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때, ‘등대로’라는 말이 으레 안개처럼 떠오른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등대로』를 읽은 건 벌써 삼십여 년 전의 옛일이다. 어떤 스토리였는지 윤곽이 흐릿하다. 그렇건만 너무도 서툴러서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연극 대사처럼 이 소설의 첫 부분 “그래, 물론이란다, 내일 날씨만 좋다면”이라고 가족의 피크닉을 선언하는 주인공 부인의 목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침식이 진행된 이 바닷가에도 육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아득한 저 끝에 똑같이 하얀 등대가 서 있기 때문일까. 구마노나다(熊野灘)와 엔슈나다(遠州灘)를 향한 곶 위에 우뚝 서 있는 등대는 풍경 화가들이 모여드는 명소여서 역의 관광 포스터에도, 관광객들이 집어가는 팸플릿에도 반드시 그 전체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구불구불한 돌계단과 곶의 끝에 선 하얀 벽의 성당 같은 등대. 새파란 하늘과 태평양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 선명한 흰빛, 관(冠) 모양의 머리를 가진 조화로운 건물 형태와 등대의 프레넬 렌즈의 구조 등, 나도 포스터와 팸플릿을 통해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바닷가 길을 따라 걸어간다면 여기서 약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라면 삼십여 분 만에 곶 바로 밑의 어항(漁港)에 도착할 것이다. 그렇건만 나는 아직 그 등대에 가본 적이 없었다.
끝까지 읽느라 몹시 고생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이 문득문득 머리를 스치는 건 이 이야기의 제2장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은 지나간다’라는 제목이 붙은 짤막한 2장에는 결국 등대에 가지 못한 일가족의 십 년 뒤의 이야기가 그들이 사랑한 해변의 별장이 황폐해져버린 모습과 함께 묘사되었다고 기억한다. 뿔뿔이 헤어지고 개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는 그 일가족의 이야기가 머나먼 꿈처럼 기술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대체 그 2장의 화자는 누구였을까. 등대에 가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버린 그 가족 중의 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별장에 모인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을까. 혹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집에 깃든 정령의 목소리였을까. 십 년 뒤, 남겨진 사람들끼리 마침내 등대에 찾아갔는지 어떤지도 이미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읽어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나의 뇌리에는 『등대로』라는 책 제목과 2장의 제목인 ‘시간은 지나간다’, 그리고 첫머리에서 부인이 했던 “그래, 물론이란다, 내일 날씨만 좋다면”이라는 말만 허공에 덜렁 매달린 채 남겨져 있다.
나 또한 작중의 부인처럼 “내일 날씨만 좋다면”이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등대로의 산책을 계획하고 가져갈 것의 목록(소금 맛이 나는 주먹밥과 달콤한 달걀부침, 차를 넣은 페트병, 카메라와 비닐시트 등)을 메모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륙색을 메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도 넣고 휘적휘적 저 하얀 등대를 향해 가는 건 아주 즐거울 것이다.
등대로, 등대로.
“내일은 가볼까?”
“그래, 내일 날씨만 좋다면.”
봄날의 따스한 아침에 가는 게 좋지, 아니, 여름의 번잡스러움이 지나간 가을 오후가 좋아, 그래, 겨울의 황혼 무렵도 좋을지 몰라, 라면서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사이에 시간은 지나갔다. 캄캄한 어둠의 바다를 비쳐주는 프레넬 렌즈의 빛이 거품이 이는 파도 끝을 반짝거리게 하고 이쪽을 향해 무수한 팔을 내밀어주는 환영에 사로잡힌 날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가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분명 날씨가 나빠서였을 것이다. 내 하얀 등대는 아직도 미지의 것, 만나지 못한 것으로서 바닷가 아득한 저 먼 곳의 곶에 남겨져 있다. 길고 긴 기다림의 십 년. 바로 근처에 있는데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조금씩 침식되어간 옅은 기대감과 계절별의 유혹.
그 십 년을 지금도 그저 보내고 있는 나에게 곶으로 가는 길은 더욱더 멀어지고, 그렇게 멀어질수록 포스터와 팸플릿을 통해 발견하는 건물의 둥그스름한 형태나 하얀 벽은 실제의 그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으로 변모해가는 것 같다.
그걸 뭐라고 하나. 끈끈하고 투명한 액체가 담긴 둥근 유리공 속에 정교한 마을이나 물고기들, 어떤 것은 모형 범선을 그 안에 가둬둔 장난감의 이름. 거꾸로 들거나 가볍게 흔들면 액체에 뒤섞인 금은 가루가 눈이나 크리스털처럼 쏟아지는 그 차가운 표본 같은 유리 장난감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채, 나는 가볼 기회를 잃은 등대를 유리공 안에 가둬두었다. 하얀 건물에 금은 가루며 크리스털 가루를 뿌려보았다. 내 손바닥 위에만 있는 환상의 미궁…….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의 제2장은 그런 식으로 상실된 한 가족의 나날을 오로지 추억하는 형식으로 묘사되어 있었던가. 시간 속에 매몰되고 뒤엉킨 기억의 미궁을 헤매듯이.
아니, 어쩌면 그게 아닌지도 모른다. ‘시간은 지나간다’라는 2장의 주인공은 가족이나 남겨진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계단이나 벽, 아무도 없는 집에 휘몰아치는 바람, 경첩이 떨어져 나간 창문에 비쳐드는 한 줄기 등대 불빛의 무정함, 그 무의미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의 한 부분이 머리를 스치는 건 이 집의 십 년 세월과 무관한 게 아닌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럼주나 브랜디를 몇 방울 떨어뜨리는 것뿐.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든 겨울딸기 잼이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끓고 있는 냄비 안을 들여다보며 나는 1996년 겨울, 1997년 여름과 가을, 1998년 봄……, 그리고 그 뒤에도 이 집을 찾아왔던 가족 모임을 떠올렸다.
상념 속의 집은 항상 오월의 빗속에 출현했던 새로 깎은 흰 기둥과 함께 나타난다. 한 마리의 꿩에서부터 시작된 이 집에는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한 감정의 어긋남이나 불행, 붕괴가 찾아온 건 아니다. 단지 ‘시간은 지나간다’라는 그 당연한 세월이 흘러갔을 뿐이다.
이를테면 집이 완성된 1996년 섣달. 도쿄에서는 나와 여동생이, 아이치 현의 친가에서는 어머니가 이 집에 찾아와 며칠을 함께 보냈다. 붉은 삼나무의 베란다와 값싼 삼나무 판자를 빙 둘러친 실내에는 신선한 나무 냄새가 풍풍 나서 떡을 굽는 고소한 향기와 함께 뒤섞여 있었다. 석유스토브로 따뜻해진 공기는 실내를 순환하고, 밤이 되면 반드시 천장에서 나무가 벌어지는 소리가 났다. 열기로 인해 벽 속이나 천장의 대들보 같은 목재가 서서히 말라 터지면서 뜻밖에 날카로운 소리를 올리는 것이다. 투우욱 타악. 나무가 울고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인 기둥이 호흡하고 있다. 열에 의해 팽팽하게 당겨지는 나무의 살. 강해져가는 나무 섬유의 소리.
“아, 또 소리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