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방황
셋째 딸 집 건넌방. 노동자2, 3, 4, 셋째 딸.
셋째 딸 어서 드세요. 곧 오실 거예요.
노동자3, 4 감사합니다.
노동자2 집이 좀 바뀌었는데?
셋째 딸 예. 앞으로 자주 오시게 될 것 같아서. 좀, 치워놨어요. 손님이 별로 안 오는 집이라, 창고방 비슷했었거든요.
노동자3 우린 그게 더 편한데.
노동자4 뭐, 우리라고 맨날 라면 냄새 풍기란 법 있우?
노동자2 괜히 폐를 끼친 것 같군요. 그렇게 자주 오지도 않을 텐데.
노동자4 어 형, 무슨 전세 낸 사람 같우?
셋째 딸 전세 아니라, 독채로 써도 좋으니까, 와서 아주 살림 차리세요, 호호. 오시는가 봐요.
셋째 사위 (목소리) 여보. 나 잠깐 봅시다.
셋째 딸 당신이에요? 들어오시지 않구요? 손님들 오셨는데.
셋째 사위 잠깐만.
노동자2 나가보시죠.
셋째 딸 퇴장.
노동자4 무슨 일일까요?
노동자3 뭐, 좀 꼽다는 거 아니겠어?
노동자2 아냐, 남편한테 허락받았다구 했는데.
노동자3 이런 일이 뭐, 남편한테 허락받았다고 괜찮고 그럴 일이 아니잖우.
노동자2 무슨 일이? 이 사람, 이 집 부부는 노동운동 하다 만난 사이야.
노동자4 하이구, 거 여드레 삶은 호박에 이빨 안 먹힐 소리 하지 말우. 이렇게 말끔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뭘. 허여 멀게 가지구.
노동자2 왜, 자네 몰랐나? 난 이 집보다 더 잘 사는 집 출신이야, 그래서 안됐나? 내가 노동운동 못 하란 법 있어?
노동자4 그건, 다. 우리가 배운 대로, 거 뭣이냐, 지식인과 노동자의 결합이니께 좋지만, 아, 형도 사장집 출신이란 말이오?
노동자2 그건 아니지만.
노동자3 그래두 형은 공장 생활 10년이 넘었잖어. 노동자 다 됐지. 그 결합이란 것도, 같이 살면서 맨살 부비고 한솥밥 먹고 그래야 결합이지, 맨날 연구실에서 옛날 책만 뒤적거려서 우리하고 뭔 배짱이 맞겠어?
노동자2 이 집 따님은 옛날에 그런 활동을 좀 하셨어. 대단한 활동가였다구.
노동자3 정말, 형하고는 어떤 사이유.
노동자4 옛날에 연애 좀 한 사이유?
노동자3 이 자식이, 형님이 우리 같은 줄 아냐?
노동자2 니들도 연애하냐?
노동자4 아, 아니요. 그냥 해봤으면 좋겠다는 거지, 우리야 팔팔한 청춘이잖우.
노동자2 그래, 노동운동 한다구 해서 그런 거 기피할 것 없지. 운동하면서 맘에 맞는 사람 있으면, 건강하게 사귀고, 더 맘에 맞으면 결혼하구 애 낳구, 그 애도 활동가로 키우구, 그게 얼마나 좋으냐? 너무 운동이란 걸 어깨 힘 딱 주면서 할 필요 없어. 난, 이 집 따님과 연애한 사이는 아니다만, 그리구, 연애 같은 거야 도저히 생각도 못할 그런 분위기에서, 서로 얼굴도 모르고, 난 알았지만, 활동을 했다만, 그건 비합 운동이니까 그랬던 거고, 지금 우리가 하려는 거야 뭐, 그렇게 유난 떨 것 있나. 우리가 사회주의자는 아니니까.
노동자3 사회주의자는 그럼 연애도 안 하구, 서로 얼굴도 몰라요?
노동자2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 살벌하니까.
노동자3 뭐, 너도 나도 들고 일어나서, 맨날 데모인데.
노동자2 그래도 비합 운동이란 건 달라. 이 집 남편이 니들한테 한 말은, 크게 실수한 거지.
노동자4 그럼 형은, 사회주의자요?
노동자2 나, 어, 그건. 그런 건 왜 물어?
노동자4 아니, 형이 우리라고 하니까. 우린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매? 형은 사회주의자고, 그런 형하고 우리하고는 우리가 아직 아니잖아?
노동자2 어, 그, 그건. 아직 그걸 밝힐 수는 없으니까.
노동자3 형은 우릴 아직 못 믿는 것 아니우?
노동자2 못 믿으면 내가 자네들하고 그런 학습을 하겠나?
노동자4 못 믿는 건 두 가지지. 혹시 우리가 딴 맘먹은 게 아닐까, 그리고 둘째로는, 우리가 못 알아듣지 않을까.
노동자2 아냐, 그런 게 아니라니까. 내 말은, 노조 운동하고 조직 운동하고는 활동 방식이 다르다는 거야, 그게, 어. 대중 조직과 당 조직의 차이라는 건데. 전자야, 그냥 열심히, 대중적으로 하면 되지만, 후자는 절대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거지.
노동자3 하지만 대중들이 그 내용을 알아야 그 당이란 거에 들든지 말든지 할 거 아뇨? 난 형 하는 말이, 너무 과장됐다고 생각해.
노동자2 뭐가?
노동자3 아니, 뭐. 맨날 하는 얘기가, 이대로 노예 상태로는 살 수 없다,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그런 얘기뿐이고, 다음 얘기가 없잖우. 지금이 노예 상태라면, 우리가 살게 될 세상은 얼마나 낳아질는지, 그게 왜 그런지, 등등. 거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소련도 우리보다 훨씬 못 살던데.
노동자2 응, 그거는. 그 정치 잡은 사람들이 뭘 잘못해서 말이야.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 우선은, 잘 사는 게 가장 중요한데 말이야?
노동자4 형 얘기를 들으면, 앞뒤가 거꾸로 같아. 내가 궁금한 게 바로 이 형이 말했던 건데 말입니다. 괜히 더 잘 살게 해 줄 능력이 없으니까, 우리 처지를 과장되게 가난한 걸로, 쪼그라뜨려 말하는 것 같단 말이야. 어딘지, 고리타분한 냄새도 나고. 일할 땐 쌀밥 먹고, 운동할 땐 라면에다 떡볶이 먹고, 그런 식이야.
노동자2 그게, 전망 제시 능력이라는 건데. 그걸, 최대 강령이라고 하는 건데. 최대 강령을 선전해야 하느냐 마느냐, 이게 또 논쟁거리란 말이야.
노동자4 아, 거 툭하면 복잡한 얘기 쪽으로 도망가지 말고, 도대체 뭘 얼마나 잘 산단 말이야? 아, 그 잘사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런 논쟁이 있단 말이야? 그거 뭐 좀 잘못된 거 아냐?
노동자2 응, 그거는. 그런 얘길 하면 잡아가니까.
노동자3 어차피, 그런 얘기 전에도 잡아가잖아? 형이, 맨날 하는 얘기가, 도대체 이런 나라가 어딨냐, 기본 생존권도 압살하는, 전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나라다, 뭐 그런 얘긴데, 그러면서도 툭하면 형은 도바리 아니우, 형은?
노동자2 워낙, 열악하니까, 그건 니들이 더 잘 알잖니? 이 정권이 노동자들을 얼마나 탄압하는지.
노동자4 아, 이왕 도망 다닐 거면, 그 잘난 비전 좀 떳떳하게, 그 내용을 여러 대중에게 밝히면서 도망 다니라 이거유. 아, 몸이 도망 다니는 것도 억울한데, 왜 그 좋은, 잘 사는 내용까지 숨겨?
노동자2 그래, 그건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노동자들 수준이, 아직… 그걸 못 따라와. 아직 열악한 수준이니까.
노동자4 우리는요?
노동자2 너희들? 너희들이야, 그래도 깨인 편이지.
노동자3 노동자들이, 자기들 힘으로, 더 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는데, 깨이고 들 깨이고가 어디 있어. 난 요새 문건들 읽어보면, 괜히 복잡하기만 하지, 뭔가 좀 누추해.
노동자2 응, 아직 좀 어렵지. 문체가 좀 대중적이어야 되는데.
노동자4 그게 아니구, 현실을 잘 따라잡지 못하는, 뭐랄까, 고급 레스토랑 탁자에다, 그지 천을 씌워놓은 것 같은.
노동자2 이 사람, 정신이 글러 먹었군. 아니, 도대체 자네들 중 몇이나 고급 레스토랑을 다닐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부르주아지들의 사치야. 싸그리 없애버려야 할.
노동자4 뭘, 난 좋던데.
노동자3 어허, 그만.
노동자2 좋다니, 자네가 그런 데 가봤나?
노동자3 가긴 뭘 가봤겠어, 그만해.
노동자4 왜 그런데, 형만 다니시는 줄 아슈? 난 그런데 못 다녀요?
노동자3 어허, 그만하라니까. 좋은 일 하자고 모여서 왜 그래?
노동자2 난, 옛날엔 다녔지만, 지금은 안 다녀.
노동자4 난, 옛날엔 못 다녀봤지만, 지금은 다닌다구요.
노동자2 뭐라구? 이 자식이!
셋째 딸 (목소리) 저어, 저요. 잠깐 뵐까요?
노동자2 예? 저 말입니까?
셋째 딸 예.
노동자2 예. 나가죠. 들어오셔도 될 텐데.
노동자2 퇴장.
노동자4 지들끼리, 지랄하고 자빠졌네.
노동자3 얌마, 너 레스토랑 얘긴 왜 끄내는 거야?
노동자4 뭐 이판사판인데.
노동자3 너, 이 일 안 할 거야?
노동자4 노동자 잘 되게 해주겠다는 일인데, 내가 왜 안 하겠우. 하지만, 보시다시피, 꼴이 이래서야.
노동자3 점점 나아지겠지. 마, 형님도 오랜만에 나서시는 일 아니냐. 형님처럼 좋은 분이 없잖아.
노동자4 그걸 내가 몰라? 벨이 꼴리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 집 딸하고 형님하고 무슨 썸씽 있는 거 아닐까?
노동자3 이 자식은, 마 우리하고 같냐? 이 집 따님도 그렇구.
노동자4 뭐, 있는 집 자식들은 그거 더하다구 했잖우.
노동자3 그래두, 안 그럴 거야. 난, 형님하구 이 집 따님 뵐 때마다 죄송한 마음뿐이다.
노동자4 뭐, 우리가 원해서 그랬던 것도 아닌데. 슬슬 정리해야지. 정리하구 싶은 모양이드만. 나만 상처 입을 것 뭐 있나.
노동자3 넌, 그렇냐?
노동자4 그럼 형은 안 그렇단 말이유? 그 여자가 형을 남편 삼아줄 것 같애?
노종자3 그게 아니라, 내, 내가.
노동자4 그년은 생긴 게 벌써 발랑 까졌던데, 뭘.
노동자3 이 새끼가? 너 그 여자 함부로 욕했다간 나한테 죽어?
노동자4 어럽쇼?
노동자3 아,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어. 남편이나 겨우 참지 그 여자가, 딴 놈들하고도 놀아난다 싶으면, 미치겠는 거야. 그 씹새끼를 콱!
노동자4 냉수 먹고 속 차려요, 그러다 살인 내겠우. 그 사장 놈하고 벌써 한따까리 붙은 폼이던데.
노동자3 아,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씨발, 빨리 공장에나 안 보내주나.
노동자4 갈 거유, 보내주면?
노동자3 가야지, 이렇게야 어떻게 살겠어. 딴 생각 안 나게, 좆나게 몸을 굴려야, 어휴 이, 사장 놈을, 첩 자식인 게, 둘씩이나.
노동자4 형님 하구의 일은, 어떻게 하고?
노동자3 어떻게 되겠지, 갈 데까지 그냥 가보는 거야. 마지막에, 막판에 한 번 크게, 뒤엎으면 되니까. 아니, 뒤엎지는 못해도, 이 복수는 꼭 할 거야, 뒤통수를 치는 거지. 개자식. 아님, 허리를 분질러버리든가.
노동자4 쉿! 오나봐요. 설마, 경찰들 데리고 오는 건 아니겠지?
노동자3 넌, 조심성도 없는 놈이, 의심이 많아 탈이야.
노동자4 혹시 알우, 내 여자하구 형 여자하구 서로 짰으면.
노동자3 쉬, 쉿.
셋째 딸과 셋째 사위, 노동자2 등장.
셋째 사위 오랜만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노동자2 앞으로 자주 뵙게 될 거야, 잘 모시게.
노동자3, 4 잘 부탁합니다.
셋째 사위 아니, 아니. 일어서실 것까진 없어요. 아니, 그럼. 같이 하죠. 세배 겸 해서. 하하, 잘 부탁합니다.
노동자2 그리고…
셋째 사위 예, 먼저 말씀하세요.
노동자2 예. 그리고 셋째 따님께서는…
셋째 딸 저도 같이 할까요?
노동자2 아니, 뭐. 그러실 것까지야.
셋째 사위 당신도 같이 하구려, 옛날 가락은 나보다 더 하잖어? 공분데, 뭐.
셋째 딸 이이는? 난 사장 딸이잖아요.
셋째 사위 허허, 그럼 난 뭐구? 재산을 노리고 들어온 그 사윈가?
노동자2, 3, 4 하하.
셋째 딸 아무래도 난, 공개 운동 체질인가 봐요. 회의에 갈 때마다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서도, 그 반경에 들어가면 또 어쩔 수 없이 그 분위기에 빠져들곤 했거든요. 거참, 이상하죠. 맨날 분위기에 속아서,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정말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 존잰가, 이번 일이 정말 그렇게 정권한테 타격을 줬을까, 우린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다시 시작해야, 오히려 길이 더 빠른 것 아닐까, 그렇게 다짐을 하고 맹세를 해도, 다른 단체 사람들 얘기랑 평가랑 정세 분석이랑 그게 그건 소리지만 그걸 듣다보면, 뭣보다도 뭔가 낯익은 냄새가 우릴 감싸는 것 같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래 맞아, 내가 약해 빠져서 그렇게 생각한 거야, 그런 마음이 되거든요. 물론 집에 돌아오면 또 속았구나 싶고요. 하지만 소용이 없어요. 그 다음 날 가면 또 그래요. 그래, 아무래도, 난 그런 체질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랬었죠. 그렇다면, 그런 체질로 가야죠, 뭐. 그렇다고 대선 끝나고 운동권이 저리 개판인데, 지금 당장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구요. 뭐, 여기 장소가 마땅한 것도 아니고. 여자니까 집이나 볼 게요.
노동자4 여기서 안 하고요?
노동자2 그래, 여긴 아무래도 안 좋겠다고 하셔. 요즘 특히 감시가 심한 것 같다구.
노동자3 그럼 어디에서?
노동자2 전처럼 하숙방을 구해봐야지.
노동자4 거긴 더 위험해요, 감시가 심해도 더 심하구.
노동자2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우리가 조심을 하면 돼.
노동자4 아이구, 그 지겨운 데를 또 가요?
노동자3 할 수 없잖아.
노동자4 아이구, 난 싫어. 그 숨 막히는 데를, 왜. 차라리 다방 같은 데서…
노동자2 다방에서 그런 얘길 어떻게 해.
노동자4 형님, 난 그런 데 있으면, 왜소한 우리들이 더 왜소해지는 것 같애. 괜히, 주변 눈치만 보다가, 정작 할 얘기는 하나도 못하는 것 같단 말이야. 온통 눈치만 는다구.
셋째 사위 그래두, 당분간만. 내가 또 알아볼 테니까.
노동자4 그럼, 그 장소 알아보고 나서 시작합시다. 하숙방은 죽어도 싫어. 잠자는 것도 지겨운데, 차라리 공장 나가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구. 공장보다 더 답답해, 거긴. 형, 좀 확 트자구, 우리. 그 공부 내용도 보나마나 꼬장꼬장할 텐데.
노동자2 그래두 우리 사정이. 뭐, 장소 때문에 공부하기로 한 것도 아니잖나?
노동자3 그게 계기가 된 건 사실이잖아.
노동자2 나 참, 우리가 이것 밖에 안 되나? 도대체 정신머리가.
노동자4 무슨 소리야, 자기 집 안 빌려주겠다는 자를 선생으로 모시는 형은 어떻고?
노동자2 뭣이 어째? 근데, 이 자식이?
셋째 딸 잠깐만요, 싸우지들 마시고. 여긴, 빌려드릴려고 이렇게 청소까지 했는데, 이이가 너무 위험하다고 그러시잖아요.
노동자3 위험하고 안하고를 누가 결정하는데요?
셋째 딸 누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경험 있는 사람 말을 따라야죠.
노동자4 그럼, 그렇게 위험한 사람한테 하숙방 같은 위험한 데서, 학습을 하자는 게 경험 있는 사람들이 할 소리요? 우린 그럼 매일매일을, 이 선생이 형사들을 잘 따돌렸나, 안 따돌렸나에 좌우되면서, 우리 운명을 걸어야 된다는 거요? 난, 그렇게 못 하겠는데? 더군다나, 거긴 이 집과 달리 꽉 막혀서, 도망갈 데도 없는데? 우리보고 매일 서부 활극을 하라는 얘기요 괴도 루팡을 하라는 얘기요?
셋째 딸 그게 아니라…
셋째 사위 아냐, 여보. 이분들 말이 맞는 것 같구만. 다시 연락드리지요.
셋째 딸 여보, 처음엔 다, 힘든 거예요. 길이 있을 거예요.
셋째 사위 아냐, 내가 알아볼게. 일리가 있는 말이야. 내가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구.
노동자3 우린, 공산주의 교육 안 받어요.
노동자2 이 사람들이 왜 이래? 그게 아니라 그랬잖아!
노동자4 형, 우리는 큰 공장으로 갈 거유. 제발, 끌어들이려면 더 넓은 데로 끌어들여. 아, 사상이라는 게 뭐유. 형 말마따나, 그 고생하는 사람들한테 더 고생하라는 게 어디 사상이유? 도대체, 길을 가르쳐줘야지. 더 고생하라구 강요만 하니.
셋째 딸 일리 있는 말씀이네요.
노동자3 흥, 당신 집안은 모조리 썩었던데, 당신이라구 뭐 다르겠어?
노동자4 형, 그 얘기 하지 마!
셋째 딸 무슨 말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노동자4 뭐 별일 있겠우, 우리 같은 놈들허구, 설마.
셋째 딸 우리 같은 놈들허구? 당신네들하고, 형부들이?
노동자3 그만둡시다. 야, 나가자.
셋째 사위 그냥 둬. 어쩔 수 없어. 이게 현 수준이야.
노동자4 수준 좋아하시네.
노동자2 야, 빨리 나가!
노동자4 알았어. 형은, 안 나와? 그래, 여기 계셔야겠지.
노동자3, 4 퇴장.
셋째 딸 아니, 얘기를 어떻게 한 거예요.
노동자2 미안하오. 나도 모를 얘기가 있었나 보군. 이거, 죄송합니다.
셋째 사위 그 사람 잘못이 아냐, 나무랄 것 없어.
노동자2 아닙니다. 제가 너무 서둘렀나 봅니다.
셋째 사위 세월이 좀 먹는 거 아니잖소. 난 그래도, 희망을 가져요. 보기보다 똑똑한 사람들이더군.
노동자2 다시 한 번, 얘기를 단단히 해보고,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이만. 저 친구들을 따라가봐야… 안녕히 계세요. 또 봅시다.
셋째 딸 그 사람들은 이제 데려오지 마세요.
셋째 사위 아니, 괘념치 말아요.
노동자2 또 연락드리죠.
노동자2 퇴장.
셋째 사위 무슨 음모가 있는 게 틀림없어. 거, 왜 큰 회사 간다고 그러잖든가?
셋째 딸 예감이 이상해요.
셋째 사위 틀림없다니까.
셋째 딸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정도가 아니라.
셋째 사위 그게 아니면, 뭐 노동자들하고 짜봐야, 회사 말아먹을 궁리 밖에 더 있겠소?
셋째 딸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셋째 사위 뭔데 그래?
셋째 딸 여보, 혹시. 아, 아녜요. 당신한테 이런 말을 해선 안 되지. 그럴 리가,
셋째 사위 나한테 말 못할 게 뭐야?
셋째 딸 미안해요, 그게 아니구. 집안일이니까. 아, 아저씨.
노동자1 등장.
노동자1 아씨, 으흐흑.
셋째 딸 뭐예요?
노동자1 그놈들이, 그놈들이, 글쎄. 으흐흑.
셋째 딸 아, 말하지 말아요. 이이 있는 데서 말하지 말아요.
셋째 사위 당신, 도대체 뭔데 그래?
셋째 딸 아, 아녜요. 당신은 알 것 없어요. 아저씨, 제발.
셋째 사위 이거, 당신. 그놈하구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셋째 딸 에? 여보? 어떻게 그런? 아, 아녜요.
셋째 사위 영감, 바른 대로 말해, 아니긴 뭐가 아냐!
노동자1 아니 그건,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셋째 딸 말하지 말아요! 차라리 그게 낫지, 어떻게 그런 천한 사람들과…
셋째 사위 뭐야? 그럼, 언니들이?
노동자1 아씨! 정신차리셔요, 아씨.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