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
W. B. 예이츠의 『디어드라』(동인, 2007, 현대영미드라마학회 영한대역20)를 읽다. - 현대 영국 시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는 예이츠는 꽤 많은 희곡을 썼고, 한국에도 그의 희곡이 꽤 번역되어 있다. 내가 읽은 이번 책에는 표제작 「디어드라」와 「매의 샘에서」가 실려 있다.
방금 예이츠를 소개하면서 ‘현대 영국 시인’이라고 했지만, 실은 예이츠는 아일랜드인이며,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분투한 민족주의자였다. 하므로 독일어로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카프카가 독일 작가로 분류하는 게 약간 무리이듯이, 예이츠를 영국 시인으로 소개하는 것은 어폐가 없지 않다.
예이츠는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민족적 주체성을 잊지 않고 드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피스가 만든 아일랜드 민족극장(The Irish Theatre)을 국가 건설의 강력한 거점으로 여긴 그는 아일랜드 전국연극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그레고리 부인이 창립한 애비극장에 별도로 참여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독립이라는 명료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예이츠의 희곡은 정치적인 투쟁이나 선전과는 확연히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정치 투쟁이나 선전을 위해서는 사실주의극이 훨씬 뛰어난 형식일 텐데도 그의 희곡은 사실주의극과는 전혀 동떨어진 시극이다. 또 내용도 현재와는 거리를 둔 고대 아일랜드 신화와 전설을 현대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것들이다.
1906년에 공연된 「디어드라」는 작가 스스로 ‘나의 최고의 희곡’이라고 자찬했던 작품이다. 20여 편이 넘는 예이츠의 희곡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작품 또한 시와 극이 결합된 시극이며, 내용 역시 아일랜드인들에게 익히 알려진 민족 설화에서 빌어 왔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아일랜드 신화는 그리스-로마권의 신화만큼 풍부하고,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전혀 다른 질감의 얘기들을 들려준다.
이 작품의 토대가 된 디어드라와 니이쉬이의 전설은 많은 이본을 가지고 있다. 고대 아일랜드 왕국의 늙은 왕 코노하는 14살 난 산골 소녀 디어드라를 발견해서 왕궁으로 데리고 온다. 왕은 그녀가 궁궐의 법도를 익힌 1년 뒤에 결혼하고자 했는데, 결혼식을 한 달쯤 남겨 둔 어느 날, 약혼녀 디어드라와 왕의 심복인 니이쉬이가 눈이 맞았다. 두 사람은 왕의 분노를 피해 스코틀랜드로 도망간다.
도피 생활 7년째, 왕이 니이쉬이에게 사면장을 보낸다. 디어드라는 귀국을 말리지만, 오랜 망명생활을 끝내고 명예도 되찾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긴 니이쉬이는 왕의 사면에 응한다. 디어드라가 니이쉬이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함께 아일랜드로 갔을 때, 왕은 약속과 달리 두 사람을 숲 속의 객사에 감금한다.
원래의 전설은 이처럼 유구하지만, 예이츠는 두 사람이 숲 속의 객사에 당도한 순간부터 시작한다. 예이츠 당대의 많은 아일랜드 작가들이 디어드라와 니이쉬이의 전설을 통째로 무대에 올리고자 시도했지만, 예이츠는 거두절미하고 니이쉬이 일행이 숲 속의 객사에 당도해서 왕의 내심을 파악하고, 죽기까지의 단 하루를 무대화했다. 바로 여기에 예이츠의 현대적 감각이 살아 있다고 할 것이다. 작가는 전설이 가진 서사를 모두 제거한 대신, 니이쉬이와 디어드라를 곧바로 시시각각 조여드는 생사의 극점에 데려다 놓음으로써, 죽음과 대면한 두 사람의 내면을 파고든다.
서영윤이 번역한 동인판 『디어드라』를 읽으면서 이세순이 번역한 『데어드라』(누멘, 2009)를 함께 보게 되었는데, 누멘판에는 디어드라와 니이쉬이의 전설은 물론이고 예이츠의 본 작품과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대한 굉장히 풍부하고 자세한 해제가 첨부되어 있다. 이세순에 따르면, 아일랜드 독립운동이 점점 치열해지던 1880년대 초부터 독립을 쟁취한 1922년 사이에 디어드라와 니이쉬이의 전설이 집중적으로 극화되었다고 한다. 당대의 아일랜드인들은 이 전설을 ‘아일랜드의 헬렌’과 같은 고대 로맨스로 보지 않고, 늙은 왕에 대적하는 젊은 영웅의 숭고한 죽음에서 영국에 대항하는 아일랜드인의 독립정신을 고취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