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도합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너무 놀라지 마라』(애플리즘, 2009)는 기다렸던 박근형의 두 번째 희곡집이다. 이번 작품집에서 역시 첫 작품집에서 보여준 ‘의사 가족성’의 세계가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데, 첫 작품집에서는 가까스로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던 의사 가족성이 이번 작품집에서는 파열과 희화화를 보여준다. 의사 가족성이 어떻게 파열을 맞게 되고 희화화되는지, 이번 작품집의 첫머리에 실린 「경숙이 경숙이아버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경숙이 경숙이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가족사를 그린다는 점에서 첫 번째 희곡집에 실려 있는 「대대손손」을 상기시킨다. 경숙이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괴물’을 낳는 프롤로그를 마치면, 시간은 곧바로 한국동란이 일어난 경숙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경숙이 사는 마을까지 총소리 대포소리가 들리자, 아버지는 한밤중에 아내와 딸(경숙이)을 깨워 짐을 싸라고 시킨다. 소풍을 가는 양 들떠서 짐을 싼 모녀가 남편을 따라나서려고 하자, 경숙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아베 (…)
전시에 부녀가 함께 다니는 것은 동작이 굼떠서 안 된다
빨갱이들한테 “나 잡아 봐라” 이러면서
목숨을 갖다 바치는 골이다.
내 간다!
아베 급하게 나가려 한다
어메와 경숙이는 아베를 붙잡는다
어메 경숙아버지!
아베 앞으로 내 부르지 마라
전쟁 끝날 때까지는 각자 알아서 살아 남는기다
그기 피차 안전한 거다 알긋제?
경숙 내는요, 아부지예 내는 아부지 없이 우예 살라고요?
아베 깝깝한 년! 니 시간 없는데 자꾸 와이라노?
니는 어메가 옆에 안 있나?
너희는 둘! 내는 쏠로! 진정 외로운 사람은 내다!
니도 자식 나면 내 맘 안다
간다
전쟁이 끝난 후, 경숙이 아버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만났다는 꺽꺽이 형님을 데리고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무슨 밀약이 있었는지, 꺽꺽이 형님에게 집문서를 주고 사라진다.
아베 짬나면 가끔 들릴끼다
형님 천천히 둘러보고, 잘 좀 돌봐주세요
앞으로 내 대신 이 형님이 집안일 도울끼다
(집문서 준다) 이람 계산 다 끝났지요? 내 간다
경숙 아베요
어메 경숙 아부지!
아베 형님 우리 식구들 잘 좀 부탁합니더!
어메 경숙아버지 어딜 갑니까? 외간남자만 두고 가면 우지 하는교?
아베 남자는 다 똑같은 기다
이렇게 해서 꺽꺽이는 경숙의 ‘아재’로 불리다가, 차츰 ‘아베’로 불리게 되는데, 그 사이에 어메가 꺽꺽이의 아이를 베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집을 떠난 경숙이 아버지가 불시에 찾아와 야로를 부리고, 꺽꺽이는 만삭의 어메와 경숙을 데리고 이사를 간다. 경숙이 아버지의 야로는 거세된 남성의 뒤늦은 자존심 회복과 상관되는데, 그 실없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살던 집은 공가가 된다.
작가는 꺽꺽이에게 아내와 집을 넘겨주고, 다시 돌아와 자신의 집을 공가로 만드는 그 중간에 경숙이 아버지의 유년 시절을 삽입해 놓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육성회비를 마작질로 날렸던 문제아였고, 장구질밖에 좋아하는 게 없는 한량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아버지는 “우리 집 전 재산은 바로 너다!”라고 싸고돌았으니, 아베를 키운 것은 전형적인 장손 의식이다.
꺽꺽이와 어메·경숙을 옛집에서 내쫓고, 그 자신도 자취를 감추었던 아베는 새아내를 얻어 이사한 꺽꺽이의 집을 찾아온다. 이제 이 두 부부는 한 지붕 아래 이상한 동거를 시작하는데, ‘콩가루 서사’라고나 해야 할까? 이런 풍경은 박근형 작품의 장식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베의 노래 솜씨에 혹해서 따라온 술집 여자 자야(새엄마)는 집 근처의 중국집 요리사와 바람이 나서 달아나고, 풀이 죽어 한숨을 내쉬는 전남편을 위해, 예수쟁이가 된 어메가 나선다. 가족을 모두 이끌고 중국집으로 간 어메는 무슨 기적(?)을 보여 줄 것인가?
어메 니 이 칼이 뭔지 아나?
이게 우리 신랑 젤 좋아하는 고등어 배 딸 때 스는 칼이다.
니가 우리 신랑 배신아믄 여서 내 배도 따고,
니 배도 따고 내는 여기서 확 죽어뿔끼다
경숙 어메요!
아베 니 와그라노?
어메 내도 니 맹키로 노래 잘하고 싶었다
내도 니처럼 노래 잘하고 싶었다
내도 뾰족구두 신고, 입술연지 바르고
우리 신랑 노래할 때 젓가락 장단 맞춤서 내도 사랑 받고 싶었다
내도 여자 아이가!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른다
모두들 운다
어메가 칼로 배를 찌르는 순간, 무대가 환하게 밝아오며, 한복 입은 예수가 웅장한 찬송가 소리와 함께 나타난다.
경숙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배를 가르는데 하늘이 갈라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아니 이 불쌍한 백성들 앞에 예수님이 몸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칼부림의 현장은 놀라운 은혜의 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를 향해 손을 뻗고 기도하고 찬양한다
예수 (어머니가 들고 있던 칼을 들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자야와 어메 은혜를 받고 부둥켜안으며
눈물로 서로를 위로한다
어메 아버지!
자야 아버지!
성님요 내 잘못했십니더!
어메 동생! 내가 속이 좁았네
함께 주여!
예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어메·경숙·자야(새엄마)가 ‘의사 신성가족’이 되어 버리는 이 은혜의 현장에서 아베는 홀로 외톨박이가 되어 버린다. 아래는 위 장면에 붙은 지문이다.
은혜의 현장에서 홀로 외톨박이가 된 아버지
자야와 어메에게 아무리 소리치고 욕설을 퍼부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멀리멀리 울려 퍼지는 찬송가 한자락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동란을 거치는 동안 ‘장자 의식’으로 무장한 한국의 남성가부장 권력은 아베의 ‘장구질’로 요약될 만큼 방만하고 무력했다. 말로만 남성을 앞세웠지, 남성들은 국권을 지키지도 못했고 여성을 건수하지도 못했다. 그처럼 무력하고 방만한 남성에 대한 한국 여성의 저항이, 저항의 수단이자 강한 ‘남편’으로 모신 것이 ‘예수’다.
「경숙이 경숙이아버지」가 박근형 작품에서 독특한 것은, 어메의 ①자해와 예수의 출현처럼 ②부조리한 극적 설정이다. 먼저 ①자해는「너무 놀라지마라」의 아버지의 자살과 「선착장에서」의 규회가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은 자해를 통해 산산이 부서지려는 가족과 공동체를 그러모으려고 한다. 이런 안간힘은 「백무동에서」의 아들과 그 친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상림’으로 들어가는 설정에서도 볼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아버지들의 총격을 받는다면, 희생양 아닌 희생양으로 더럽혀진 상림(세계)을 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안쓰러운 자해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닌데, 「너무 놀라지마라」에서 아버지의 자살이 흩어진 가족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던 것과 달리, 같은 작품의 끝대목에 나오는 며느리의 자해는 헛된 노고가 되었다.
②부조리한 극적 설정은,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화장실에 목을 맨 아버지의 시체가 말을 하는 「너무 놀라지마라」가 대표적인데, 신발장과 싱크대에 숨었다가 튀어나오는 노래방 손님과 예언자도 부조리하기는 마찬가지다. 또 작가는 「백무동에서」란 작품에서 단 몇 시간 만에 임신을 하고 만삭이 되거나 남자도 임신을 할 수 있다는 설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밀고 나간다.
이번 작품집에 나오는 자해의 의미에 대해서는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의사 가족을 비끄러매려는 안간힘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자해를 통해서만 건사되는 가족이나 공동체란, 더 손 써볼 수 없을 만큼 악화된 상태라고 해야 한다.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부조리한 설정들은, 자해를 통해 봉합된 가족과 공동체가 이미 환상에 바탕한 것임을 희화화하고 있다.
『박근형 희곡집 1』을 읽고 쓴 독후감의 끝에 “2권이 속히 출간되길 소원한다”로 썼듯이, 『너무 놀라지 마라』 역시 그렇게 끝을 맺어야겠다. 어서 3권이 출간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