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주명철의 『파리의 치마 밑』(소나무, 1998)을 읽다. - 이 책의 부제가 『지옥에 간 작가들』과 같은 ‘18세기 프랑스 문화를 읽는 또 하나의 창’이란 사실은, 두 권이 자매편이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먼저 읽은 『지옥에 간 작가들』에서 지은이는 ① 프랑스 혁명 직전, 식자층들이 저급한 중상 비방물을 즐겨 읽은 이유를 왕실의 불투명한 비밀주의에서 찾고 ② 엘리트주의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앙시엥 레짐’(구체제)을 허문 것은 계몽철학자들의 정치적 언설만 아니라, 왕실을 성적 추문과 관련시키는 것으로 체제의 권위를 추락시킨 포르노그라피도 큰 몫을 했다고 주장한다.
『지옥에 간 작가들』과 『파리의 치마 밑』은 출간 일자가 같지만, 전자가 ‘행복한 책꽂이01’번을, 후자가 같은 시리즈의 ‘02’번을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은이는 『파리의 치마 밑』을 『지옥에 간 작가들』의 자매편이자 후속작으로 집필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그 사정이 더 확실해지는데, 『지옥에 간 작가들』이 프랑스 혁명 직전에 쏟아져 나온 ‘금서와 검열’에 대한 총론이라면, 『파리의 치마 밑』은 1783년에 출간된 『구르당 부인의 지갑』이라는 한 권의 서간집을 집중 분석한다.
구르당 부인은 18세기 말 파리의 유명한 포주로, 지은이는 로버트 단튼이 1995년에 발표한 『혁명 전 프랑스의 금서 베스트셀러』라는 책에서 『구르당 부인의 지갑』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단튼의 『혁명 전 프랑스의 금서 베스트셀러』는 2003년 지은이의 손으로 번역되었다. 길에서 나온 『책과 혁명』): “그가[단튼] 분석한 책 가운데 첫째 것이 음란 서적의 베스트셀러라 할 『계몽 사상가 테레즈』, 둘째 것이 유토피아적 공상을 다룬 『2440년』, 셋째 것이 정치적 비방문이라 할 『마담 뒤바리에 관한 일화』였는데, 나는 셋째 작품에 나오는 구르당 부인을 중심으로 18세기 후반의 사회를 살피기로 한 것이다.”
주명철의 첫 저서는 자신의 파리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을 번역·보완한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 1990)다. 그 책에서 지은이는 단튼에게 받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밝혀 놓았는데, 『파리의 치마 밑』과 『지옥에 간 작가들』을 보면 지은이는 아직도 단튼의 신세를 지고 있는 듯하다. 하므로 그 점에 대한 해명이 없을 수 없다: “프랑스 역사를 공부하는 외국인으로서 원사료를 뒤지는 일이 마음 같지 않고, 설사 가끔 뒤질 기회를 만든다 해도 로슈나 단튼같이 방대한 양의 고문서를 다루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튼이 눈을 돌린 3류 작가나 금서에 매달리면서도 그들이 살던 사회 속에 그들을 놓고 보려는 것으로 참아야 한다. 이야말로 내가 로슈와 단튼의 주제와 방법론을 내 실정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라 믿는다.”
자기 나라의 역사가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의 어려움이 충분히 짐작되는 대목이다. 자국인들의 연구실에는 수북하게 쌓여 있는 자료가 외국인 연구자에게는 ‘그림의 떡’이기 십상이고, 한 줌씩 구해온 자료로는 대작을 쓰기에 무리다. 그래서 지은이가 선택한 방법은 현지의 선행 연구자들의 작업에서 빈틈을 찾거나, 자신의 의견을 더하는 것이다. 『파리의 치마 밑』의 경우, 『혁명 전 프랑스의 금서 베스트셀러』 속에서 단튼이 분석하고 소개한 『마담 뒤바리에 관한 일화』 가운데, 단튼이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던 인물을 지은이가 낚아챈 경우다.
『마담 뒤바리에 관한 일화』는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뒤바리 부인에 대한 전기다. 그런데 이 책에서 루이 15세의 애첩이 되기 이전의 젊은 뒤바리를 회고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구르당 부인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구르당 부인은 18세기 말 파리에서 활약했던 이름난 포주로, 열여섯 살 된 뒤바리를 화류계에 입문시킨 장본인이다. 단튼은 자신의 책에서 주로 『마담 뒤바리에 관한 일화』를 분석했던 모양인데, 지은이는 거기 껴묻어 나온 구르당 부인에 대한 정보에 흥미를 느끼고 『구르당 부인의 지갑』을 분석하게 된 것이다.
18세기의 관행에 따라 『구르당 부인의 지갑. 금세기의 풍기, 그리고 특히 파리 풍기의 역사를 밝히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함』이라는 긴 제목을 가지고 있는 『구르당 부인의 지갑』은 1770~1783년 사이, 구르당 부인의 응접실(?)을 드나들었던 고객, 그 집의 전속 매춘부 등이 구르당 부인에게 보낸 서간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서간집을 편집한 테브노 드 모랑드는 구르당 부인의 응접실에서 한 상자의 편지를 발견하고 주머니에 넣어 왔다고 서문에 쓰고 있으나, 이 편지들이 당대에 유행했던 서간소설을 흉내 낸 허구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이 소개하는 편지가 저자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편지 내용을 당시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당시 사회의 풍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구르당 부인의 지갑』에는 모두 81통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이 인기를 얻었는지 1784년에는 앞의 것에 새로운 편지를 추가하여 도합 174통으로 이루어진 『구르당 부인의 편지』가 새로 나왔다. 지은이는 이 편지들을 통해 구르당 부인의 사업 내역과 손님들의 취향, 창녀의 삶과 가치관 등을 분석함은 물론, 육체적 쾌락의 중요성과 혁명 직전의 변화상을 다음과 같이 연관지어 설명한다: “사랑에는 신분의 귀천도 없음을 증명하는 편지를 읽어 보았다. 나는 이것을 ‘사랑의 공화국’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전통적 신분사회, 개인의 장점보다는 가문이나 신분이 더욱 중시되던 앙시엥 레짐의 프랑스에서 육체적 쾌락을 매개로 신분을 뛰어넘는 관계가 형성되는 곳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성을 다루는 문학이 전통적 가치관을 비웃고, 나아가서는 체제 전복적인 내용을 암암리에 전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이유의 장미』(청미래, 2005)는 1785년부터 왕실을 비방하고 왕비를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으로 삼는 팸플릿과 노래가 급증했다는 것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을 “도착된 색정광으로, 국왕은 가련한 허수아비로, 왕세자는 사생아”로 치부하는 이런 노래를 모르지 않았다.
루이여, 사생아를, 정부를,
창녀를 보고 싶거든
들여다보시라, 그대의 거울을,
왕비를 그리고 왕세자를.
그러면 그런 중상 비방문과 포르노그라피를 제작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같은 책 191~192쪽에서 츠바이크는 ‘돈 독 오른’ 중상 비방 작가들을 규탄하고 있거니와, 『지옥에 간 작가들』 55쪽에서 왕의 듬직한 충복으로 나오는 극작가 보마르셰가, 이 책 192쪽에서 거의 파렴치한으로 묘사된다.
『피가로의 결혼』을 써서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보마르셰는 자신이 작가이기 때문에, 왕실의 일원을 비방하는 이러저러한 팸플릿이 암스테르담이나 런던에서 인쇄 중이라는 정보에 밝았다. 그러면 그는 궁중으로 뛰어가서 그 인쇄물이 시중에 나오지 않도록 회유를 하겠다며 돈을 뜯었다. 그런 다음 그는 폐기처분한 것으로 보고한 책자 중에서 한두 권을 빼돌렸다가 그것을 수정하거나 그대로 인쇄하겠다고 협박을 해서 다시 돈을 뜯었다. 루이 왕정은, 절대, ‘절대 왕정’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절대 왕정은 이론으로만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