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버드’는 스물다섯 살에 결혼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부터 갑작스레 독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학업도 아르바이트도 모두 팽개친 채, 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낮에도 어둡게 해 놓은 집안의 거실에서 레코드를 들으며 그저 위스키를 마셔댔다. 어느 여행가에 따르면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볼 수 있는 만취滿醉 현상은,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의 생활에도 여전히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 곧 절망적인 자포자기로 사람들을 몰아가는 근원적인 불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증거라고 한다.
대학원을 자퇴하고 장인이 얻어준 대학 입시 학원에서 2년째 강사 노릇을 하고 있는 버드는 자신의 내부에 무언가 결락되어 있다는 느낌과, 스스로 대면하기를 피해왔던 근원적인 불만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싶었고 아프리카 여행기를 쓰는 게 꿈이었는데, 결혼이 그 꿈을 가로막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아내가 첫 출산을 하는 날. 버드는 결혼과 함께 감옥에 갇히긴 했으나 아직 감옥의 문은 열려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 막 태어날 아이는 그 문마저 닫아 버릴 것이다.
아이와의 대면을 미루기 위해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불량청소년 패거리와 싸움을 벌였던 버드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 누웠다. 새벽녘에 그를 깨운 것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이상이 있으니 급히 병원으로 와달라는 의사의 전화다. 신생아는 두개골 결손으로 뇌가 두골 밖으로 빠져나온 ‘뇌 헤르니아(腦 hernia, 뇌 탈장)’ 상태로, 빠져나온 뇌를 밀어 넣는다고 해봤자 식물인간이 될 공산이 컸다. 뇌 전문의를 찾아 아이를 대학병원으로 옮기는 구급차에 동승한 의사는 “이 아이를 위해서도 당신들 부부를 위해서도 이 애는 빨리 죽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1964년 일본에서 출간되고 10개 국어로 번역된 『개인적인 체험』(을유출판사, 2009)으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지나칠 정도로 익살스러운 이 인물은, 까뮈가 쓴 『이방인』의 주인공과 많이 닮았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와 추모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처럼, 아이의 수술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옛 여자 친구를 찾아가는 등의 자유분방을 보여주는 버드 역시 실존이라는 병증을 앓는 인물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수작으로 꼽는 『개인적인 체험』은 겐자부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겐자부로는 버드와 비슷한 나이인 스물여덟 살에 뇌 탈장아를 첫 아이로 낳았다. 두개골 밖으로 나와 있는 뇌를 제거하는 수술에 성공하더라도 곧 죽을 가능성이 높았고, 생존하더라도 백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의 일본 사회는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이런 아이를 기르는 일에 굉장히 인색했다. 일례로 ‘정화淨化’를 중시하는 일본 신도神道는 서양 사람들이 종교적인 맥락에서 말하는 ‘정화/더러움’이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물질적이다. 그래서 유사 이래 일본에서는 질병, 죽음, 그리고 부상자를 포함한 죽은 자, 죽어가는 자와의 접촉이 사회를 더럽히는 행위로 여겨졌다. 게다가 이때는 아직 일본 경제의 기적이 시작되기 전인 1963년이었다. 그러니까 국가의 자원과 사람의 노력을 지체아를 위해 희생시킬 것이 아니라 국가의 다른 부족한 부분에 쏟는 것이 더 정당하다고 여기는 때였다.
위의 이유와는 퍽 다르지만 『개인적인 체험』에 나오는 버드의 옛 여자 친구 역시 수술을 결정한 그에게 “수술로 아기의 생명을 구한다고 한들, 그래서 뭐가 되지? 버드. 그는 식물인간이 될 뿐이라고 하잖아? 넌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이 세상에게도 전혀 무의미한 존재 하나를 살아남게 만드는 거야. 그것이 아기를 위하는 길이라도 된다는 거야?”라고 비웃는데, 그건 조소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충고라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작중의 버드도, 실제의 겐자부로도 모두 아이의 수술을 결정했다. 물론 거기엔 갈등이 없지 않아서, 훗날 겐자부로는 그 자신도 혼란에 빠져 “그 아이가 죽어 버리고 우리가 이 짐을 덜게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소설은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아이를 안고 버드 부부가 병원을 나서는 장면에서 끝나지만, 린즐리 캐머런의 『빛의 음악』(이제이북스, 2003)은 겐자부로 부부가 뇌 탈장아로 태어났던 아들을 키우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겐자부로는 의사로부터 아이가 앞을 볼 수 없을 것이란 말을 듣고(시력 0.03), 직감적으로 아이의 이름을 히카리(光=빛)라고 지었다. 히카리의 지능지수는 의사들의 예측대로 55~70에 머물렀고, 정신 연령은 8~12세에서 멈추었다. 겐자부로는 언어 소통과 인지능력이 뒤떨어진 아들을 키우면서 소설가란 “표현할 수단이 없는 사람들의 내적 목소리”를 듣는 “통역사”라고 여기게 됐고, “고통받는 인간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게 바로 문학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이런 설명들은 『빛의 음악』을 ‘백치 아들’을 문학적 화두로 삼았던 ‘겐자부로 소설 입문서’로 읽도록 한다.
일본에서는 겐자부로의 전체 작품을 ‘백치 아들 서사’로 부르기도 한다니, 아들의 존재가 아버지의 문학에 끼친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지금까지 감추었던 이 책의 부제는 ‘장애 아들을 작곡가로 키운 오에 겐자부로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은 156쪽을 전후로 ‘겐자부로 소설 입문서’이기를 그치고, 그의 아들인 ‘히카리의 음악 세계’를 펼쳐 놓는다. 여섯 살이 되어서야 겨우 짧은 말을 하기 시작했던 히카리는, 한 번 들은 음악을 고스란히 악보에 옮겨 적는 능력을 가졌다. 그가 열세 살 때 처음 작곡을 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이 한번 들었던 곡을 옮겨 적은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히카리는 스물아홉 살이 되던 1992년에 25곡의 자작곡이 실린 첫 음반을 냈고, 1994년에는 22곡이 실린 두 번째 음반을 냈다. 1997년 4월에 나온 어느 집계는 두 음반의 전 세계 판매량이 30만 장이라고 하고, 거기 따른 수입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버지의 인세보다 다섯 배가 많은 8백만 달러어치라고 한다. 겐자부로가 말한다. “그 상 덕분에 내 책의 판매량이 계속 늘고 있지만 아직도 히카리보다는 못합니다.”
발달장애 또는 유아기의 자폐증이나 정신분열증과 같은 중대한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이 그 장애와 현저하게 모순되는 재능을 지니는 희귀한 상태를 ‘천재백치(idiot savant 혹은 savant)’라는 하는데, 우리에겐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맡았던 역할로 잘 알려져 있다. 『빛의 음악』의 말미는 우리가 깊이 몰랐던 천재백치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지만, 그보다도 이 책은 소위 정상인들이 장애인을 껴안으면서 자신의 삶과 인격을 보완하게 되는 삶의 신비와,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와 감상에 작품 외적인 배경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게 얼마만큼 가능하며 순수한 객관성이라는 이상에 집착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함께 제공한다. 당부가 필요 없겠지만, 『개인적인 체험』과 『빛의 음악』은 함께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