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김미현의 『고골의 희곡 「구혼」 연구』(도서출판 전망, 2004)를 읽다. - 구소련의 문학이론가인 게오르기 프리들렌제르에 따르면, ‘고골은 신분과 자본이 사랑 못지않게 강력한 극적 행동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던 최초의 러시아 극작가이며, 거기에 고골의 위대한 역사적 공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위의 평가가 나오는 같은 문단 속에, 그는 곧바로 아래의 평가를 덧붙여 놓았다: “그러나 고골은 신분과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랑 그 자체가 새로운 형태를 획득하고 있고 이러한 사랑의 형태를 묘사하는 것이 동시대 사회의 정신적 분위기와 내적 구조를 분석하는 데 있어 극작가에게는 가장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음을 아직은 이해하지 못했다.”(『리얼리즘의 시학』, 295쪽)
하지만 「구혼」을 보면, 사랑이 한 사회의 첨예한 풍속과 그 시대의 정신을 드러내 주는 고리라는 것을 고골이 몰랐다고 할 수 없다. 1847년에 발표된 「구혼」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1836년 작 「감찰관」과 똑같이, 백과사전식 등장인물이 나오는 시사풍자극이다. 먼저 발표된 「감찰관」이 관료제를 신랄하게 풍자한다면, 10여 년의 각고 끝에 완성되었다는 「구혼」은 결혼제도에 대한 풍자다.
김미현의 『고골의 희곡 「구혼」 연구』는 지은이의 「구혼」에 대한 연구와, 고골의 「구혼」을 싣고 있다.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처럼, 나 역시 김미현의 글보다는 책 말미에 수록된 「구혼」부터 읽었는데, 이 책에 실린 번역은 완역이 아닌 발췌역이다. 그런데도 지은이는 머리말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고골의 「구혼」을 번역하고,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숨은 의미와 작품 속의 인물의 성격을 밝혀내는 연구서를 출간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만 써놓았을 뿐, 발췌역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다. 하므로 독자들은 발췌가 어떤 원칙 아래 이루어졌는지 알 도리가 없다.
펭귄클래식판 『코·외투·광인일기·감찰관』을 읽고 나서, 고골의 주인공들은 관등에 대한 욕망(인정 욕망)만 있을 뿐, 성욕은 없다고 썼다. 「코」·「외투」·「광인일기」의 주인공들은 노총각이거나, 한 번도 결혼을 해보지 못한 노인이었다. 그 사정은 오늘 읽은 「구혼」의 주인공 뽀드콜료신에게도 해당한다. 작중에 나이가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먼저 장가를 간 그의 친구 꼬츠까료프가 뽀드콜료신을 장가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면, 아마 그의 나이도 앞서 거론했던 주인공들처럼 노총각임이 분명하다.
중매쟁이 표클라 이바노브나가 상인의 딸 아가피아와 다리를 놓아주려고 하자 “마흔 정도 된 여자라고 그랬소?”라고 묻는 것으로 보아, 그 자신이 40대로 추정되는 뽀드콜료신은 7등관이라는 자신의 관등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고골의 다른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뽀드콜료신 역시 관등에 대한 욕망으로 사랑이나 결혼, 또는 가족에 대한 욕망을 잊어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막이 열리면 관객들이 처음 듣게 될 대사가 “이런 제기랄, 혼자서 이렇게 한가할 때면 생각이 나는군, 그래 어쨌든 결혼은 해야 돼. 정말 해야 되나? (…) 거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이 또 지나가 버렸네. 정말이지 난 모든 준비가 완료돼 있는데, 그리고 중매쟁이는 석 달 동안이나 들락거리고 있고, 정말이지 쑥스럽군”이라는 뽀드콜료신의 혼잣말이긴 하지만, 그 한탄을 뽀드콜료신의 결혼에 대한 갈구라고 동정해서는 안 된다. 뽀드콜료신은 온 도시에 자신의 관등을 뻐기기 위해, 중매쟁이에게 신붓감을 얻어 달라고 청을 넣은 것이다. 관등에 대한 이런 도착적인 사물화야말로 고골이 매번 솜씨 있게 휘두른 비수匕首가 아니었던가?
이런 사정을 이해하고 나면, 뽀드콜료신이 왜 아가피아를 탐탁지 않아 하고, 그녀를 보러 가지 않는지를 납득하게 된다. 그래서 곁에서 보다 못한 뽀드콜료신의 친구 꼬츠까료프가 중매쟁이 대신 나서서 그를 아가피아의 집으로 데려간다. 여기서부터 고골은 「감찰관」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았던 백과사전적 형식을 되풀이한다. 꼬츠까료프가 뽀드콜료신을 아가피아의 집으로 데리고 간 그 시간에는(오후), 중매쟁이에 의해 초대된 또 다른 아가피아의 구혼자들이 와 있다. 회계검사관 야이시니짜, 퇴역 보병 아누츠킨, 퇴역 해군 중위 제바킨. 이들은 지은이의 의도에 따라 러시아 사회의 다양한 계층에서 뽑힌 인물로, 그들은 각기 자기 계층을 대표할 뿐 아니라, 개성인 듯 보이는 그들의 성격은, 당대 러시아인들의 결혼에 대한 전형적인 사고를 보여준다.
회계검사관 야이시니짜는 신부보다는 신부가 가져올 혼수품과 재산에만 관심이 있고, 퇴역 보병 아누츠킨은 자신은 할 줄도 모르는 프랑스어를 신부는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또 퇴역 해군 장교 제바킨은 여성의 가치를 아름다움과 성적 대상으로만 저울질한다. 사랑과 결혼이 이처럼 도착적이고 계산적이 된 것은, 비단 고골이 살았던 때의 러시아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허영과 잇속에 찬 신랑감은 동서고금이 널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 인물들의 러시아적인 성격이 ‘동서고금’이라는 편리한 말로 희석되거나, 보편적인 정형화로 환원될 수 없다.
저 인물들 하나하나에 러시아 문학 이론가들이 즐겨 내세우는 슈제뜨[소주제] 이론을 대입해보자. 슈제뜨는 전체 이야기에서 벗어난, 개개의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개별적인 이야기다. 거기에 주목할 때, 야이시니짜의 슈제뜨로부터는 하급 관료들의 인색함과 거들먹거림을, 아누츠킨의 슈제뜨로부터는 러시아 사회의 폭력성을, 제바킨의 슈제드로부터는 서구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구애와 강박증을 도출할 수 있다. 즉 「구혼」의 주인공들이 전개하는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슈제뜨가 고골의 신랑감들을 ‘동서고금’의 정형성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다.
신랑감이 병들었는데, 신붓감이 병들지 않았을 리 없다. 뽀드콜료신를 포함한 네 명의 후보자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고민에 빠진 아가피아는, 아누츠킨의 입술에다가 뽀드콜료신의 코를 붙이고, 마른 제바킨에다가 야이시니짜의 통통한 살집을 결합하는 식으로 공상을 한다. 그러다가 네 사람의 이름을 종이에 써서 지갑에 넣고, 제비뽑기로 신랑을 정하고자 한다. 스물일곱 살 난 아가피아에겐 그저 노처녀로 늙지 않기를 바라는 안간힘만 있을 뿐, 이런 행위에 ‘낭만적 사랑’이란 감정이 깃들 자리는 아예 없다.
「구혼」의 마지막 장면은, 연극사에서 가장 놀라운, ‘놀래기 끝surprise ending'일 것이다.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아가피아를 차지하게 된 뽀드콜료신이, 신부가 결혼예복을 입으러 간 사이에 갑자기 2층의 창문 밖으로 달아나버린 것이다. 아래는 그가 신부의 집에서 도망가기 직전에 하는 혼잣말이다.
(…) 조금 후엔 부인이 생기겠지. 갑자기 행복감을 느끼고, 어떤 이야기 속에서나 있을법한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겠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어, 뭐라 형언하기 힘들군. (잠시 침묵) 거참, 이상하네, 왜 이렇게 두렵지? 그만 생각하고, 아리따운 처녀만 생각해야지. 네 평생 이런 일은 없었어. 하지만 결혼하면 나를 얽매고 발뺌도 못하게 되고, 더 이상 후회도 못하겠지… 괜찮아, 다 괜찮아, 다 끝난 일이라고. 끝. 그렇지만 지금 되돌리지 않으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잠시 후면 결혼식이 거행될 거고, 빠져나가려고 해도 갈 수 없어. 이미 밖에는 마차가 대기해 있고, 모든 것이 준비돼 있을 거야. 정말이지 도망쳐버리면 안 될까? 불가능할 것 같아. 문 근처에는 온통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으니. “왜 그러세요?”하고 물어 올 텐데. 안 돼, 안 될 것 같아. 아, 저기 창문이 열려 있네. 만약에 창문으로 나간다면? 안 돼, 그럴 순 없어.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너무, 높을 것 같아. (창문으로 다가간다) 그렇게 높지는 않네. 1층인데다가 저쪽은 더 낮아. 없어, 모자가 안 보여. 모자가 없이 어떻게 나간담? 난처하군. 모자를 쓰지 않고 그냥 나가면 안 될까? 그런데 누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그래도, 시도해 볼까? (창문에 서서 “신이여 도와주세요.”라고 말한 뒤, 거리로 뛰어내린다. 무대 위에는 신음과 한숨소리) 으-윽! 생각보다 높군! 이봐, 마부!
아가피아가 뽀드콜료신을 선택한 이후, 이 풍자극은 갑자기 몽환극이 되어 버린다. 어느새 신부복이 준비되고, 잔치와 하객이 밀려드는 것이다. 이런 불가능하고 왁자지껄한 후반부는, 술집에서 취한들을 상대로 하는 ‘주점극vaudeville’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도 고골이 10년을 주물럭거린 끝에 이런 억지스러운 후반부를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은 고골이 고전주의극의 ‘삼일치’ 법칙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단일한 사건, 고정된 장소, 하루 안의 이야기라는 삼일치 법칙은 「감찰관」과 「구혼」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고골은 황망하게 구혼이 성공한 날 서둘러 결혼식 장면까지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실제로는 하루도 못 되는, 고작 오후 한나절 동안의 이야기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막이 열리면 “뽀드콜료신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다”로 시작되는 이 연극이, 애초부터 뽀드콜료신의 몽상으로 시작했다는 해석이다(그의 첫 대사이자, 관객이 듣게 되는 첫 대사는 앞서 인용됐다). 중매쟁이 표클라 이바노브나에 따르면 그는 “집 밖으로 유인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 말을 고스란히 믿자는 것이다.
선을 보러 간 날, 결혼식까지 일사천리로 준비되는 후반부 설정은 「구혼」의 더 완벽한 완역본이 나와야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래도 남는 것은, 결혼식을 목전에 두고 달아나는 뽀드콜료신의 성격이다. 신랑·신부가 결혼식장에서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은 그렇게 신기하지 않다. 그런데다가 이 결혼은 친구인 꼬츠까료프의 우격다짐이 상당한 몫을 했다. 때문에 꼬츠까료프 역시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잠시 결혼식 연회를 준비하러 방을 비우는 사이에 뽀드콜료신의 모자를 감추었던 것이다. 덤으로, 뽀드콜료신처럼 스스로 판단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이런 인물은 러시아 문학 작품의 단골 주인공으로, 훗날 투르게네프에 의해 ‘잉여인간/‘허무주의자’라는 이름을 얻는다.
사족이다. 고리끼 문학대학의 문학석사이자, 기티스 예술종합학교의 예술학 박사라는 김미현의 「구혼」에 관한 연구는 엉터리다. 이따위가 연구라면, 시쳇말로 ‘파리는 새’고, ‘독후감은 논문’이다. 먼저 지은이는 「구혼」을 발췌번역하면서 아무런 원칙이 없었다. 대표적으로 뽀드콜료신이 결혼식을 앞두고 갈등하는 독백을 다 잘라내고,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지문을 삭제해 놓아, 김미현의 소위 저 ‘연구’를 읽기 전에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앞선 긴 인용은 ‘연구’에만 있고, 「구혼」에는 없다!) 더 황당한 것은, 지은이의 저 ‘연구’ 속에 인용된 「구혼」의 대사가 자신이 자랑스레 번역해 놓았다는 책 말미의 「구혼」의 대사와 같은 게 없다는 것. 예를 들면, 아가피아의 동일한 대사가 ①「구혼」과 ②‘연구’ 속에서 저마다 다르다.
① 고모 또다시 길이 나왔어. 기똥차군, 다이아몬드 왕이라, 눈물, 사랑하는 이의 편지, 왼쪽은 클럽의 킹이 나왔으니 귀인이 찾아온다는 것인데, 뭔가 나쁜 놈이 방해공작을 해와.
② 고모 또다시 길이 나왔어. 기똥차군. 다이아몬드 왕이라, 눈물, 사랑하는 이의 편지, 왼쪽은 크로바의 왕이 나왔으니 귀인이 찾아온다는 건데. 누군가 나쁜 놈이 방해공작을 해와.
게다가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게 뻔한, 겉멋 들린 말들. 이를테면 “「구혼」의 주인공 뽀드콜료신은 헤겔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하나 당대의 헤겔 신봉자들의 흐름에 어렴풋이나마 그 맥락을 같이하며 흘러간 것이다” “이러한 고골의 극구성 방식은 언뜻 보면 사건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후기구조주의 철학자 중의 한 명과도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등등. 도대체 어떤 개념이나 이론을 작품과 연관 지어 설명할 의도조차 없으면서, 저런 단발마적인 장식구나 내뱉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