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고령군 신숙주가 승려 만우에게
1466년 6월 27일
천봉,
계곡과 구름 사이를 넘나드시는 천봉, 이 하찮은 인간의 서찰이 제대로 가서 닿을지 모르겠네. 하지만, 아무래도 자네에게 이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어렵게 붓을 들었네. 주상전하께서 몽유도원도를 찾으신다는 말을 정인지 대감을 통해 들었을 것이네. 나와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일 년여에 걸쳐 찾다가 ‘이 땅에는 없는 것 같다’고 주상전하께 고하고, 정인지 대감과 자네에게도 그렇게 기별했네. 하지만 자네는 곧 일본의 승려 분께이로부터 내가 거짓말을 했음을 추론할 수 있는 기별을 받게 될 것이네. 사실 몽유도원도는 주상전하로부터 하사받은 안평대군의 별장에서 나왔는데, 여러 날 고민 끝에 일본 외교단의 한 조선인을 통해 그 그림을 나라 바깥으로 내보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네와 친분이 있는 승려 분께이가 그림이 들킬 뻔한 순간을 모면시켜 주었다네. 결과적으로, 천봉, 자네에게는 거짓말을 한 꼴이 되고 말았네.
이해하시게. 내 사욕으로 그림이나 찬시를 차지하려거나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었음은 짐작하고 남을 것이네. 그 그림이 지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면 자네와 나는 물론 여럿 목숨이 위태로울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고 있을 것이네. 특히, 소용 박 씨 사건이 있은 직후 주상전하께서 급하게 안견을 불러들여 몽유도원도를 찾으라 명하셨고, 소용 박 씨가 귀성군에게 보낸 연서가 모반과 연루되었다고 의심하신다는 소문도 있지 않나. 이 시점에서 몽유도원도가 나타나면 어떤 식으로건 모반이나 역모의 빌미가 될 것이네. 이런저런 상황들을 짐작하여 내 거짓말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게.
안견이 주상전하께 몽유도원도를 찾을 가능성이 더 이상 없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주상전하께서는 처음으로 그 그림의 내용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셨다네. 계곡의 산봉우리가 몇 개인지, 복숭아나무가 몇 그루였는지, 그 안에 절이 들어 있는지, 혹은 사람이 몇 명 그려져 있는지 등. 주상전하의 의중을 헤아릴 길이 없어, 안견은 세월이 아득하여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처음에는 무릉도원을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람도 없이 너무 쓸쓸해서 무덤을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니, 주상전하께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하네. 마지막으로 주상전하께서는 혹여 그 그림에 백팔과 관련된 이름이나 낙관이 찍혀 있지 않았느냐고 하문하셨다는 것이네. 안견은 자신의 그림에 다른 이의 이름을 올릴 리가 없고, 백팔과 관련된 글귀나 비슷한 숫자는 전혀 없었음을 진언했다고 들었네.
이것이 몽유도원도에 관련되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일세. 안견의 말을 듣고, 천봉, 궁금한 것이 있네. 소용 박 씨의 마지막 말인 백팔 글자를 왜 주상전하께서 몽유도원도에서 찾으시려했는지 궁금하네. 정인지 대감도 자네에게 백팔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들었네. 자네가 침묵을 지켰다는 것은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천봉, 주상전하의 명을 무시하고 몽유도원도를 빼돌린 사실과 정1품 영의정1까지 지낸 자가 거짓말까지 했다는 것을 들킨 마당에 무엇을 털어놓지 못하겠는가. 백팔이 누구의 이름인가. 모반의 주동자라도 된단 말인가.
최근 궐내 방… 뭐라고 하는 환관이 『월인석보』 1권을 들고 와서 이것저것 묻더군. 『월인석보』 1권의 끝부분에 있는 ‘총일백팔장(摠一百八張)’이 서책의 면수나 장수가 아니라 아무래도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추론이었네. 그때는 서책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부수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허허 웃고 말았네. 그래도 돌아가지 않고 조금 집요하게 이런저런 것을 묻길래, 혹여 새로운 활자의 이름인가 하고 농으로 끝을 맺었네. 그런데 주상전하께서 몽유도원도에 백팔이라는 이름이나 낙관이 있었느냐고 물으셨다니, 백팔이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방 환관의 생각과 일치하여 깜짝 놀랐네. 천봉, 백팔이 누구인가?
천봉, 불가에서는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지 않나. 이는 부처가 돼지고기를 먹다가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고기를 많이 먹으면 동물이 죽을 때 느꼈던 분노가 두려움이 몸에 들어와서 인간의 몸에도 그대로 새겨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네. 한술 더 떠서 자네는 언젠가 살아 움직이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죽게 될 때 공포에 질린다고 말하지 않았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고,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할 때에는 그 고통이나 원망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말을 했었네. 좀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몽유도원도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받은 느낌은, 그림이 공포에 질려 있는 듯했네. 내 공포감이 투영된 것이라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림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 찬시를 맨 위에 올려놓아, 그 그림이 지켜지면 나도 안전하리라는 암시를 걸었네. 내가 무사하다면 자네 또한 무사할 수 있겠지. 천봉, 그림이 혼자가 아니듯이, 나도 혼자가 아니라고 믿고 싶네. 자네, 언젠가부터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돌고 있는 것에 대해 가슴 아프게 느끼고 있네. 연통하시게나.
범옹 신숙주 씀
1 정1품에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 이조, 예조, 병조를 관할하는 좌의정, 호조, 형조, 공조를 관할하는 관할 하는 우의정이 있다. 이 세 사람을 삼정승 또는 재상이라 한다. 그 밖의 중추원 영사, 새자시부(삼정승이 겸임), 부마, 국구, 춘추관 감사(영의정이 겸임), 돈녕부 부사가 정1품으로서 조선 최고의 벼슬이라 할 것이다. 정2품에는 육조판서, 대제학, 도총관, 좌참관, 우참관, 한성판윤, 중추원지사 등이 있다. 정3품에는 당상관인 통정대부, 대사간, 부제학, 병조 참지, 육조 참의, 도승지, 좌승지, 우승지, 중추원첨지사,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 등이 있다.
종1품에는 중추원 판사, 의금부 판사, 좌찬성, 우찬성, 종친인 승정대부, 가덕대부, 종2품 왕의 외척에게 주는 봉작으로 가정대부, 가의대부, 가선대부가 있고, 외관직인 관찰사(개성, 강화, 수원, 춘천, 경기도 광주) 유수가 있으며 육조 참관, 직제학, 대사헌, 승지, 동지사, 포도대장 등이다. 종3품 홍문관의 전한, 서반의 보의장군, 전공장군이 있다.
정1품과 종1품의 처를 정경부인, 정2품과 종2품의 처를 정부인, 정3품과 종3품의 처를 숙인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