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아줌마, 아저씨, 관광버스, 장터, 카바레… 그리고 왜색倭色과 저질. 트로트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선입견이다. 손민정의 『트로트의 정치학』(음악세계, 2009)은 트로트에 관해 갖고 있는 우리들의 선입견을 확인하고, 재정의하고자 한다.
트로트의 음악적 기원이나 양식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연구가들이나 음악인의 연구와 증언이 있었다. 트로트Trot는 서양의 춤음악인 폭스트로트Foxtrot를 어원으로 하지만, 폭스트로트의 형식이나 리듬으로부터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다. 대중음악 연구사가들은 1920년대 중반부터 쏟아져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들이 일본식 음계(요나누키)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에 합의하고 있다. 요즘의 감각으로 이 시절의 음악을 들으면 우스꽝스럽고 촌스럽지만, 일본식 음계를 도입한 <사의 찬미>나 <황성옛터> 같은 곡들은 당대의 예술로 대접받았다. 요나누키 음계를 쓴 저 노래들은 개화한 지식인층의 전유물이었고, 당대의 서민이나 하층민들은 민요풍의 ‘신민요’를 들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오늘처럼 여러 장르의 대중음악이 없었기 때문에 신민요를 제외한 대중가요는 그냥 ‘유행가’로 불렸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 해방 이후 새로운 대중가요 양식이 무더기로 도입되면서,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유행가 양식에 이름을 붙이고 구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엔카’라는 일본식 용어는 가능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비하하는 느낌이 강한 ‘뽕짝’이란 명칭도 적당치 않았다. 그래서 리듬 패턴이 흡사했던 서구의 춤음악인 폭스트로트에서 ‘트로트’라는 말을 빌려온 것이다.
『한국대중가요사』(시공사, 1998)를 쓴 이영미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의 대중음악인 “트로트 양식의 왜색성을 인정”한다면서, 우리나라에서 트로트가 저질시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필자는 사람들이 현재 대중가요의 양색성을 지적하기보다 트로트의 왜색성에 소리를 높이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닌 반일감정에 기인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담론을 유포하는 고학력 대중이나 지식인들의 취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쉽게 이야기하여, 현재의 지식인 혹은 고학력 대중들은 양색의 대중가요에 비해 왜색의 트로트 가요를 싫어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트로트의 왜색성은 바로 그러한 취향을 합리화하는 데에 좋은 구실이 되어 준다는 것이다.”
이영미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대중가요의 최대 장르가 된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층민과 저학력” 계층이었고, 그것을 혐오하는 고학력 중산계층에 의해 트로트 저질론이 유포됐다. 이때, 상대 계층의 음악적 취향을 효과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트로트의 기원은 일본’이라는 민족주의 담론이 동원됐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트로트를 비난하기 위해 동원된 민족주의 담론이 해방 이후 소위 고학력 중산층이 즐기는 미국 대중음악(혹은 영향)에는 적용되지 않는 모순을 꼬집는다.
일본풍과 미국풍에 달리 적용된 민족주의 담론의 모순을 지적하고 또 “트로트 양식의 왜색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영미의 논의는 굉장히 진취적이다. 그런데 저 인용문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왜색성’이란 표현과 거기에 대한 대구對句로 사용된 ‘양색성’이란 표현은, 『한국대중가요사』가 선 자리를 암시해주는 듯하다. 좁은 의미에서의 음악이든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든, 내 속에 든 불순물(왜색성·양색성)을 추출할 수 있을 만큼 음악과 문화가 자기완결적인 것일까? 한 나라의 대중음악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상정할 수 있다는 전제는 다소 무모하지 않을까?
손민정의 『트로트의 정치학』은 오늘날의 푸대접과 달리 일제강점기엔 트로트가 “도시 중산층이 즐긴 특권적 음악”이었다는 평가 등에서 이영미의 선행 작업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유행가가 연극이나 영화를 위한 부수음악Incidental Music으로 출발했다는 주장은 퍽 새로운 가설이다. 손민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가요로 기록되는 <낙화유수>는 1927년 제작된 같은 이름의 영화주제가였으며, <사의 찬미>와 함께 본격적인 유행가 시대를 열었던 <황성옛터>도 극단 취성좌가 단성사에서 공연할 때 막간 음악으로 사용하여 대중에게 알려진 경우라는 것이다. 이런 가설은 그 시대의 유성기 보급이 오늘날의 MP3나 CD처럼 흔전만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몇몇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이 이영미의 작업과 큰 변별력을 갖는 것은 지은이의 방법론이 음악인류학과 현장연구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지은이의 설명한바 음악인류학은 1) 단독으로 존재하거나 그 자체로 닫혀 있는 존재는 없으며, 모든 존재는 상대적 존재라는 점. 2)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상을 일차적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지역적 분석과 국제적 해석을 병행하여 다차원적으로 행해야 한다는 점. 3) 타자가 갖는 상대성을 우리의 입장으로 바꾸어 볼 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두루 살핀다.
음악인류학적인 방법론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을 개별적인 구조로 분석하리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음악의 장Musical Field을 보다 넓은 맥락에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음악인류학적 연구가 개별적 음악 구조를 떠남에 따라 연구자에겐 “트로트를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닌 음악양식Music Style”으로 볼 수 있는 폭넓은 시야가 열린다. 트로트를 음계·박자·가사 형식으로 간주하는 게 장르적 접근 방법이라면, 그런 음악적 특징을 포함하여 트로트의 사회적 기능이나 가치, 공연 형식, 가창 방식, 청중의 반응과 수용 방식 등을 함께 아우르는 게 음악양식적 접근이다. 일례로 남인수가요제에는 평소 선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가수에게 ‘선행상’을 주는데, 장르적 접근만으로는 ‘선행상이 가요제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지만, 음악양식적 접근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여타의 인류학이 그렇듯이 음악인류학에는 필히 현장연구가 동반된다. 지은이는 트로트 작곡가·가수·PD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가요제·효도잔치·고속도로 휴게소·카바레·팬클럽을 누비고 훑는다. 그 결과 지은이는 트로트가 “진실됨, 정직함, 진중함,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배양하고 있으며, 트로트를 통해 배양되고 전수된 고유의 정서가 종족미학Ethno-Aesthetics으로 고착되고, 나아가 만들어진 공동체의 전통으로 주조되는 것을 확인한다. <가요무대> MC 김동건의 과장되리만큼 진중하고 부드러운 언행은 트로트가 가진 음악적 양식과 뗄 수 없는 것이다.
20세기에 만들어진 거의 대부분의 미국 대중음악은 라틴음악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다. 이처럼 전 세계의 모든 대중음악은 보완적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주체의 의지와 현재적 의미가 개입된다. 상호작용하는 문화를 고립적으로 파악하게 되면, 양색성과 왜색성이란 딱지가 난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