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근화
오늘은 살과 비늘로 이어진 날
한 마리 물고기는 한 마리의 냄새를 피우고
두 마리 물고기는 두 마리의 냄새를 피운다
오늘은 파도를 무시하고 입술고래와 만나는 날
내가 듣는 줄 모르고 여기저기 시끄러운 날
야광 후프가 반짝반짝 돌아가고
이리저리 허리가 꺾이고 다리가 늘어난다
오늘은 살과 가죽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날
오늘은 식구들이 다 낮잠에 빠진 날
선풍기가 산소를 먹고 머리카락을 먹고
아이의 손가락을 먹다 기념된 날
비둘기 맛처럼 상상하기 싫은 입속의 날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사탕을 쭉쭉 빤다
오늘은 빨아먹다가 깨지는 사탕의 날
오늘은 입술이 바닥난 달의 일요일
날아오르는 비닐봉지가 막대기에 푹 찔린다
살과 가죽 사이에 즐거운 날
깡패를 무시하다 큰 칼에 푹 찔리고 싶은 날
찔리기 전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아슬아슬하게 용서를 받고 싶은 날
오늘은 튼튼한 봉투에 머리를 담고 싶은 날
파충류 같은 기차를 타고
개미 같은 버스를 타고
빨개진 눈으로 노란 세계를 보고 싶은 날
『우리들의 진화』에서 전재. (이근화, 문학과지성사, 2009)
--------------------------
작가 소개
이근화
이름은 이근화. 금호동의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 좁은 골목길에서 놀며 자랐음. 재래시장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시장가는 엄마의 치마를 붙잡고 졸졸 따라 다님. 여중, 여고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떡볶이 집과 햄버거 가게 전전. 늘 졸리고 피곤하고 배고팠던 것 같음. 문학과 미술을 좋아함.
<현대문학> 신인 추천을 통해 시로 등단. 시집으로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가 있음. 『안녕, 외계인』이라는 동시집도 있음. 시도 소설도, 자신의 작품도 다른 사람의 작품도 좋아하나 왜 그러냐고 물으면, 변변찮은 대답 뿐. 윤동주상 젊은작가상을 받았음.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프랑시스 잠을 부르던 부끄럼 많은 시인의 이름을 건 상이라 좋았음.
국문학을 전공, 1930년대 시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문학 연구에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음. 최근에는 김수영의 조어에 대한 짧은 논문을 썼으나 커다란 성과는 없었음. ‘문장’에 나타난 조선인들의 신체에 대한 사유를 더듬어 보고 있으나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음.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안내서 읽는 것을 더 좋아함. 비행운과 공항버스를 보면 마음이 설렘. 여행을 가게 되면 주로 공원을 산책하거나 시장 구경을 하며 지칠 때까지 걸어 다님. 음식점이나 기념품 가게보다는 마켓에서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고 먹느라 대부분의 돈을 씀. 돌아와 보면 언제나 똑같은 집과 가족과 친구들이 신기해서 자주 떠남.
말을 잘 못해서 적당히 웃음으로 때우려는 경향이 있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대충 둘러대는 경우도 많음. 실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전화 통화하는 걸 특히 싫어함. 규칙적인 생활과 집밥을 좋아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쓰며 고요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잘 안됨. 혼자 있는 걸 좋아하나 남편과 떨어져 잘 못 지냄. 낙관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