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이후경의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실천문학사, 2006)를 읽다. - 이후경의 소설에는 죽음이 가득하다. 이 작품집에 실린 여섯 편의 중·단편 가운데, 죽음을 피해 간 작품은 「낙원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차츰 이야기하겠지만, 이 작품 역시 섹스와 죽음을 한데 묶는 작가의 버릇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쉰을 넘긴 서울댁(엄영순)은 자신의 부정不淨 탓에 남편이 죽었다는 죄책감을 간직한 채, 삼십 년 동안 금욕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택시 기사였는데, “일 나가기 전의 부부관계”는 이 세계의 금기였다. 새벽에 방사를 치르고 나간 남편은 윤화를 당했고, 서울댁은 “금기의 원칙을 깨고 쾌락을 택한 응보”로 금욕을 택한다.
「폭설」의 두 주인공은 눈 덮인 해변의 민박집에서 섹스를 탐하고 난 뒤에 동반 자살을 하고, 「모독」의 조양숙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의 집으로 따라가 섹스를 하고 나서 그에게 교살당한다. 그 남자는 연쇄살인범이었다. 또 「바람의 무덤」의 은혜는 서른다섯에 잉태한 아이를 사산하는데, 만삭의 배는 봉분과 중첩된다.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의 예련은, 다섯 살 때 자살한 어머니의 시체와 사흘을 함께 보냈다. 그녀의 어머니는 바람(=섹스)을 피우는 남편에게 복수를 하고자 남편이 출장 간 틈에 독극물을 삼켰다. 엄마를 깨우기 위해, 아이는 춤을 췄다.
아무리 불러도 깨지 않는, 낯설고 차가워진 엄마를 깨우기 위해 아이는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창으로는 보랏빛으로 저무는 하늘이 보인다. 아이는 어두워지는 하늘빛에 안도하며 두 손을 높이 들고 까치발을 한 채 빙그르르 돌고 있다. 엄마는 발레 동작을 흉내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에게, 이후의 삶은, ‘죽음의 무도’나 같았다. 대학교 시절 그녀는, 걸리는 대로 아무 남자의 품에 안겼고, 임신을 하게 되면, 떠나간 남자를 살해하듯 아이를 지웠다. 그러다가 이십대 후반에 염을 하는 남자와 함께 살다가 헤어졌고, 그때 낳은 딸을 외국에 입양시키기도 했다. 서른넷인 그녀는 “시체 안치소”와 같은 지하상가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하며 혼자 살고 있는데, 그녀의 액세서리 가게는 어울리지 않게 정육점과 붙어 있다.
예련이 가져다 놓은 고급 액세서리들은 무심코 정육점에서 한 발을 더 들이민 주부들의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어머머, 어쩌면 이런 물건을 고깃집 옆에서 팔아요? 그들은 육중하게 매달린 시뻘건 고깃덩이 옆에서 물에 풀어놓은 핏빛 같은 자주와 보랏빛의 귀걸이나 헤어핀을 샀다.
위 대목이 보여주는 이미지만큼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를 잘 드러내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액세서리는 유혹하기 위한 장식물이자 섹스의 은유로,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그것은, 시뻘건 고깃덩이(죽음)와 지척에 있다. 하므로 간혹, 이런 손님이 찾아오는 일도 놀랄 게 아니다.
그 청년은 조용히 묻는다. 스물아홉 된 발랄한 여자가 좋아할만한 액세서리는 어떤 건가요? 질문이 특이해 예련은 다시 되묻는다. 애인에게 선물하시는 건가요? 그 청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줍게 대답한다. 애인은 아니고, 혼자 좋아했던 선배였어요. 관에 넣어주고 싶어서요. 그의 말은 하도 스스럼없어 ‘관’이라는 단어가 실감나지 않는다.
[…]
예련도 잠시 말을 잊고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연다. 좋아했던 분이 세상을 떠나셨나 봐요? 예련의 말에 그는 예련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던 그가, 머뭇거리며 말을 덧붙인다. 거기……거기하고 아주 많이 닮았어요, 그 쪽이 좋아하는 걸로 골라 주세요.
중편 「과거 순례」에서도 섹스는 불륜과 불임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섹스는 배제와 죄의식을 낳는 불길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집에서 섹스와 죽음이 연관되지 않는 작품은 ‘노동 열사’의 남겨진 가족을 다룬 「낮달」뿐이다.
섹스의 연장체로서의 죽음이나, 죽음의 극복으로서의 섹스는 종종 존재론에 가 닿지만, 이후경의 작품에서 섹스와 죽음이 연동되는 것은 배우자의 부정이나 배반이 원인이다. 90년대 이후의 여성 소설이 주로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당당하게 내세우면서 불륜을 정치화한 것과 달리, 이후경의 작품은 아직도 남성 가부장의 덫에 걸린 여성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 그것을 작심하고 보여준 작품이 「과거 순례」다. 서윤영은 마흔네 살이 되어서야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이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사정은, 그녀보다 훨씬 젊은 여성이 나오는 「폭설」과 「모독」에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두 작품에는 스무 살 먹은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그녀들의 주체성을 담지한 사람은 모두 남자다.
90년대에 나온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정치화하지 못한(혹은 않는) 특징과 함께, 소외에 대한 해결로서 가족(「낙원장」)과 고향(「모독」)을 제시하는 것 역시 이후경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