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식수
이문재
형수가 죽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감자를 구워 소풍을 간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개구리들은 땅의 얇은
천장을 열고 작년의 땅 위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려 있다
나무들이 가지마다 가장 넓은 나뭇잎을 준비하러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영혼은 온몸을 떠나 모래내 하늘을
출렁이고 출렁거리고 그 맑은 영혼의 갈피
갈피에서 삼월의 햇빛은 굴러 떨어진다
아이들과 감자를 구워 먹으며 나는 일부러
어린왕자의 이야기며 안델센의 추운 바다며
모래사막에 사는 들개의 한살이를 말해 주었지만
너희들이 이 산자락 그 뿌리까지 뒤져본다 하여도
이 오후의 보물찾기는
또한 저문 강물을 건너야 하는 귀가길은
무슨 음악으로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가
형수가 죽었다
아이들은 너무 크다고 마다 했지만
나는 너희 엄마를 닮은 은수원사시나무 한 그루를
너희들이 노래부르며
파놓은 푸른 구덩이에 묻는다
교외선의 끝 철길은 햇빛
철 철 흘러넘치는 구릉지대를 지나 노을로 이어지고
내 눈물 반대쪽으로
날개도 흔들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무한정 날아가고 있는 것은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에서 전재. (이문재, 문학동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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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푸른 눈의 영혼이 날아가는 곳
박순희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더니 집안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집에 아무도 없어 혼자 외롭고 무서웠던 나는 손님들이 많아 좋았다. 먹을 것도 많았다. 집안의 친척들이 다 모여 있었다. 눈이 조금씩 오기 시작하자 나는 강아지처럼 좋아했다. 버스 안 창문에 매달려 나는 빈 들판에 눈이 내리는 풍경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관 위로 흙 한 삽이 떨어지자 엄마가 흙바닥에 몸을 뒹굴며 울었다. 뚜렷이 생각나는 것은 그때 내 가슴 속에서 일어났던 슬픔이라고 할 만한 감정인데, 표현을 할 수는 없으나 그때를 생각하면 언제나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이다. 처음 접한 죽음이었고 아무것도 몰라서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몸에는 뚜렷이 각인된 오묘한 감정들. 아버지의 검은 관 위로 내리던 눈발.
얼마 전 남편과 아이와 아버지를 찾아갔다가 주변 나지막한 산에서 난 서 너 촉을 캐왔다. 검은 화분에 난을 심은 오후, 나는 오래된 시집을 한권 꺼내어 읽었다. 휴학을 하고 다시 복학했던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읽었던 시. 왠지 모를 어두움과 절망, 그리고 외로움에 시달릴 때마다 나는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렸던” 그 아이들의 영혼을 생각하며 그 시를 읽고 울었었다. 이제 나는 내 아이를 데리고 소풍을 가듯 아버지의 산소에 가곤 한다. 아버지 무덤 주변에 있는 은사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나는 아버지의 무덤 위로 흩날리던 눈발을 생각한다. 그 눈발이 흩날려 사라지던 곳. 나의 영혼의 푸른 눈이 따라 흘러가던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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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이문재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생태적 상상력’의 시인으로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내가 만난 시와 시인』,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등이 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과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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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순희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희양산 자락으로 깃들여 산지 6년째에 접어든다. 집 밭에 오이 호박 토마토 감자 고구마 등 갖가지 야채를 심고 캐어먹는 맛이 쏠쏠하다. 작년부터는 귀농한 다른 이들과 같이 논농사와 밀농사도 지었다. 단순하고 행복해지고 싶은데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습관이 뿌리깊게 박혀 있어 가끔 불안을 조장한다. 자연과 가까이 할수록 나의 영혼은 자꾸 어린 시절에 가까워지고 싶다. 아이들만 보면 눈물겹고,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나도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예전엔 아이들이 있으면 시끄럽고 정신없고 귀찮아했었는데 말이다. 요즘엔 여기 희양초등학교 분교에서 열 네 명의 전교생 아이들과 방과 후 활동으로 같이 책을 읽고 동시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