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빅토리야 토카레바의 『눈사태』(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0482)를 읽다. - 이 작품은 2001년 출판되어 영화로도 성공했다고 하는데,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푸시킨의 「눈보라」를 떠올렸다. 푸시킨의 연작 소설집 『벨킨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저 단편에서, 세 명의 청춘 남녀는 자연재해로 위장된 우연과 운명의 힘에 농락당한다.
반면 이 작품에는 그런 낭만주의가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고리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서방에 알려지면서 유럽 공연 여행으로 바쁜 마흔여덟 살의 피아니스트다. 그는 음악학교에서 만난 동갑내기 아내 이리나와 열여덟 살에 결혼하여, 혼기를 앞둔 딸과 군 입대를 목전에 둔 아들을 두고 있다.
독일 연주 여행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를 위한 선물로 자동차 한 대 값의 모피 코트를 쉽게 사는 것을 보면, 그는 음악 분야에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 외면적으로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때때로 이고리는 가족이라는 혹성이 “그의 빛과 온기를 거둬”가는 것처럼 느끼며, “참으로 멍청하게 살았구나”라는 공허를 느낀다.
이고리는 독일에서 귀국한 날, 같은 통로에 사는 마흔 살의 이웃 여성 타티야나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20년 전, 이고리는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있던 그녀에게 갑작스러운 욕정이 치솟았던 적이 있다. 소설의 초입에 나오는 이런 설정은, 안온한 일상이라는 포장 속에 숨어 있는 ‘충동’의 정체를 보여준다. “그녀를 강간하고 싶었다. 동시에, 그녀의 치명적인 일종의 고통과 그의 오르가슴이 결합하도록 목을 조르고 싶었다”던 그 충동은 프로이트가 한 궤로 엮기를 선호했던 죽음과 성욕의 복합체이자, 나의 주체를 이룬다.
그런 충동을 느꼈던 즉시 이고리가 찾아갔던 정신과 의사는, 그 충동을 그의 상상 속에서 회전하는 “망상”이라고 위안한다. 하지만 그게 지나가거나 헛된 망상이 아니라는 것은, 20여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그는 다시금 체험한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혼자 찾아간 모스크바 근교의 휴양소에서 이고리는 률라라는 정체불명의 젊은 여성을 만난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우연히 만난 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이고리는 그녀와 눈 쌓인 길에서 성행위를 치른다. 무엇인가 “억제하지 못하고 와르르 쾅 소리를 내며 무너”진 것이다.
률라는 마치 여대생처럼 보이지만 열여덟에 첫 번째 결혼을 했던 서른넷의 이혼녀다. 그녀는 ‘심해 상어’ 혹은 ‘흡혈귀’로 이름난 유명인사 사냥꾼이다. 부유한 유명인사와 ‘꽃뱀’의 뻔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우리나라도 러시아 못지않다. 실제로 이 소설은 ‘조강지처냐, 젊은 애인이냐’ 사이에서 갈등하고 망가지는 중년의 주인공을 보여주며, 그 사이사이에 자존심 높은 딸과의 반목, 부모의 과보호로 응석꾼이 된 철없는 아들의 마약으로 인한 정신병원행과 어이없는 죽음이 삽입된다.
바람피우는 남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외도의 형태는, 자신의 가족을 고스란히 둔 채 정부 하나를 더하는 것(가족+정부)이다. 그런데 그런 형태는 그 자신의 도덕적 위기와 정부의 독점욕으로 인해(왜냐하면 아내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조강지처냐, 젊은 애인이냐’라는 고민에 봉착한다. 내 생각에 이런 상황은 바람피우는 남자가 한사코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선은 그런 갈등에 빠지기 전에, 정부와 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저 불치병(가족+정부)을 안고도 살아나려고 한다. 그게 될 리 있나?
이고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양자택일의 상황을 피하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불치병을 아내에게 밝힌다. 그러면서 ‘가족+정부’를 눈감아 달라고 부탁한다. 남성중심적이기는 하지만, 얼마든지 저 형태는 논리적일 수 있다. 지금까지 가족에게 해왔던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정부 하나를 더 가지는 게, 기존의 가족들에게 무슨 폐를 준다는 말인가? 게다가 이고리의 가족처럼, 그 가족이 지금까지 형식적으로 유지되어 왔다면!
여자들은 남자들의 불치병을 용납하지 않는다. 잘 나가는 피아노 교습 선생인 이리나는 률라와 똑같이 ‘조강지처냐, 젊은 애인이냐’를 선택하라고 다그치며, 남편을 집안에서 쫓아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알코올중독자가 되어간다. 남편이 자신의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 인부를 대동하고 왔을 때, 이리나는 현관으로 달려나가 “관 위에 쓰러지듯이 피아노 위에 쓰러”져 “두 팔로 피아노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심해 상어, 혹은 흡혈귀로 비유되는 률라는 자신의 과거가 양파처럼 하나씩 벗겨질수록 더 뻔뻔스러워진다.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이고리에게 숨기거나 동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각색하지 않는 것은, 성욕과 죽음이라는 충동에 저항하지 못하는 이고리의 성격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확신처럼 그는 그녀의 치부를 낱낱이 알게 되었지만, 결코 그녀를 떠나지 못한다. 소설의 결말이 가르쳐 주듯이, 이고리의 삶은 오직 률라의 권태에 의해서만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제목을 잘 지어 놓으면, 그것이 저절로 모티프 역할을 하게 된다. 작가는 작품 곳곳에서 필요할 때마다 “눈사태는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 길은 아무도 모른다. 눈사태 자신조차도”, “그들은 서로 껴안고 잠이 들었다, 굴속의 두 마리 짐승처럼. 혹은 눈사태에 깔린 두 사람처럼”, “눈사태가 일어났고 속력을 냈다. 눈사태는 이미 그의 집을 쓰러뜨렸고, 그의 평생을 약탈했다”고 쓰고 있는데, 눈사태는 인간의 심부에 숨어 있는 충동의 다른 말이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중년 가장의 불륜을 다루지만,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변환하면서 생긴 러시아의 혼란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사족이다. 빅토리야 토카레바의 『눈사태』가 발표되고 영화화되기 훨씬 이전에, 푸시킨의 「눈보라」가 영화화되었다. 우리나라에 그 영화가 개봉되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지만, 저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작곡된 G. 스비리도프의 <눈보라>는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나는 저 음악을 2000년 초에 처음 들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이 레퍼토리는 고를 수 있는 음반이 그리 많지 않다. 그때 수소문해서 찾았던 음반이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지휘,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