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작은삼촌은 전학생을 보자마자 어디서 만난 적이 있니? 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작은삼촌의 군대 친구인 홀쭉이를 닮았다고 말했다. “아니에요. 홀쭉이는 쌍꺼풀이 있고 얘보다 턱이 더 길어요.” 할머니는 친구를 데려온다는 말에 흥분을 해서는 잡채와 불고기를 했다. “처음으로 데려온 친구야.” 할머니는 전학생에게 말했다. 전학생도 할머니에게 저도 친구네 집에는 처음 와봐요, 하고 대답해주었다. 전학생은 밥을 잘 먹었다. 할머니는 전학생의 밥공기에 밥을 더 올려놓았다. 녀석은 잡채와 불고기에 들어 있는 버섯을 골라내지도 않고 먹었다. 급식으로 나오는 버섯을 볼 때마다 난 버섯이 정말 싫어, 라고 말을 하던 녀석이었는데. 작은삼촌은 밥을 다 먹은 전학생에게 혹시 화투칠 줄 알아? 하고 물었다. 옆에서 할머니가 혀를 끌끌거렸다. 작은삼촌이 서른다섯을 넘기면서부터 할머니는 작은삼촌이 무슨 말만 하면 옆에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화투를 쳐봐야 인간성을 알지.” 작은삼촌이 말했다. “그건 사윗감이 왔을 때나 하는 짓이지.” 할머니가 말했다. “얘는 우리집 장손이라 친구를 잘 만나야 하거든.” 작은삼촌이 마루에 담요를 깔며 말했다. 작은삼촌은 능숙하게 화투패를 갈랐다. 작은삼촌이 회사 숙직실에서 벌어지는 고스톱판에 빠져 있다는 것을 식구들은 아무도 몰랐다. 할머니는 그저 야근이 잦아진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작은삼촌의 통장에는 잔고가 하나도 남지 않았고, 일 년치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동료들에게 빌렸다. 몇 달 후, 빚 독촉에 시달리던 작은삼촌은 고모에게 사실을 밝혔고, 고모는 설거지를 하도 해서 거칠어진 손으로 작은삼촌의 등짝을 마구 때렸다. 작은삼촌은 일 년이면 서너 번씩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들곤 했는데, 동료들에게 빚을 진 이후로는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그 돈을 회수하기 전에는 절대 그만둘 수 없어. 작은삼촌은 결심을 했다. 전학생이 세 판을 내리 땄다. 그다음에는 내가 한 번. 그리고 작은삼촌이 한 번. 다시 전학생이 세 판을 이겼다. “너 처음 해보는 거 맞아?” 작은삼촌은 전학생이 이길 때마다 물었다. 전학생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러게 말이에요, 하고 대답했다. 그때 문득 작은삼촌은 전학생을 어디에서 보았는지 생각났다.
작은삼촌은 아홉 살인가 열 살 무렵부터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곤 했다. 한여름이었고 좁은 골목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풍선껌이 쥐여져 있었다. 땀이 차서, 길을 걷다 가끔 멈추고는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야 했다. 골목길은 끝이 없었다. 꿈속에서 작은삼촌은 어느 집 담벼락 아래에 멈추어 풍선껌을 씹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풍선껌 한 통을 다 씹었지만 풍선은 불어지지 않았다. 바보라고 낙서가 되어 있는 담벼락에 기대어 풍선이 불어지지 않는 풍선껌을 씹고 있는 자신을 작은삼촌은 꿈속에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중학생이었을 때 작은삼촌은 그 꿈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작은삼촌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늘 좋은 형이 되고자 노력을 했지만, 대학생이었던 아버지는 동생들 문제 말고도 고민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는 작은삼촌에게 내가 너 어릴 적에 씹던 껌만 주었거든, 미안해, 하고 말했다. 작은삼촌은 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앞차를 들이박고 간신히 멈추던 어느 날, 어쩌면 그 꿈이 평생 자신을 따라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잊을 만하면 다시 불쑥 나타나곤 했다. 새벽에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낯선 길로 운전을 할 때,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창가에 입김으로 사랑이란? 따위의 진부한 낙서를 할 때, 길가다 가로수를 발로 걷어찼는데 그 나무에 나뭇잎이 단 한 개만 달려 있었을 때, 그 순간마다 작은삼촌은 영원히 풍선껌을 불지 못하는 아이가 될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작은삼촌은 풍선껌을 불던 어린아이가 전학생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삼촌은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를 흥얼거렸다. 어쩐지 꿈속이지만 그 아이가 날 안 닮았더라. 어쩌면 풍선껌을 불지 못하던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는 내가 아닐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작은삼촌은 지고도 콧노래가 나와? 하고 면박을 주었다. 전학생이 삼만이천원을, 그리고 내가 이만원을 따고 나자 작은삼촌이 담요를 뒤집어엎었다. “난 안 해. 이것들 알고 보니 사기꾼들이야.” 작은삼촌이 소리쳤다. 그러자 전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화내다간 장가도 못 가겠어요.” 작은삼촌에게 딴 돈을 주머니에 넣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작은삼촌이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용돈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삼촌은 아홉 살인가 열 살 무렵부터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곤 했다. 한여름이었고 좁은 골목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풍선껌이 쥐여져 있었다. 땀이 차서, 길을 걷다 가끔 멈추고는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야 했다. 골목길은 끝이 없었다. 꿈속에서 작은삼촌은 어느 집 담벼락 아래에 멈추어 풍선껌을 씹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풍선껌 한 통을 다 씹었지만 풍선은 불어지지 않았다. 바보라고 낙서가 되어 있는 담벼락에 기대어 풍선이 불어지지 않는 풍선껌을 씹고 있는 자신을 작은삼촌은 꿈속에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중학생이었을 때 작은삼촌은 그 꿈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작은삼촌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늘 좋은 형이 되고자 노력을 했지만, 대학생이었던 아버지는 동생들 문제 말고도 고민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는 작은삼촌에게 내가 너 어릴 적에 씹던 껌만 주었거든, 미안해, 하고 말했다. 작은삼촌은 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앞차를 들이박고 간신히 멈추던 어느 날, 어쩌면 그 꿈이 평생 자신을 따라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잊을 만하면 다시 불쑥 나타나곤 했다. 새벽에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낯선 길로 운전을 할 때,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창가에 입김으로 사랑이란? 따위의 진부한 낙서를 할 때, 길가다 가로수를 발로 걷어찼는데 그 나무에 나뭇잎이 단 한 개만 달려 있었을 때, 그 순간마다 작은삼촌은 영원히 풍선껌을 불지 못하는 아이가 될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작은삼촌은 풍선껌을 불던 어린아이가 전학생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삼촌은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를 흥얼거렸다. 어쩐지 꿈속이지만 그 아이가 날 안 닮았더라. 어쩌면 풍선껌을 불지 못하던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는 내가 아닐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작은삼촌은 지고도 콧노래가 나와? 하고 면박을 주었다. 전학생이 삼만이천원을, 그리고 내가 이만원을 따고 나자 작은삼촌이 담요를 뒤집어엎었다. “난 안 해. 이것들 알고 보니 사기꾼들이야.” 작은삼촌이 소리쳤다. 그러자 전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화내다간 장가도 못 가겠어요.” 작은삼촌에게 딴 돈을 주머니에 넣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작은삼촌이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용돈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