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유리 나기빈의 『금발의 장모』(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0426)를 읽다. - 192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994년에 작고한 유리 나기빈은 1940년부터 소설을 발표했다. 스탈린 치하에서 대독對獨 전쟁을 치를 때부터 소비에트가 해체된 이후까지 작품 활동을 했던 만큼, 그의 작품은 다양한 작품군을 가진다. 그중에서 작가의 사후에 발표된 『금발의 장모』는 8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씌어진 자전적 고백 소설군으로 분류된다.
장모와 사위의 연사를 담은 이 파격적인 작품은, 여섯 번의 결혼 경력이 있는 나기빈이 세 번째 아내의 장모와 벌였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작가의 사후에 발표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기빈의 세 번째 부인과 장모는, 모스크바에 있었던 유명한 자동차 공장의 사장이었던 리하초프의 딸과 그의 아내였다. 스탈린의 총아였던 리하초프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구소련 사회의 핵심 인물로, 장모와의 사랑 얘기인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전후 소련의 시대상과 비밀의 장막에 가려 있던 크렘린의 내부를 보여준다.
작가의 분신인 크림은 열여덟 살 때, 두 번의 약혼 경험을 지닌 두 살 연상의 다샤를 만나, 열아홉 살에 결혼한다. 결혼 직후 군인으로 징집되었다가 부상을 당하여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다른 남자가 생긴 아내와 소원해진 끝에 이혼한다. 이후 신문사에서 일하게 된 크림은 이미 한 번 결혼해서 네 살배기 아들을 둔 갈랴라는 이혼녀를 만나게 되고, 약혼자 자격으로 그녀 집안의 여름 별장에 초대받는다. 거기서 그는 장모가 타티야나 알렉세예브나를 처음 보게 되는데, 그 순간은 이렇게 묘사된다: “나는 겨우 발로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휘청거렸고, 땅은 내 아래서 미끄러져 나갔다. 때때로 나는 첫 순간에 이미 그녀가 내 인생에 가져올 모든 고통, 슬픔, 혼란, 기묘한 공포를 맛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마 크림은 미래의 장모가 될 타티야나 알렉세예브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갈랴와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장인이 될 즈뱌긴체프가 대단한 공산 관료 특권층(노멘클라투라)이긴 했으나, 이미 애송이 작가인 그에게 스탈린의 위광으로 행세하는 공산당 권력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자신도 초혼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갈랴는 네 살배기 아이까지 가진 이혼녀가 아닌가? 하지만 그런 마뜩잖음은, 타티야나 알렉세예브나를 보는 순간,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내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맹세를 했다. 이 여자는 내… 장모가 될 것이라고.”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나보코프의 『롤리타』와 비교되면서 ‘반反롤리타’로 분석되기도 했다고 한다. 두 작품이 비교될 수 있는 가장 큰 공통점은, 다른 사람에 대한 흑심을 품고서 그 사람의 측근과 결혼하는 두 남자 주인공의 우스꽝스럽고 처절한 정열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나보코프의 『롤리타』(민음사, 1999개정판)는 “오직 그녀의 딸(롤리타)과 함께 있기 위해서”(98쪽) 샬로트 부인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던 험버트의 이야기가 아닌가? 이런 정열 앞에서, 연하와 연상이라는 방향은 대수로운 게 못 된다(오해가 있을까 봐 덧붙이는 말이지만, 나보코프의 여주인공은 결코 포르노물의 희생물로 나오는 ‘소아성애’의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작가는 크림이 장모에게 본격적인 애정 공세를 퍼붓기 전에 “나는 나의 폭넓은 섹스 경력으로 독자들을 접대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공언하고, 또 그 약속을 거의 반 정도 지키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크림과 타티야나 알렉세예브나의 관계는 ‘정신적 사랑’ 따위에 멈칫거리지 않으며, 체면이나 도덕에 구애받지 않는다. 결혼식을 올리고 장인 집에서 함께 살게 된 크림은 하필 장인의 침실 위층에 신방을 차리게 되는데, 매일 밤 계속되는 신혼부부의 법석(?)으로 장인이 위층의 침대를 다른 구석으로 옮긴다. 그러자 크림에게 상실감이 찾아왔다. : “이전에 나와 갈랴의 사랑이 바로 그녀의 머리 위에서 벌어질 때, 나는 마치 천장을 통과해 욕정으로 달구어진 쇠막대기로 그녀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분리되어 버렸다.”
사위가 자신을 갈망한다는 것을 알고도 장모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을 뿐 더러, 장모는 사위가 치근대는 것을 즐긴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은, 장모와 장인이 매우 소원한 사이라는 것, 그리고 장인이 집 건너편 아파트에 장모보다 평범할 뿐 아니라 나이까지 많은 여 공무원과 딴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사실로 납득이 된다. 장모는 사위의 유혹을 방치하면서, 남편의 질투를 끌어내려고 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런 안타까운 노력은, 크림이 첫 번째가 아니었다. 이유가 명료하지 않았던 갈랴의 이혼도, 남편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고자 사위를 유혹했던 장모의 술수와 연관이 있다. 그러나 장모의 계책과 달리 현장을 발각당한 첫 번째 사위는 집에서 쫓겨났고, 그것을 기회로 남편은 집 건너편에 버젓이 딴살림을 차렸다.
스탈린은 ‘가정의 수호천사’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측근들이나 공산 관료 특권층은 어떻게 이처럼 “공공연하게 정부를 두거나” 옛날 가족들하고도 단절하지 않은 채로 “두 번째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작가의 해답은 이렇다: “즈뱌긴체프와 비슷한 사람들은 모든 힘줄이 터지라고 일을 했다. 2~3개월 동안에 ‘시베리아 탄광 깊숙이에서’ 강력한 전시 산업을 창출해 낸다는 것은 헤라클레스의 업적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광적인 노동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얻었는가? 월급뿐이다. 딸랑이 훈장뿐이다. 스탈린은 현명하게―지출 없이―가훈 법규들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을 사례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작중에서 되풀이되는 진술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장모와 사랑을 하고 있던 그때,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는지 끝이 났는지 결코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라는 크림의 말이다. 내 기억으로는 네 번 이상 반복된 저 진술은 크림의 장모에 관한 사랑이 그만큼 절대적이고 진실했다는 것과, 전쟁광들과 독재자에 대한 혐오를 함께 가리키고 있다.
그녀를 향한 나의 위대한 애수의 날들은 대체로 “여러분, 지금 밖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라는 태도로 요약된다. 여인의 가장 사소한 몸짓까지도 기억하면서, 이 여인으로 인해 마음의 기억에서 제외되어 버린 비극적 시대의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성물 모독적이다. 수많은 피를 흘리며 전쟁은 끝나가고 있었고, 허영심으로 야수가 되어버린 말보로[18세기 영국의 존 처칠 말보로 공작.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다.]주의자들에게는 베를린을 차지하는 데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상관없었다. 그러나 나는 베를린을 차지하느냐, 차지하지 못하느냐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장 뛰어났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죽었고 그들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파시즘을 없앨 수는 없다. 독일에서 파시즘을 모조리 쳐부수었는데도, 모스크바에서는 새롭게 발생했던 것이다.
거리의 벤치에서 장모의 갑옷 같은 옷을 벗겼을 때 옷의 단추가 몇 개였는지는 기억하고 있지만, “아직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는지 이미 끝나버렸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크림의 말은, 전쟁에 대한 냉소이면서 삶에 대한 가열한 옹호다(217~219쪽은 이 작품이 스탈린 시대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서구 문명 전체로 확대된다).
뭐니뭐니해도 『금발의 장모』는 사랑 이야기다. 크림은 장모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장인이며, 자신을 질투의 불쏘시개로 쓰기 위해 “착오 없는 본능이 당신의 집안에 내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당신에 의해 작동했던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연애 행각 끝에 장인에게 꼬리를 밟힌 크림은, 장인에게 총질을 당하기 일보 직전에 옷가지를 주어 들고 신혼집(장인집)에서 달아난다. 작중에는 설명되지 않았지만, 그 길로 나기빈의 세 번째 결혼의 끝이 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