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황제는, 만일 자기가 항상 모든 일을 언제 시작하면 좋은가, 또 어떤 사람과 일을 함께 하며, 어떤 사람과는 일을 하면 안 되는가, 또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 하는 것들을 알고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 절대로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한 끝에 황제는 자기 나라에 포고령을 내려 모든 일에 가장 적합한 때는 언제인가? 어떤 인간이 가장 필요한 사람인가? 모든 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인가? 그것을 실수 없이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에게는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많은 학자들이 황제에게 와서 그의 질문에 여러 가지 대답을 했다.
첫 질문에 대해서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업을 시작할 가장 적당한 시기를 알기 위해서는 미리 연월일(年月日)을 기록한 표를 만들어 그 예정표대로 엄격하게 정한 시일을 지켜서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모든 일은 비로소 가장 적절한 시기에 행해질 수 있다.
두 번째로 온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일을 언제 하느냐 하는 것은 사전에 결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놀이에 정신을 뺏기지 말고, 항상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그때가 닥치면 자연히 요구되는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로 온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황제가 아무리 그때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깊이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언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정확하게 결정하는 일은 한 사람의 능력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므로 평소 현명한 사람들을 고문으로 두고 그 충고에 따라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로 온 사람이 말했다. 이 바쁜 세상에서는 고문을 두고 일일이 물어볼 시간이 없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는 적당한 시기를 즉각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다급한 사건이 일어나게 마련이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리 언제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아 둬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점쟁이뿐이다. 따라서 모든 것에 대해서 가장 적당한 시기를 알기 위해서는 점쟁이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역시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다.
어떤 사나이는 황제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그의 보좌역, 즉 정치가라고 말했다.
두 번째 사람은 황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성직자라고 말했다.
세 번째 사람은 황제에게 누구보다도 필요한 사람은 의사라고 말했다.
네 번째 사람은 황제에게 누구보다도 필요한 사람은 군인이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냐는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대답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학문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이란 전술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사람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모든 대답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에 황제는 그 어느 하나에도 찬성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상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그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현명하기로 이름난 한 도사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도사는 숲 속에 살면서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접하는 사람이란 다만 서민들뿐이었다. 그래서 황제는 수수한 옷을 입고 갔을뿐더러 호위하는 군사들도 암자까지 데리고 가지 않았고 말에서 내려 도사가 있는 데까지 걸어갔다.
황제가 암자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도사는 자기 집 앞에서 밭이랑을 일구고 있었다. 황제를 보자 그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계속 밭이랑을 일구고 있었다. 빼빼 여윈, 몸이 약한 듯한 사람으로 가래를 땅에 찔러 흙을 파 올리는 데도 매우 힘이 드는 듯 숨이 차서 헐떡이고 있었다.
황제는 그에게 가까이 가서 말했다.
“현명한 도사여, 나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해서 당신에게 그 답을 듣기 위해서 이렇게 왔소이다. 묻고 싶은 것은 첫째 일을 후회 없이 하려면 어떤 때 해야 하며, 또 그것을 어떻게 해야 놓치지 않는 것인지, 둘째는 어떤 사람이 가장 필요한 사람인가, 즉 어떤 사람과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과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셋째로는 어떤 일이 가장 중요하며, 모든 일 가운데서 무엇을 다른 일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인가, 대개 이런 것들입니다.”
도사는 황제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손에 침을 탁 뱉더니, 또다시 가래질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힘이 들겠군요.” 하고 황제는 말했다. “그 가래를 이리 주십시오. 내가 대신 좀 해주리다.”
“고맙소.”
도사는 가래를 건네 주고는 거기 앉았다.
황제는 밭을 두 이랑이나 갈아주고 난 뒤 일손을 멈추고 조금 전의 질문을 되풀이해서 물었다. 그러나 도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더니 가래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자, 이번엔 당신이 좀 쉬시오. 내가 할 테니까…”
그러나 황제는 가래를 돌려주지 않고 계속 일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 해는 산 너머로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황제는 가래를 땅에 꽂고 다시 말했다.
“현명한 도사여, 나는 내가 묻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 당신에게 온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대답을 해 줄 수 없다면, 그렇다고 말해 주기 바라오.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아, 누군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구먼…” 하고 도사가 말했다. “도대체 저게 누굴까?”
황제가 뒤를 돌아보니까 정말 한 사나이가 이쪽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나이는 두 손으로 배를 안고 있었는데, 그 손 밑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황제의 옆에까지 달려오더니 수염이 많은 그 사나이는 땅바닥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가냘프게 신음할 뿐이었다.
황제는 도사와 함께 사나이의 옷을 헤쳤다. 사나이의 배에는 큰 상처가 있었다. 황제는 할 수 있는 데까지 그 상처를 씻어 주고, 자기 손수건과 도사의 손수건을 가지고 그 상처를 싸맸다. 그러나 피는 계속해서 흘렀기 때문에 황제는 여러 번 그 뜨거운 피에 흠뻑 젖은 손수건을 깨끗이 빨아서 다시 상처를 싸매곤 했다.
간신히 피가 멎었을 때 부상자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무언가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황제는 깨끗한 물을 떠다가 부상자에게 먹여 주었다.
그동안에 해는 완전히 져서 서늘해졌다. 황제는 도사와 함께 부상자를 암자로 옮겨서 침대 위에 눕혔다. 부상자는 곧 잠들었다. 황제는 여행과 밭일로 아주 지쳐 있었기 때문에 마루 위에 눕자 그 역시 잠이 들었다. 그는 짧은 여름밤을 한숨에 자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그리고는 도대체 자기는 어디 있는가, 또 침대 위에 누워서 번들거리는 눈으로 지그시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저 이상한 털보 사나이는 도대체 누구인지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황제가 눈을 뜨고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안 텁석부리 사나이는 힘없는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르니, 너를 용서할 일이 없지 않은가?”
황제가 말했다.
“당신께선 저를 모르시지만, 저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원수입니다. 당신에게 형제들이 사형당하고, 게다가 제 재산이 몰수되었기 때문에 저는 언제든 당신에게 복수하려고 벼르고 있었던 당신의 원수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혼자 도사를 찾아 나섰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오는 길목을 지켰다가 당신을 죽이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나 온종일 기다려도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이 있는 곳을 알기 위해서 숨어 기다리고 있던 곳에서 나왔다가 당신의 호위병에게 들켰습니다. 그들은 나를 보자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로부터 도망을 친 것입니다. 만일 당신께서 저의 상처를 치료하여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피를 흘리고 죽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죽이려 했는데도 당신은 저의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오늘 이후 제가 계속 살아갈 수만 있고, 당신이 허락하신다면 저는 가장 충실한 노예로서 당신에게 봉사하겠으며, 또 제 자식들에게도 명령해서 당신을 극진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황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쉽사리 원수와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그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몰수했던 재산을 돌려주고 게다가 자기의 하인과 의사를 보내서 치료까지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부상자와의 이야기가 끝나자 황제는 도사를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문간으로 가는 계단으로 갔다. 그는 도사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자기의 질문에 대한 답을 묻고자 했던 것이다.
도사는 들에서 어제 갈아 놓은 밭이랑에서 배추씨를 뿌리고 있었다.
황제는 그 옆에 가까이 가서 말을 걸었다.
“현명한 분이여,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당신에게 내 질문에 대답해 주기를 부탁하오.”
“아니, 그 대답은 벌써 끝나지 않았소?”
도사는 빼빼 마른 종아리를 구부리고 앉더니, 자기 앞에 서 있는 황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대답이 끝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황제가 되물었다.
“무슨 소리라뇨?” 하고 도사는 말을 이었다.
“만일 당신이 어제 내가 지쳐 있는 것을 불쌍히 생각하지 않아 나 대신 이 밭이랑을 일궈 주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면, 저 힘이 센 부상자는 당신께 달려들었을 테니, 당신은 나와 같이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 뻔했소.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가장 적당한 시기는 당신께서 가래질을 할 때였고,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또 가장 중요한 일이란 것은 남에게 선행을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단 말이오.
그리고 또 사나이가 달려왔을 때 가장 적당한 시기는 당신이 그 사람을 간호했을 때였으니, 그 이유는 만일 당신이 그 사나이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당신과 화해를 하지 않고 죽어 버리고 말았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그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저 사나이였고, 당신이 저 사나이를 위해서 하셨던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오.
그러니까 잘 기억해 둬야 하오.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그 이유는 ‘지금’이라는 하나의 시기만이 우리들 인간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은 현재 자기가 교제하고 있는 인간이오. 그 이유는 자기가 언제 다른 사람과 교제를 가질 수 있을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오. 또 가장 중요한 것이란 남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로, 이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유일한 의미이기도 하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전재. (톨스토이, 동서문화사, 2007)
★ 존 치버에 이어 <타임캡슐 단편>에 소개되는 작가는 톨스토이입니다. 「세 가지 질문」 다음으로 실릴 톨스토이의 단편은 「아시리아 왕 아사르하돈」입니다. 프랑스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틱낫한 스님은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과 「아시리아 왕 아사르하돈」이 '경전의 반열'에 올릴 만한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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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1910)
톨스토이는 1828년 러시아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나 카잔대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촌 계몽활동을 하다가 실패하고 군에 입대했다. 그는 1852년 첫 작품 『유년시절』를 발표한 후 주로 <현대인>이란 잡지를 통해 『소년시절』, 『청년시절』, 『카자크 사람들』 등을 발표했다. 이후 투르게네프, 곤챠로프 등 공인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또한 「바보 이반」, 「두 노인」 등 민중소설도 썼으며 종교론, 예술론, 인생론, 희곡 등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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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근식
중앙대 러시아어학과 교수. 중앙대 동북아연구소 소장. 저서로 『아이뜨마또프 작품의 주제발전연구』, 『러시아정교회와 반체제 및 민족주의』, 『뿌쒸낀의 꿈의 분석』, 『한국에서의 뿌쉬낀 연구』 등이 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의 참회/인생의 길』, 『백치』, 『인생이란 무엇인가』, 아이뜨마또프의 『하얀 배』, 아나똘리 김의 『아버지 숲』, 도스또예프스끼 『백치』, 잘리긴의 『위원회』, 부또프의 『곤충들의 천문학』, 마야꼬프스끼의 『미국 발견』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김주영의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등을 러시아어로 옮겼다.
고산
동서문화사 편집인. 동인문학상 운영위원회 집행위원장. 소설 『청계천』으로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 『고산 삼국지』, 『고산 국어대사전』, 『한국출판100년을 찾아서』, 『新文館 崔南善?講談社 野間淸治. 愛國作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