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줄리앙 다몽의 『걸인과 부랑자』(영림카디널, 1999, 도미노총서021)를 읽다. - 책 제목이 ‘걸인과 부랑자’를 나누고 있고, 또 지은이가 부랑자와 걸인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개념을 되풀이 설명하고 있으므로, 본문 읽기에 앞서 걸인과 부랑자에 대한 사전 규정부터 하자. 먼저 걸인과 부랑자는 똑같이 빈민(극빈자)이다. 그러나 일을 할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걸인과 부랑자는 ‘진짜(선한) 빈민’과 ‘가짜(악한) 빈민’으로 나뉜다. 이를테면 껌이나 신문을 팔든지 악기를 연주하든지 혹은 사연을 담은 쪽지를 돌리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일을 한다는 뜻에서 걸인은 진짜 빈민이요, 일할 능력은 있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극빈자로 간주된다. 반면 부랑자는 일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일하기를 꺼리는 무위도식자요, 잠재적인 범죄자다. 하지만 이 독후감의 마지막에 나오겠지만, 지은이는 그런 구분을 미묘한 어감 차이거나 용어상의 말장난으로 본다.
걸인과 부랑자는 중세시대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지은이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그들의 존재가 골칫거리가 되기 시작한 것은 요한 2세가 부랑행위 근절 법규를 제정한 1350년대 초부터다. 그 법규 이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걸인은 ‘천국의 열쇠’처럼 여겨졌고, 공공장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존재였다. 하지만 새로 제정된 법은 구걸행위를 금지하고 무위도식을 처벌하며, 노동 능력이 있는데도 일하지 않는 부랑자나 걸인을 도시에서 추방하는 내용을 담았다.
요한 2세의 법규는 샤를르 8세가 내린 1496년의 법규로 더욱 강화됐다. 일할 수 있는데도 일하지 않는 집 없는 부랑자들과 구걸을 하는 이는 갤리선을 젓는 형벌에 처해졌다. 이즈음부터 걸인과 부랑자에 대한 처우는 점점 탈신성화 되어 수상쩍고 위험한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되었고, 17세기에 이르러서는 걸인과 부랑자 등 모든 부류의 빈곤층과 사회 이탈자들을 대대적으로 감금하는 ‘대감금’ 시대가 열렸다. 당시에는 종합병원이 걸인이나 부랑자를 구금했는데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프랑스 전국에 세워진 종합병원의 기본적인 목표는, 강제노역을 통해 걸인과 부랑자에게 노동의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17세기 들어 빈민을 억압하는 광범위한 공공정책이 펼쳐졌지만, 그와 함께 빈민·아동·노인·장애인를 위한 전문적인 구호 단체도 처음으로 생겨났다. 이런 배경에는 못 가진 자에 대해 사회가 빚을 지고 있다는 계몽주의 철학이 영향을 주었는데, 이 논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가난이 더 이상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사안으로 인정되었다. 프랑스 혁명 직후에 만들어진 제헌국회는 구걸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취업 알선을 통한 구호활동을 국가가 풀어야 할 과제로 규정했다.
그런 움직임도 있기는 했지만, 프랑스 법률이나 경찰은 대체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걸인이나 부랑자를 사회 질서를 위협하고 범죄를 저지를 잠재력이 있는 자들로 여겼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보았듯이, 장발장은 부랑층에 속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항상 유죄인 것이다. 이처럼 부랑자나 걸인에 대해 야박한 것은 법률이나 경찰만이 아니었다. 갓 생겨난 정신병학은 부랑자를 빈민이나 도둑이기 이전에 환자이자 사회적 부적격자로 보았고, 그들을 방랑의 길로 몰아넣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본능적인 격세유전이라고 규정했다. 이로써 부랑자들은 정신병이나 환각에 빠진 방랑자, 충동적인 범죄자로 재분류됐다.
프랑스에서 걸인과 부랑자가 반사회적 집단이 아닌 사회·경제적 권리를 가진 구호 대상이며, 추방이나 감금보다는 재적응이나 지원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이다. 사회보장제도가 발전하고 의무보험이 일반화되면서부터 부랑자와 걸인은 형법 적용 대상에서 사회법 적용 대상으로 탈바꿈했다. 이때부터 걸인은 실업자나 극빈층으로 또 부랑자는 무주택자로 접근되기 시작했으며, 그것의 해결은 고용·최저생계비·도시정책·주거권 같은 포괄적인 정책의 문제라는 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형법에는 부랑이나 구걸행위를 금지하는 조항 자체가 없지만, 1993년부터 칸과 같은 남부지방의 관광도시에서 ‘구걸행위금지법’을 조례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이 얇은 책은 시장령으로 채택된 구걸행위금지법에 대한 문제점과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집필됐다. 지은이에 따르면 고위 공무원도 절도나 폭행죄를 저지를 수 있지만, 그들의 범죄는 개별적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구걸행위금지법은 걸인과 부랑자가 행하는 개별적인 범죄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 ‘집단’을 문제 삼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고자 만들어진 법이다. 표면적으로 구걸행위금지법은 ‘공격적인 구걸행위’를 통제 대상으로 하지만, 이것은 거의 모든 걸인을 대상으로 겨냥하기 때문에 집단과 존재 자체에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각 도시에서 형법에도 없는 조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 갑자기 무주택자들이 대거 출현했기 때문이라는데, 이 책은 왜 80년대 중반부터 무주택자들이 급증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112쪽에 간단한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나열에 그쳤다). 대신 아래의 인용이 그 사정을 짐작하게 해 준다.
고대에는 노예제도 덕분에 고용과 불안 문제를 타개할 수 있었던 것처럼, 봉건 시대에는 주종제도를 통해 사람들을 봉토封土에 묶어둠으로써 구걸과 부랑행위의 만연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봉건적 주종관계가 약해짐에 따라 다시금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는 페스트와 백년전쟁을 겪으면서 14세기에 그 절정을 달하게 되었다.(17~18쪽)
요한 2세가 1350년에 부랑행위 근절 법규를 제정하게 된 이유는 백년전쟁(1337~1453)이라는 사회 불안정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걸인과 부랑자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걸인과 부랑자의 증가는 한 사회의 불안정을 보여주는 결과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구제금융 직후, 수많은 노숙자가 생겼다. 이런 사실들이 말해주는 것은, 걸인이나 노숙자를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그들을 ‘진짜 빈민/가짜 빈민’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부랑자는 급변하는 외부 상황을 맞아 일시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들은 걸인(실업자·극빈층)이나 부랑자(무주택자)를 ‘소외계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런 용어는 그들을 우리와 별개의 타인으로 분류한다는 점에서 잘못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게으름과 소득원은 별 연관이 없으며(이 말이 맞다면, 이건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다), 구걸하는 사람이 모두 무주택자는 아니다(‘하우스 푸어’house poor처럼, 집을 가진 진짜 걸인도 가능하다). 이런 주장을 통해 지은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사회 구조 파악에 있어 이분법이 아닌 삼분법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라고 하는 것은 둘로 나누어진 피라미드가 아니다. 또한 실업의 증가와 사회관계의 약화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자격 박탈 과정은, 각 집단을 정확하게 분리할 수 없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들이 연속되면서 야기되는 것이다.(111쪽)
1997년 구제금융기 이후, 우리 귀에 딱지가 앉도록 주고받았던 말은 ‘사회 양극화’다. 그런데 이 용어에는 ‘고소득계층과 (아직은 견딜만한) 저소득계층’이라는 이분법 속에, 진짜 아무것도 없는 소외계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 버리는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소외계층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저소득계층은 소외계층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가정 파탄이나 실업을 맞아 생활이 취약해진 사람이 극빈층으로 내려앉을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하므로 실업자·극빈층·무주택자 등의 소외계층을 자선이나 동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1980년대 말부터 ‘빈곤과의 전쟁’에서 ‘빈민과의 전쟁’으로 넘어간 미국의 예가 보여 주듯이, 언젠가 동정심은 지치게 되어 있고, 동정심은 혐오감으로 바뀌게 되어 있다.
소외계층을 정부정책과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보이지 않도록 착시를 일으키는 사회 양극화 대신, 소외계층을 정책의 가시거리에 넣는 용어(문제) 설정이 시급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을 우리가 사는 사회의 피라미드 속에 넣고 나서야, 그들을 위한 계산이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