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시부사와 다쓰히코의 『역사 속의 이단자들』(가람기획, 2006)을 읽다. -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이다. 저자는 1928년에 태어나 일본에 사드의 저작을 소개했고, 에세이스트로 활약하다가 만년에는 소설을 썼다. 일본에는 전 22권으로 구성된 저자의 전집도 있지만,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이 작은 책은 서양사에 실재했던 여섯 명의 이단異端에 대한 간략한 평전이다. 바그너의 후원자였던 루트비히 2세, 20세기 러시아의 신비 사상가 구르디예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샤를뤼스 남작의 모델로 간주되는 몽테스키우 백작, 18세기 고딕 소설의 선구로 손꼽히는 『바테크』의 작가 윌리엄 벡퍼드, 악명 높은 유아 살해자이자 ‘푸른 수염’의 모델이 된 질 드 레 후작, 자코벵당의 일원으로 ‘공포시대의 대천사’로 불린 생쥐스트, 전대미문의 악덕을 과시했다는 18세의 로마 황제 헬리오가발루스. 이들은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을 몸소 실천했다는 뜻에서 이단의 사전적 풀이에 들어맞다.
독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들의 중요한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구르디예프와 생쥐스트만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남색에서 양성애를 자유롭게 오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루트비히 2세·윌리엄 벡퍼드·질 드 레는 건축물에 집착했고, 몽테스키우 백작·헬리오가발루스는 건축물에 집착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에 뒤지지 않은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다는 것도 이들의 중요한 공통점이다.
성적 분방과 건축물에 관한 집착, 도를 넘는 낭비는 어떻게 해서 이들을 함께 묶는 공통점이 되었을까? 우선 건축.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거나 아이인 채로 더 자라기를 거부했던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자기 자신의 ‘아이의 이미지’만을 사랑한다. 타인과의 정서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이들은 자신의 환영을 유지해줄 인간을 발견하는 일이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에, 여러 가지 수집 취미를 갖거나 무한한 환상의 보고인 건축(물)을 인간의 대체물로 삼는다. 이단이랄 수는 없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많은 록 스타들의 다양한 수집 취미와 거액을 들인 호화 주택은 위의 논리를 뒷받침해 주는데, 마이클 잭슨의 네버랜드Neverland는 그것의 결정판이다.
다음은 도를 넘는 낭비. 지은이는 이들의 낭비벽에 ‘위대한 데카당스’란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이들은 부를 축적하는 일에서 행복이나 권위를 찾지 않고 극한의 소비에서 행복과 권위를 찾았기 때문에 이단인 것이다. 이런 논리는 지은이가 이 책에서 거론하고 있는 사르트르·바타유·호이징가 등에게 빚진 것이랄 수 있다. 지은이는 이들의 이론을 디딤돌로 진보주의나 보수주의 할 것 없이 ‘노동의 가치’를 믿어 의심치 않는 이 시대를 불모의 사회라고 몰아붙이면서, “이에 반해, 위대한 데카당스는 항상 기괴한 혼돈 속에서 재생을 준비하는 예술적 또는 종교적 탐구”를 보여주었다고 극찬한다. 하지만 국가는 부유하고 국민은 가난한 나라로 발전(?)한 향후 일본 사회를 보면, 이 글을 쓸 당시의 지은이 역시 또 한 명의 이단이었을 뿐이었나 보다.
남색과 양성애를 오가는 성적 분방은 당연히도 낭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이들의 무정부적 성性은 바타유가 말했던, 제한경제restricted economy 너머의 일반경제general economy에 상응하는 그런 성이다. 생쥐스트는 여성에 대해 결벽에 가까운 태도로 유명하지만, 그가 외설적인 장편시 『오르강』을 쓴 장본인이라는 것은, 극한의 소비 욕망이 너나 할 것 없는 인간성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증빙해주는 듯하다(생쥐스트의 외설이 포르노그래피이기보다, 정치 팸플릿에 더 가깝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은 몽테스키우 백작·윌리엄 벡퍼드·질 드 레 중에서, 특히 질 드 레에 관한 글이 좋았다. 잔 다르크를 따라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숱한 공훈을 세웠다던 질 드 레가 깊은 해자垓字를 두른 자신만의 성에 칩거한 채, 8년 동안 적게는 140명에서 많게는 800명의 소년을 유괴해서 죽이게 된 이유는, 백년전쟁이 끝나면서 중세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의 개념을 빌렸던 지은이에게 중세란 ‘소비사회’다. 그 시대는 엄청난 낭비의 경연이 일상화한 시대였고, 전쟁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기초였다. 때문에 중세의 전쟁은 근대의 전쟁관에서 중시되는 유효성이나 인간의 계산적 활동이 아니라 ‘순수한 놀이’였다. 노동이 비천한 노예나 평민의 일이듯, 놀이는 귀족의 일이었다. 말하자면 소비사회(중세)의 대표적인 놀이 전문가가 귀족/전사戰士들로, 그들이야말로 “자신과 남을 소비”시키는 것을 특권으로 부여받은 존재였다. 하지만 기술과 경제가 전쟁을 결정하는 주요인이 되면서, 전쟁에서 놀이가 차지하는 몫은 급속히 줄어들어 갔다. 마키아벨리의 시대가 온 것이다.
중세의 황혼은 전사에게 이전에 허용됐던 극단적인 소비를 불가능하게 했다. 전장을 쫓아다니며 유혈과 성적 흥분을 결합시키는 것을 취미로 삼았던 질 드 레는 문명인의 섬세함을 갖추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놀이를 계속할 수도 없었다: “봉건사회의 정신을 한 몸으로 구현하고 있던 레는 전쟁에 의해 부여받은 장소 이외에는 자신을 세울 장소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또, 전쟁으로 피폐해진 봉건세계는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티포쥐 성에 틀어박혀야만 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성 안에서는 시체 냄새가 감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질 드 레는 중세세계에 뒤처져 있던 고대적 인간이었고, 그가 일으킨 비극은 “봉건사회의 비극이며,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던 대귀족의 비극”이었다. 그런데 140~800명의 소년을 유괴해서 죽였다는 질 드 레의 범죄가 일순 교회극敎會劇이나 참회극懺悔劇으로 돌변하고 마는 것은, 그가 어느 연극보다 더 감동적인 재판 과정을 통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며, 악마적인 행위에 빠져 있으면서도 끝끝내 신을 버리지 못” 했던 기독교인으로 판명되어, 온 나라에 공표된 것이다. 원래는 체포되어 파면을 당했던 질 드 레는 재판부에 의해 파면이 취하되고 고백성사를 허락받았으며, 이후로는 화형을 선고받고도 아무런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지은이는 질 드 레와 같은 악한의 영혼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기독교의 역설에 대해 논평하면서 “기독교의 본질이란 어쩌면 면죄를 얻기 위해 요구되는 죄의 요구, 공포의 요구일지도 모른다”고 쓴다. 즉 질 드 레의 범죄는 “그대로 광기 어린 기독교적 행위”로 둔갑하고 말았던바, 그 역설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행복한 죄과罪過’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짓는 죄가, 곧 천국을 보장하는 ‘빽’이란 거지?).
질 드 레도 재미있지만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존재다. 역사상의 별난 인물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이 더 자세하고 풍부하게 제공해 줄 수 있다. 뿐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이미 지난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코 이 책은 정보의 집적 이상이며, 무엇보다도 이 책이 인터넷도 없던 시절인 1963년도에 출간된 것을 알아야 한다. 60년대 초기에 이런 정도의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었던 나라가 우리 이웃이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