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1963~)의 두 번째 소설집 『가던 새 본다』(1998)에 실린 단편 「1996 겨울」은 김승옥(1941~)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의 강력한 자장 아래 놓여 있다. 서울이 아닌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말하자면 「서울 1964년 겨울」로부터 한 세대쯤 뒤의 겨울 풍경을 그리고 있다.
두 작품의 겨울 풍경이 내비치는 공통점은 제법 여럿이다. 우선, 양쪽 모두 우연하고도 즉흥적인 계기로 한 덩어리가 된 세 남자를 등장시킨다. 김승옥의 단편에서는 구청 병사계에 근무하는 ‘나’(김)와 대학원생인 ‘안’, 그리고 스물다섯 살인 이 둘보다 열 살 정도 연상으로 보이는 허름한 몰골의 사내가 거리의 포장 친 선술집에서 처음으로 마주친다. 한창훈의 단편에서는 공단의 잡부인 나이 지긋한 사내와 삼수생인 청년, 그리고 무명의 소설가인 ‘나’가 이본 동시 상영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본 인연으로 어울려 술을 마신다.
두 소설의 인물들이 겨울 추위에 수반되는 막연한 불만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 역시 공통적이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대학원생 안은 비교적 유복한 집안 출신임에도 집에서는 어쩐지 답답하고 무언가에 묶여 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추운 겨울 거리로 나선다(“밤이 됩니다. 난 집에서 거리로 나옵니다. 난 모든 것에서 해방된 것을 느낍니다.”). 그는 동갑내기이긴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이인 ‘나’에게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어떤 꿈틀거림을 말하느냐는 반문에 이렇게 답한다. “어떤 꿈틀거림이 아닙니다.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그냥 말입니다. 예를 들면… 데모도…” 그가 흘리듯 말한 데모란 이 소설의 배경이 된 1964년 봄에서 여름 사이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대일 굴욕외교 반대’ 데모를 가리킬 것이다. 6?3 사태라고도 일컬어지는 그 데모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꾀하고 있던 일본과의 굴욕적인 수교에 분개해서 일어난 시위였다.
그런 ‘안’과 먼저 말을 섞은 ‘나’인즉 본래 사관학교를 지망해 시험까지 치렀지만 낙방한 적이 있으며 그것을 지금까지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는 참이다. 그런가 하면 뒤늦게 두 사람과 일행이 된 삼십대 사내는 급성 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주검을 대학병원에 팔고서 혼자 괴로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1996 겨울」의 나이 지긋한 잡부는 아내와 잠자리를 하려 할 때마다 발기가 되지 않는 증상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나’는 소설이 써지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고, 삼수생은 공부에 전념하지 못해 변두리 극장을 찾은 터였다. 특히 세 사람은 포르노에 가까운 외국 영화를 사정없이 가위질하는 바람에 “여탕 수챗구멍에는 흔해빠지고도 남을 터럭 몇 가닥”을 끝내 보여주지 않는 검열 당국을 향해 맹렬한 분노를 터뜨린다.
“올바른 국민정서와 청소년의 건강한 의식함양이란 쉰내 나는 문구만으로 평생을 밥 빨아먹고 살 게 뻔한 공연윤리 심사위원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그 한마디 말(=씨팔놈들)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이 소설의 세 주인공이 찾아 들어간 대폿집의 텔레비전에서 “오늘 새벽 신한국당 단독으로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기습 처리했는데 시간이 육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김승옥 소설에서의 6?3 사태에 관한 간접적인 언급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분노의 배경에 암울한 정치적 상황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32년의 시차를 두고 씌어지고 발표된 두 작품 사이의 영향관계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두 소설의 첫 대목부터가 유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서울 1964년 겨울」 첫 문장)
“싸락눈이 내리는 겨울에 이처럼 이본 동시상영 극장에 와본 사람은 이곳이 얼마나 추운 곳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1996 겨울」 앞부분)
싸구려 극장에서 만난 「1996 겨울」의 세 사람이 대폿집으로 옮겨 가는 데에서부터 두 소설 사이의 유사성은 한결 긴밀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후배 작가인 한창훈의 오마주 차원의 흉내 내기에 따른 것이다. 가령 한창훈의 소설에서 ‘나’는 자신이 소설가라는 사실을 다른 두 사람에게 밝히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됐겠지만 우리가 술집까지 걸어온 풍경, 즉 겨울바람 속을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서지도 않거나 서 봤자인 세 명의 남자로 인해 1964년 서울의 그 허허롭고 스산했던 겨울을 이야기한 소설 하나를 떠올리며 조금 솔직해졌던 거였다”라며 대놓고 「서울 1964년 겨울」을 걸고 넘어간다. 또 일행이 대폿집에 도착한 뒤에는 “참새가 있었다면 몇 마리 구워 달라고 해 볼 만했지만”이라고 부연하는데, 이것이 오뎅과 군참새 등을 팔았던 김승옥 소설의 포장마차를 떠올린 진술임은 물론이다. 이 작품의 말미에서 역시 ‘나’가 “어디 불난 데 없나?”라며 불구경 가고 싶다는 말을 할 때에도 그는 “나도 모르게 1964년 겨울을 이야기한 소설을 떠올린 거였다.”
그런가 하면 이런 대목들은 어떤가.
“중국집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는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고, 돈은 천원이 없어졌고 사내는 한쪽 눈으로는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 있었고, 안은 도망갈 궁리를 하기에도 지쳐버렸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악센트 찍는 문제를 모두 틀려버렸단 말야, 악센트 말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서울 1964년 겨울」)
“사내는 서지 않는다고 했고 삼수생은 공부가 전혀 안 된다며 마음 잡아야죠, 소리만 연거푸 뱉어냈으며 나는 소설이 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1996 겨울」)
합해서 여섯인 이 겨울 남자들이 즉흥적인 동아리를 이루긴 했지만 바른 의미에서의 공동체에는 이르지 못하고 각자의 상처와 고민에 시달리는 단자적 개인으로서 철저히 고립, 단절되어 있는 상태임을 인용문들은 잘 보여준다. 이렇게 허술하고 무목적적으로 결합된 무리이기 때문에 술집에서 나온 그들은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서울 1964년 겨울」)으며 “갈 곳이 없었다.”(「1996 겨울」)
김승옥의 소설에서 세 사람은 아내의 주검을 팔아 받은 돈을 그날 중으로 다 써 버려야 한다는 사내의 제안에 따라 택시를 타고 불자동차를 쫓아가서는 페인트 상점의 화재를 구경한다. 한창훈 소설의 ‘나’가 불구경 운운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을 겨냥한 것이다. 택시를 타고 불구경을 하러 가는 길에 ‘안’은 사내에게 ‘종삼’ 사창가로 가서 돈을 다 써 버리자고 제안하지만 사내의 경멸적인 웃음 앞에 무산되고, 결국 사내는 남은 돈을 타오르는 불길 속에 던져 버린다. 한창훈의 소설에서도 대폿집에서 나온 일행이 갈 곳 없어 하자 발기 부전의 늙다리 사내는 “우리 오입이나 하러 갈까?” 하는 제안을 내놓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서울 1964년 겨울」)
상처한 사내의 바람대로 돈을 모두 써 버린 세 사람이 함께 여관에 들었을 때를 묘사한 인용문은, 그럴 리가 없겠지만, 어쩐지 한창훈 소설을 염두에 둔 대목처럼 읽히기도 한다. 각자 방 하나씩을 얻어 든 여관에서 사내는 결국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고, 다음날 아침 스물다섯 살짜리 두 청년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계통도 기약도 없이 헤어진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다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서울 1964년 겨울」 마지막 문장)
즉흥적인 공동체의 최후가 어설프고 쓸쓸하기는 「1996 겨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너절한 눈을 피하기 위해 눈을 향해 아무렇게나 걸어가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몸을 흔들며 빙판에 꽈당 넘어진 사내를 붙잡아 일으켜세우며 어디론가로 걸어가기 시작한 거였다.”(「1996 겨울」 마지막 문장)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과 한창훈의 「1996 겨울」은 30년 남짓한 시차를 두고 씌어졌으나 어쩐지 비슷한 구도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양쪽 모두 사회의 주변부를 배회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느끼는 불만과 불안을 스산하게 점묘한다. 등장인물들의 무목적적이고 방향 없는 방황과 분노는 그 주체인 주인공들이 아니라 그들을 품고 있는 사회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서울 1964년 겨울」과 「1996 겨울」은 자신들의 비루함으로 사회 전체의 병증을 증거하고 고발하는 변두리 인생들의 오디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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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