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민음사, 2009, 세계문학전집228)을 읽다. - 지은이가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과 제목만 보고서는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대표작들인 쳬르니셰프스끼의 『무엇을 할 것인가』나 고리끼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몰락한 귀족가문의 근위 기병 장교가 쓴 이 작품은 소비에트 리얼리즘과는 크게 상관없는 러시아 낭만주의에 속하며, 좀 더 좁게는 러시아 문학사에 하나의 계보를 이루고 있을 정도라는 ‘잉여인간의 초상’ 속에 이 작품의 주인공인 페초린을 위치시킬 수도 있다. 러시아의 잉여인간상은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예브게니 오네긴』), 레르몬토프의 페초린(『우리 시대의 영웅』), 투르게네프의 루딘(『루딘』),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오블로모프』)로 이어져 나가는데, 한 러시아 문학 전공자는 그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잉여인간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그들은 어느 곳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귀족이나 지주 집안의 출신으로서 높은 수준의 교육과 교양을 갖추고 있으며 세련된 취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행동으로 이끄는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다. [특히 이들에게는] 선악의 개념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선과 악은 인간관계가 서로 성립할 때에 이야기되는 것이나, 그는 그러한 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조주관, 『러시아 문학의 하이퍼텍스트』, 평민사, 2002, 172쪽)
나열된 잉여인간의 계보 속에서 가장 이른 작품인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은 1833년에, 그리고 가장 뒤늦은 『오블로모프』는 1859년에 발표됐으며, 『우리 시대의 영웅』은 1840년에 발표됐다. 조주관은 이와 같은 잉여인간의 출현을 나폴레옹과의 전쟁이 끝난 직후 러시아가 받았던 ‘서구로부터의 충격’과 러시아 최초의 혁명으로 평가되는 1825년의 제까브리스트(12월당) 봉기 실패에서 찾는다. 러시아가 받았던 서구로부터의 충격과 제까브리스트의 결성에 대해서는 국내 정치학자의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1812년 알렉산더 1세는 미카엘 쿠투조프 장군의 모스크바 초토 전술에 걸려 참패한 나폴레옹의 퇴로를 따라 1814년 파리에 입성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전쟁에 참전하여 유럽을 실제로 목격하게 된 러시아 귀족의 자제들은 그곳에서 러시아의 사회적 후진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러시아 사회의 개혁에 대한 의지를 굳혔던 것이다.”(김학준, 『러시아 혁명사』, 문학과지성사, 1979, 12쪽) 나폴레옹의 퇴로를 쫓아 서구의 발전상을 직접 목격하게 된 귀족 출신 청년 장교들이 1816년에 만든 몇 개의 비밀 결사가 1825년의 12월 봉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김학준의 책을 보면 알다시피 러시아 청년 장교들이 일으켰다는 봉기는, 오늘날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부사관들의 쿠데타보다 더 어설펐다.
그러니까 러시아 혁명 이전에 대거 등장했던 잉여인간은, 제까브리스트 봉기가 실패하고 탄압에 따른 사회운동의 좌절로 절망에 빠진 지식인들의 억압되고 암울했던 초상이다. 그렇지만 머지않아 이들은 강한 이념적?정치적 성격을 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Intelligentsia)로 발전하게 된다. 극단적인 혁명사상에 고취되었던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결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지적 노동이나 창조에 종사하는 서구의 지식인(Intellectuals)과 구분된다. 이상이 『우리 시대의 영웅』의 주인공 페초린을 잉여인간이라는 계보 속에 끼워 넣기 위한 간략한 시도였다면, 널리 알려진 정전화된 해석과는 늘 다른 해석을 내놓았던 나보코프의 페초린에 대한 설명은 조금 다르다. 다음은 민음사판 『우리 시대의 영웅』을 번역했던 오정미의 작품 해설에 나오는 말이다: “이 작품의 영어 번역자였던 나보코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페초린을 한 세대 악덕의 상징이라 총평하는 저자의 언급을 사회적 맥락 그대로 받아들여 신봉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오히려 페초린은 괴테의 베르테르나, 샤토브리앙의 르네, 콩스탕의 아돌프와 바이런의 시적 자아와 같이, 모든 지루하고 별난 러시아 밖 주인공들을 대물림하고 있다고.”(253쪽) 다시 말해 나보코프는 이 작품이 씌어진 당대의 러시아적 맥락보다, 별난 주인공들이 나오는 보편적인 문학사 속에 페초린을 기입한다.
페초린은 “머릿속에 더 많은 생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다른 이들보다 더 행동파다”(157쪽)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뜻에서 그는 행동력이 없거나, 창백한 지식인은 분명코 아니다. 페초린에게는 그것이 문제이기보다는, 그가 가는 곳마다, 또 그와 연관되는 사람들마다 죽거나 슬픔에 빠지는 일이 끊이지 않고 생긴다는 것이다. 그도 자신의 존재와 행동 양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준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라곤 다른 사람의 희망을 파괴하는 일뿐인 걸까? 살면서 행동을 하기 시작한 이래로, 운명은 나에게 늘 다른 이들의 드라마를 결말짓도록 해온 것 같아. 마치 내가 없으면 누구도 죽거나 절망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제5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야. 어쩔 수 없이 사형 집행인이나 배반자 같은 불행한 역할을 떠맡지”(167쪽)라는 혼잣말이 선을 행하거나 사랑을 할 수 없는 그의 괴로움과 무력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는 “그게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제 운명이었죠!”(160쪽) 혹은 “어렸을 때 한 노파가 나의 어머니에게 내 운명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내가 사악한 마누라 때문에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187쪽)라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아니라면 괴테?하이네?월터 스콧 같은 문학에 심취했던 벌일까? 그의 일기가 바로 『우리 시대의 영웅』이기도 했던 작중의 주인공 페초린은 겨우 스물다섯 살 부근이었다.
전혀 영웅 같지 않은 그가 ‘영웅’이라고 불린다는 점에서 페초린은 참칭자(僭稱者)이기도 하다. 대체 그는 왜 영웅인 걸까? 살아생전 그가 일기 끄트머리에 미리 써놓은 자필 행장(行狀)에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곳, 이 지루한 요새에서 종종 과거 생각의 기록들을 훑어보면서,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왜 그 길을 따라가지 않았는지를, 운명이 나에게 열어 줬던 길, 조용한 기쁨과 마음의 평화가 기다리던 길을… 아니, 난 그러한 길에는 머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해적선의 갑판에서 낳아 길러진 항해사와도 같다. 그의 영혼은 폭풍우와 전쟁에 길들어져서, 해변 위에 던져 놓으면 지루함과 갑갑함을 느낀다. 그늘진 과수원이 그를 유혹한다 해도, 평화로운 태양이 그를 비춘다 해도 소용없다.”(223~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