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로버트 슈나이더의 『오르가니스트』(북스토리, 2006)의 독일어 원제 ‘Schlafes Bruder’를 직역하면 ‘잠의 형제’. 작가는 바흐의 칸타타 <나 기꺼이 십자가를 지겠노라>에 나오는 “오라, 오, 죽음이여, 그대 잠의 형제여”라는 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 작품의 무대는 포어알베르크 산 중턱 마을인 에쉬베르크로, 포어알베르크 산은 오스트리아의 포어알베르크 주에 있다. 첩첩 두메산골에서 벌어지는 이 소설은 마치 지방지地方誌를 흉내 내는 듯하다.
제프 알더의 아내 아가테 알더에게서 엘리아스가 태어난 때는 1803년. 하지만 이 아이는 제프의 아이가 아니라, 마을 성당의 보좌신부 엘리아스 벤쩌의 사생아다. 벤쩌는 “모든 여성에 대해 정열”을 품은 ‘참 나쁜 신부’인데, 이 작품은 좋게 봐줘서 바로크적이고, 나쁘게 보면 데생을 배우지 못한 엉터리 초상화가가 얼치기로 그려낸 듯한 괴기스러운 인물들이 득시글한다.
엘리아스는 불륜의 신체적 표시로, 누런 눈동자를 갖고 태어났다. 이 때문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누런 색깔의 “소 오줌”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악마”처럼 경원시되었다. 하지만 누런 눈동자를 준 대신 신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특별한 재능을 그에게 주었다. 온갖 소리를 감별할 줄 아는 청각능력과 온갖 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성대묘사력. 그는 평생 짝사랑하게 될 엘스베트가 아직 태 속에 있을 때, 그녀의 심장박동소리를 들었다. 또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온갖 가축과 야생 동물을 부를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새로운 장이나 문단이 바뀔 때, 자주 기독교 성례일을 명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803년 성 요한축일(6월 24일) 오후에”, “1815년 그리스도 강림절에”, “두 번째 강림절에”, “성탄절 나흘 전날 밤에”, “에쉬베르크의 성탄미사는”, “1815년 불운한 성탄절 무렵”, “세족 목요일 점심 무렵” 등이 그렇다. 이런 장치는 에쉬베르크 주민들의 삶이 신앙 속에서 은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에는 작가가 의도한 역설이 있다. 말씀과 은총 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산촌의 주민들이 여느 야만인이나 악인들보다 더 무지하고 그악스럽다는 것.
작가는 이런 역설을 통해 오로지 ‘잠들지 않는 사랑’만이 무지와 악 속에서 인간을 고귀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엘리아스는 그런 사랑에 다가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대신 마을 한가운데 있는 교회의 오르간을 차지하고, 자신의 사랑을 오르간 연주에 쏟았다. 그 가운데 가장 재미난 대목은, 엘리아스가 여자의 나신을 처음 보고 나서 불협화음을 발명하게 된 대목. “청각의 법칙에 어긋나는” 불협화음을 알고 나서 “순진했던 그의 연주는 악마의 힘을 얻게 되었다.” 엘리아스는 엄청난 초능력을 갖고서도 사랑을 얻거나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신을 향해 “이 가짜 신아!”라고 저주하는 그는, 자신의 천재적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신에게 복수했다고도 할 수 있다. “나, 요하네스 엘리아스 알더가 몰락한다면, 그것은 내 의지이지, 당신의 의지가 아니란 말이야!”라고 말하는 그의 저항과 죽음은, 참으로 ‘고집불통 마을’의 주민다웠다.
블라디슬라브 스필만의 『피아니스트』(황금가지, 2002)의 원제는 ‘한 도시의 죽음’으로, 1946년 폴란드에서 초간됐다. ‘1939년부터 1949년까지 바르샤바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의 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회고록은 말 그대로 유태계 폴란드인이었던 지은이가 나치 점령하의 폴란드에서 살아남은 생존기다. 이미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책과 영화를 비롯한 갖은 방식의 증언을 접해왔던 때문에 식상한 데가 없지 않다. 그런데다가 600만의 희생자를 딛고 만들어진 현재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하는 ‘히틀러 따라잡기’를 보면, 예전과 같은 공분이 생기거나 공감이 솟아나지 않는다. 이스라엘 국민이나 유대인 가운데 웹진 <나비>에 싣는 이런 따위의 글을 읽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단단히 믿고서야 하는 말이지만, 이 정도의 표현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유대인혐오 범죄’로 추궁당할 정도다.
폴란스키의 영화로 지은이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Wladysaw Szpilman The Original Recordings Of The Pianist>(SONY)가 반짝 출시되었듯이, 스필만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 바르샤바의 폴란드라디오방송국의 전속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한 직후, 독일군이 바르샤바 북쪽 한 귀퉁이에 게토를 만들어 유대인을 수용했을 때에도 게토 내의 카페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무려 50만이나 되는 유대인을 수용한 게토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스필만은 거기서 피아노를 치면서 견뎠을 것이다.
나치 시대의 유대인 절멸 정책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그것은 “우리 50만 유대인이 독일놈들을 공격했더라면 우리는 게토를 탈출할 수 있었을 거야. 아니면 적어도 명예롭게 죽어서 역사의 오점을 남기지 않았을 거고!”라고 분노하는 어느 치과의사의 것과 같다. 거기에 대해 스필만의 아버지는 “무슨 근거로 놈들이 우리를 사지에 몰아넣을 게 분명하다고 단정하시는 거죠?”라고 반문했다. 나치 아래의 유대인들은 생존을 보장해주는 10%의 가능성만 보여도 모험보다는 순응을 택했다. 그것이 훗날 스필만이 깨닫게 된 ‘자기기만의 구조’다.
여기에 나치의 절멸 정책 과정이 그만큼 교묘했다는 사실을 덧붙여야 공평하다. 나치는 현재의 폭력과 이주 정책이 과도기에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질서를 찾고 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회유를, 야만스러운 폭력과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그때마다 유대인들은 “이번 한 번만은 독일인들의 약속이 사실일 것이라는 환상”을 품었다.
스필만의 회고록을 토대로 만든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면, 나치의 폴란드 침략과 폴란드 유대인에 대한 대량학살이라는 역사적 참화가 일순 ‘인간적인 독일 장교와 무명 피아니스트’ 사이의 오디션으로 순치되어버리는 ‘할리우드 쇼’를 목격하게 된다. 나아가 생사를 건 오디션으로 순치되어버린 저 순간은 필연적으로, ‘만약 스필만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정도였다면, 그 장교는 스필만을 처형하거나 독일군에게 넘기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불러온다. 이것은 회고록에 나오는 독일 장교의 신상을 영화가 제대로 취급하지 못해서 생긴 오해다. 빌름 호젠벨트로 밝혀진 그 독일 장교는 곤경에 빠진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자주 구했다. 행여 연주가 서툴렀다 하더라도 피아니스트가 처형당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