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김유정의 『동백꽃』(문학과지성사, 2005, 한국문학전집14)을 읽다. - 여기 실린 23편의 단편을 약력에 나온 작품 연보와 비교해 보면, 김유정의 작품이 거의 망라된 것을 알 수 있다. 나로서는 이처럼 김유정을 모두 읽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느 비평가가 「들병이 사상과 알몸의 시학」이란 평론을 쓴 것처럼, 김유정의 작품에는 들병이가 흔하게 나온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들병이는 들병장수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며, 들병장수란 병에다 술을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들병장수는 이동식 간이주점의 주모인데, 이들은 술만 팔지 않았다. 그런데 김유정 소설을 가만히 보면, 그가 사용하는 들병이는 사전적 의미보다 훨씬 쓰임새가 넓다.
들병이가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 「산골 나그네」·「총각과 맹꽁이」·「솥」·「안해」 같은 작품군을 A형이라고 하고, 위의 작품과 전혀 차이가 나지 않지만 문자 그대로의 들병이가 나오지는 않는 「소낙비」·「따라지」·「가을」·「두꺼비」·「정조」 같은 작품군을 편의상 B형이라고 하자.
A형에 속하는 작품 가운데 「산골 나그네」·「솥」·「안해」는 남편의 무능력 때문에 들병이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아내들의 이야기거나, 같은 이유로 아내를 들병이로 만들려는 남편의 얘기다. 폐병 든 남편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시골 주막을 찾아다니며 그 동네의 노총각과 위장 결혼을 일삼는 뜨내기 여자의 기구한 얘기가 펼쳐지는 「산골 나그네」는 비애를 느끼게 하지만, 아내에게 들병장수를 시키고자 남편이 아내에게 소리와 신식 창가를 가르치는 「안해」는 그와 반대로 무척 해학적이다.
내가 밤에 집에 돌아오면 년을 앞에 앉히고 소리를 가르치겠다. 우선 내가 무릎장단을 치며 아리랑 타령을 한번 부르는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춘천아 봉의산아 잘 있거라. 신연강 배 타면 하직이라. 산골의 계집이면 강원도 아리랑쯤은 곧잘 하련만 년은 그것도 못 배웠다. 그러니 쉬운 아리랑부터 시작할밖에. 그러면 년은 도사리고 앉아서 두 손으로 엉덩이를 치며 흉내를 낸다. 목구멍에서 질그릇 물러앉는 소리가 나니까 나중에 목이 트이면 노래는 잘할 게다마는 가락이 딱딱 들어맞어야 할 텐데 이게 세상에 돼먹어야지. 나는 노래를 가르치는데 이 망할 년은 소설책을 읽고 앉았으니 어떡허냐. 이걸 데리고 앉으면 흔히 닭이 울고 때로는 날도 밝는다. 년이 하도 못하니까 본보기로 나만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니 저를 들병이를 가르친다는 게 결국 내가 배우는 폭이 되지 않나.
들병이가 나오지 않는 B형 작품도 사정은 같다. 「소낙비」·「정조」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매춘으로 내몰거나 묵인하고 「가을」에서는 남편이 포기 각서를 쓰고 아내를 외간 남자에게 판다(「야앵」에 나오는 정숙의 남편은 그런 배포도 없었기 때문에 도리어 아내에게 버림받았다). 남편은 아니지만 「두꺼비」의 가족은 기생 노릇을 하는 딸 옥화에게 생계를 위탁한 처지고, 「따라지」에 나오는 소설가 지망생 ‘톨스토이’는 공장에 나가는 누나에게 얹혀산다. 인용될 「따라지」의 일절은 누나가 들병이만 아니달 뿐, B형 작품군이 A형 작품군과 하등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나가] 어쩌다 공장에서 뒤를 늦게 본다고 감독에게 쥐어박히거나, 혹은 재봉침에 엄지손톱을 박아서 반쯤 죽어 오는 적도 있다. 그러면 가뜩이나 급한 그 행동이 더욱 불이야 불이야 한다. 손에 잡히는 대로 그릇을 내던져 깨트리며
“왜 내가 이 고생을 해가며 널 먹이니. 응? 이놈아!”
헐없이 미친 사람이 된다. 아우는 그래도 귀가 먹은 듯이 잠자코 앉았다. 누님은 혼자 서서 제 몸을 들볶다가 나중에는 울음이 탁 터진다. 공장살이에 받는 설움을 모다 아우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면 하릴없이 아우는 마당에 내려와서 누님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고
“누님! 다 내가 잘못했수. 그만두”하고 달래지 않을 수 없다.
“네가 이놈아! 내 살을 뜯어먹는 거야.”
A형이거나 B형이거나 가족이 가족의 살을 뜯어먹는 것이 같다. 「따라지」의 남동생처럼 진드기를 붙으며 읍소를 하거나, 「소낙비」의 남편처럼 폭력을 휘두르거나, 혹은 「안해」의 남편처럼 사업가 기질을 발휘하든 어쩌든, 가족이 가족의 살을 뜯어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단편선을 책임 편집한 이는 말미에 단 해설에서, 김유정의 작품에 나오는 부부들은 “대단한 결집력의 부부애”를 보여준다면서 “그들의 생존 본능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고난도 감수한다”고 쓴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김유정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윤리적 파탄을 단순화하고 미화한다.
앞서 거론에서 빠졌던 김유정의 ‘금광 3부작’ 가운데 한 편인 「노다지」를 보면, 꽁보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더펄이에게 아래와 같은 제의를 한다.
“성님, 장가들라우?”
“어디 웬 계집이 있나?”
“글쎄?”하고 꽁보는 그 말을 재치다가 얼뜻 이런 생각을 하였다. 제 누이를 주면 어떨까. 지금 그 누이가 충주 근방 어느 농군에게 출가하여 자식을 둘씩이나 낳았다마는 매우 반반한 얼굴을 가졌다. 이걸 준다면 형은 무척 반기겠고 또한 목숨을 구해준 그 은혜에 대하여 손씨세도 되리라.
“성님. 내 누이를 주라우?”
“누이?”
“썩 이뿌우. 성님이 보면 아마 담박 반하리다.”
더펄이는 담말을 기다리며 다만 벙벙하였다. 불빛에 이글이글하고 검붉은 그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누이에 대하여 칭찬은 전일부터 많이 들었다. 그럴 적마다 속중으로는 슬며시 생각이 달랐으나 차마 이렇다 토설치는 못했던 터였다.
“어떻수?”
“글쎄, 그런데 살림하는 사람을 그리 되겠나?” 하여 뒷심은 두면서도 어정쩡하게 물어보았다. 그러고 들껍적하고 술을 따라서 아우에게 권하다가 반이나 엎질렀다.
“그야, 돌려 빼면 고만이지 누가 뭐랠 터유.”
꽁보는 자신이 있는 듯이 이렇게 선언하였다.
더펄이는 아주 좋았다. 팔짱을 딱 찌르고는 눈을 감았다. 나두 인젠 계집 하나 안아보는구나!
「산골 나그네」나 「가을」에 나오는 부부는 서로 짜고, 외간 남자의 재물을 취한 뒤,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 도주했다. 해설자는 그런 대목을 보고 부부애니 생존 본능이니 했겠지만, 「노다지」는 당대의 윤리가 붕괴되는 정황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통해 엿보게 해 준다. 자식이 둘씩이나 둔 채 잘 살고 있는 누이를 “돌려 빼면 고만”이라고 여기는 꽁보와 그런 결혼도 괘념치 않는 더펄이. 이들이야말로 「산골 나그네」나 「가을」에 대한 좀 더 공정한 해설자로, 이들의 막된 윤리는 미화된 부부애나 생존 본능이란 단순한 개념으로는 제대로 포획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설명을 찾아야 한다.
전봉관의 『황금광시대』(살림, 2005)는 1930년대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모티프로 금광이나 금광 열풍을 꼽는다. 채만식·이태준·김남천 등이 당대의 금광 열풍을 자기 작품 속에 담았고, 김유정의 「노다지」·「금」·「금 따는 콩밭」도 그 대열에 선 기념비다. 이는 김유정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변화에 깨어 있었다는 증거고, 그의 들병이류類 작품 또한 일제시대의 궁핍과 비등한 물질욕에 사로잡힌 그 시대 풍속에 대한 예리한 관찰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미화된 부부애와 생존 본능으로 김유정의 주인공들을 파악하는 것은, 해설자가 그토록 반대했던 반근대주의자이면서 토속성을 지향했던 김유정, 자본주의체제의 부적응자로서 김유정을 오히려 용인하는 꼴이다.
김유정의 인간 이해는 결코 순진하거나 소박하지 않았다. “원래는 사람이 떡을 먹는다. 이것은 떡이 사람을 먹은 이야기다”로 시작하는 「떡」은 마치 카프카의 우화처럼 잔인하다. 카프카의 작품을 지탱하는 부자갈등이 이 작품에서는 부녀관계로 치환되어 있는데, 그들은 서로 적이다. 일곱 살 먹은 옥이의 아버지 덕희는 동네에서 가장 가난할 뿐 아니라 게으른데, 그는 자신만 배부르게 먹으면서 딸이 뭘 먹는 것은 참고 보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저년 아무것도 먹이지 말고 오늘 종일 굶기라”고 말하는 게 버릇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서 부잣집 나리의 생신잔치에 간 옥이는 주위 사람들이 건네는 음식을 주는 대로 다 받아먹고 집에 돌아와 혼절한다. 죽기 일보 직전의 옥이는 침을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데, 소설의 마지막은 그런 옥이를 바라보는 아버지 덕희, 그리고 덕희의 심중을 분석하는 나(화자)의 해설로 맺어진다.
(…) 침이 또 들어갈 때에서야 비로소 옥이는 정신이 나나 보다. 으악, 소리를 지르며 깜짝 놀란다. 그와 동시에 푸드득 하고 포대기 속으로 똥을 갈겼다. 덕희는 이걸 뻔히 바라보고 있더니 골피를 접으며 어이 배랄먹을 년 웬걸 그렇게 처먹고 이 지랄이야 하고는 욕을 오라지게 퍼붓는다. 그러나 나는 그 속을 빤히 보았다. 저와 같이 먹다가 이렇게 되었다면 아마 이토록은 노엽지 않았으리라. 그 귀한 음식을 돌르도록 처먹고도 애비 한 쪽 갖다 줄 생각을 못한 딸이 지극히 미웠다. 고년 고래 싸 웬 떡을 배가 터지도록 처먹는담 하고 입을 삐쭉대는 그 낯짝에 시기와 증오가 역력히 나타난다. 사실로 말하자면 이런 경우에는 저도 반드시 옥이와 같이 했으련만 아니 놈은 꿀 바른 주악을 다 먹고도 또 막걸리를 준다면 물다 뱉는 한이 있더라도 어쨌든 덥석 물었으리라 생각하고는 나는 그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김유정은 서울에서 다니던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인 춘천 실레마을로 내려가 금병의숙이라는 야학당을 열었다. 서울을 무대로 한 몇 편을 제외한 많은 농촌배경 소설은 이 당시의 경험과 관찰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농촌배경 소설에서 그는 한 번도 화자로 등장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떡」은 유일하게 그가 화자로 등장한 소설인데, 그는 여기서 얼마나 냉정한 분석가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