물 같은 소리를 냈다. 밤이 되면 여동생은 혼자 사는 도쿄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낮에 수확해온 야생 등나무 덩굴을 동그랗게 말고 찔레꽃 열매와 시든 가지를 한데 얽어 리스를 만들었다. 그게 너무 멋있어서 “이거, 많이 만들어서 팔자. 한정 판매 루트를 만들어보는 거야”라고 여동생을 꼬드겼다. “어쩌면 야생 대마초도 있을지 몰라. 그것도 찾아내서 밀매 루트를 만들자.” 그렇게 악동들 같은 계획을 짜기도 했다.
잼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해 겨울이었다. 아직 겨울딸기는 열리지 않는 때라서 동네 과일가게에서 사온 오렌지의 껍질을 벗기고 여자 셋이 손끝을 적셔가며 열심히 안주머니 속의 과육을 끄집어냈다.
“그거 알아? 잼의 마무리에는 럼주나 브랜디를 몇 방울 떨어뜨리는 게 좋아.”
나는 말했다. 우연히 읽은 과자 만들기 책에서 배운 것이었다. 요리에 이론은 필요 없다. 그저 맛있으면 된다. 어머니는 새 잼을 담은 병마다 숟가락을 넣어 어린애처럼 쪽쪽 핥고 다녔다.
“안 돼. 곰팡이 생긴단 말이야.”
내가 나무라도 소용없었다.
“그러면 내가 전부 다 먹을게.”
“그럼 나도 맛 좀 봐야지.”
여동생이 잽싸게 어머니를 따라 잼 병에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이그, 식탐도 많은 여인네들. 이제 곧 너희들 배는 밭이 될 거야. 흥, 날마다 김을 매주고 있으니까 괜찮아.
서로 찧고 까불면서 잼은 만드는 족족 여자 셋의 입으로 들어갔다. 병은 일진일퇴하고 있었지만 그해 겨울에 어머니는 명랑하고 천진했다.
“별똥별 구경하자.”
그다음 해 여름에는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밤하늘과 생물 관찰이 일과가 되었다. 무수한 개미와 하늘소,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노린재가 어지러이 나는 베란다에서 몇 십 분씩 입을 헤벌리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데키 체어에 깊숙이 몸을 묻고, 가슴에는 작은 와인 병을 품고, 별똥별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다.
“저건 도라지로야.”
“지금 저건 오카모토타로 아니냐?”
“그럼 저쪽 것은 시바 료타로야.”
“아, 저건 아츠코.” (어머니의 여학교 때 친구. 한신 대지진 때 고베에서 변을 당했다).
모두 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의 밤하늘에 별은 깜짝 놀랄 만큼 가까이에서 반짝이고, 별똥별이 하나 또 하나 스쳐갔다. 그 아래로 검디검은 숲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대담함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은밀한 동물의 기척이 들려왔지만 이 집 베란다의 우리는 무심히 안전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들려? 저거, 너구리 소리야. 나는 여우인 거 같은데? 아니, 저 발소리는 틀림없이 사슴이야. 바보, 이런 곳에 사슴이 있겠니? 그러니까 그건 가정, 가정(もしか, 모시카)의 사슴(しか, 시카)이지. 가정? 가정이라니, 그걸 지금 개그라고 하는 거야? 그래, 미안하다, 썰렁한 개그여서. 아하하, 저건 바다에서 올라온 굴들이 줄줄이 행진하는 소리야. 아아, 나도 언제 꼭 한번 보고 싶다, 굴의 행진. 아이, 나는 눈에 띄는 즉시 버터 소테로 요리해서 먹어버릴래. 앗, 그런 얘기하는 사이에 별이 저렇게……. 저건 누구? 응, 그건 이름 없는 개똥이.
깔깔 웃어가며 어둠 저 밑바닥에 몸이 가라앉는 듯한 인력을 느꼈다. 인간은 이렇게 깔깔거리는 동안에도 발치에서 시시각각 죽음 쪽을 향해 빨려들어간다. 이렇게 별을 바라보는 사이에도 조금씩 뭔가가 변해간다는 실감이 들었다. 균일하고도 정확하게 흘러가는 밤의 시간 속에서 나는 이름이 들먹여진 세상 뜬 사람들의 자취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이제 그리 멀지 않을 터인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남동생의 두 아이들도 이 베란다에서 별똥별을 보았을 것이다. 나 없는 사이에 찾아왔을 때는 천진난만한 선물을 남겨놓고 갔다. 언젠가는 참나리의 둥근 구슬싹(珠芽) 한 줌이 주방 바구니 안에 들어 있었다. 붙여놓은 메모지에는 ‘고모에게. 다리가 나오는 참나리 알이에요’라고 적혀 있었다. ‘다리’라는 건 자생하는 참나리 구근을 파보니 사방팔방으로 뿌리가 뻗어나가 그게 발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 오는 날에 왔었는지, 어린이용 우산이 현관 참에 세워져 있기도 했다.
내가 그들에게 선물을 남기는 일도 있었다. 바닷가에서 주워온 오징어 등뼈, 작은 돌멩이, 씻어 말린 울긋불긋한 해초, 내가 직접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둔 거대한 아이스크림 같은 거. 그러면 다시 그들은 내가 없을 때에 또 다른 보답을 남겨주고 갔다. 이를테면 색종이로 접은 꽃게와 장수풍뎅이, 개구리. 벽에 온통 그런 색종이 생물이 압핀으로 꽂혀 있었다. ‘올해의 곤충채집’이라는 메모지를 덧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