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가브리엘 조르고의 『순교와 포르노그래피』(지식의 날개, 2008)를 읽다. - 서양 포르노그래피(도색문학)의 기원은 기독교다. 이게 이 책의 결론이다. 지은이는 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책의 서두에서 기원 2~5세기에 확립되고 번성한 성인전설과 성인전을 분석한다. 하지만,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자.
우리는 기독교가 유럽에 전파될 당시, 교부와 교회의 몫이 절대적이었을 거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유럽 여러 민족들에게 새로운 신인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도 낯설어서 ‘다른 인간’의 인도를 받아야 그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존재였다. 즉 세속적인 삶을 포기하고 거룩하게 순교함으로써 하느님께 약속받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심어줄 친근한 모델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독교가 유럽 대중들에게 파고들어 갈 때, 성화와 같은 시각 매체와 성인전기나 전설이 크게 활약했다. 그때는 책이 보물처럼 귀했을 뿐 아니라, 성서는 일반인들이 읽을 수 없는 라틴어를 씌어져 있었다.
기독교인은 개인적인 동기에서 순교자 이야기를 기록해 신이 준 고통과 성인의 죽음을 기리고 그를 본받아 순교하려 했다. 육체에 대한 경멸과 기독교적 성도덕은 성인전설을 통해 널리 퍼졌는데, 그 어떤 교리서보다 파급력이 강했다. 전설을 담은 책은 재미있을 뿐 아니라 삽화가 있어 읽기가 편했기 때문이다. 또 공공장소에서 낭독되거나 연극으로도 꾸며져 학자의 논문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생생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었다. (23쪽)
위의 인용은 전후, 두 개의 주제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기독교 교리가 육체를 경멸하는 금욕적인 성애관을 가졌다는 것이고, 후자는 기독교를 널리 퍼뜨린 것은 교리서보다 성인전설이었다는 것.
‘성인聖人’의 이야기라니까 갑자기 엄숙해 지면서, 무조건 믿어야 할 것 같지만, 사람의 입과 문자로 전해진 서양의 기독교 성인 이야기는 ‘전설 따라 삼천리’처럼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들이다. 성인 이야기는 기원이 어디서부터였든, 역사성이나 진실성 여부를 중요시하지 않았다. 현대의 추리소설이나 연애소설처럼 인기가 있었던 종교영웅들의 성인전기는 당대의 대중들에게 신앙심을 키우고 영적 진실을 널리 알릴 목적에서 유포된 ‘선전문학’으로, 대부분의 성인전설과 성인전의 기본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박해를 자세히 묘사한다. 방방곡곡에서 기독교인 색출작업에 들어가 많은 신자가 병사의 손에 넘어간다. 그중에는 성인전설에 등장하는 영웅도 포함된다. 그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재판관에게 끌려가 신앙을 고백하고 끔찍한 고문을 이겨 낸다. 결국에는 죽음을 맞고 그의 무덤은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가 된다. (34쪽)
거개의 성인전은 피가 튀고 살이 떠는 고문 이야기들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현세와 육체를 내세와 영혼보다 저열한 것으로 보았다. 거기다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 순교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고, 그게 안 되면 하다못해 고행이라도 해야 했다. 기독교의 육체 혐오는 어제 읽은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의 책에도 강조되어 있었던바, 고행과 금욕을 통해 육체는 정화되고, 육체가 파괴되면서 비로소 영혼이 드러난다. 가벼운 유머 하나. 그리스 시대의 신이나 영웅들은 정액을 흩뿌리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면(출산), 기독교의 ‘새로운 영웅’들은 자기 피와 살점을 흩뿌리는 것으로 영웅임을 증명한다(순교).
성인전설에 대한 이해는 서양 초기의 세속문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초기 서양문학의 주를 이루는 것은 대부분 성인열전의 영향을 받은 영웅담이다. 아래의 두 인용 가운데 앞선 것은 인적 구성의 공통성을, 뒤엣것은 내용의 공통점을 지적한다.
중세 중반까지 이러한 글의 저자는 대부분 당시 교육의 중심인 수도원 출신이었다. 나중에 수도원을 떠난 작가도 있으나 어쨌든 그들은 수도원에서 배웠다. 민족어로 쓰인 성인열전은 문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라틴어로 씌어진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민중어로 성인 전기를 쓰는 수도사도 라틴어로 씌어진 성인열전을 알았고, 라틴어 성인문학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거나 무작정 모방하려 한 것으로 짐작된다. (81쪽)
후대에 등장한 세속문학은 기독교 문학의 전통을 계승해 선과 악의 인물을 명확히 구분했다. 고대 게르만 설화는 기독교적 색채로 재구성되고 그 속에 새로운 정의와 논리가 명시되었다. 성인전설을 토대로 지난 수 세기 동안 서양의 영웅상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결론은 초기 그리스도교 금욕 수행자와 서양의 영웅은 성격이 같다는 점이다. 영웅의 승리는 현세가 아닌 저세상으로 전이된다. 현세를 살아가는 세속의 인간이 볼 때, 승리를 쟁취한 영웅은 상상과 꿈의 세계에 존재하며 영원한 기쁨과 젖과 꿀이 넘치는 하늘나라에 산다. 선한 주인공은 현실에서는 모든 면에서 뒤처지고 지위와 재산, 명망까지 잃어버리지만, 영적으로는 크게 성장한다. 그리고 영적인 능력은 천국에서 누릴 명예를 약속해 준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기에 포기할 것도 없는 기독교 신자에게 선한 주인공이 보여주는 덕행은 천국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한다. 기독교의 덕목의 장점은 가난한 자나 병든 자, 종살이하는 이에게조차 천국의 삶을 영위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데 있다. (82쪽)
위 인용 가운데 뒤엣것은, 기독교 성인열전이 유럽의 초기 세속문학에 끼친 절대적인 영향을 자세히 열거하면서, 성인열전의 주인공과 세속문학 속의 주인공이 똑같은 영웅상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대 서양 문학에 나오는 ‘안티 히어로’들의 초상이, 지은이가 말한 공통된 영웅상과 일치하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현실에서는 패하지만 이상에서는 승리하는 현대의 안티 히어로들은, 그러므로 현대의 성자들이 아니신가?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서양 문학이 꼭 지은이가 말한 것처럼, 세속 가운데서 성인들이 지키고자 했던 영적 가치를 간직하는 쪽으로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문화에 기원한 서양식 포르노그래피가 바로 그 뼈아픈 증거물이다.
이 책 『순교와 포르노그래피』에는 성인과 순교자들이 당했던 고행기가 드물지 않게 예시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사드의 『소돔 120일』에 나오는 풍경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도착의 모든 풍경이 성인열전에 담겨 있는 것이다. 당대의 대중들은 성자와 순교자들의 육체가 핍박받는 이야기를 듣거나 삽화가 곁든 글을 보면서, 육체에 대한 영혼의 승리를 믿어 마지않았다. 한편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인간에게 육체가 있다는 것과 숨어 있는 도착적 관능을 동시에 일깨웠다. 포르노그래피(도색문학)의 기원은 기독교라는 저자의 결론은 이런 역설에서 도출된 것으로, 피가 튀고 살이 떠는 성인전이나 『소돔 120일』에 나오는 도착의 명세서는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그런데 과연 성인전을 읽는 당대의 독자들이 자신의 독서물에 포르노그래피적 환상을 이입했을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아무 죄 없는 순교자를 사형집행장으로 끌고 갈 때, 혹은 이교도가 성녀를 벌거벗겨 매질할 때,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자극은 곧 종교의식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성적으로 통제되는 게 아닐까?
이론상으로 볼 때 감정이란, 독자가 자신의 삶과 경험, 희망을 책의 내용과 결부시키지 않을 때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상적인 방법으로 글을 읽는 독자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글을 통해 임의적으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론은 삶의 이야기, 소망, 경험이 없는 이상적인 독자가 있을 때만 성립한다. (36쪽)
그게 종교 서적이든 이념 서적이든 또 다른 그 무엇이든, 책을 통한 세뇌란 독자가 아무런 감정이나 체험이 없는 백지상태일 때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선전문학으로서의 성인전기는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그것을 읽는 독자의 포르노그래피적 환상과 접속하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성인전설이나 성인전의 바람직한 결과는 종교적인 자극을 유발하는 것이었지만, 원래 감각적이었던 이 장르는 예상치 못한 부분을 자극하기도 했던 것이다.
포르노그래피와 성인전설은 물과 기름처럼 보이지만, 단도직입적인 사건 전개, 순교(박해) 상황이나 성행위 상황의 축제성, 남녀를 불문하고 순교자는 수동적이고 여성적으로 묘사되는 성인전과 ‘남성 가해자/여성 피해자’로 성 역할이 나누어진 포르노그래피, 성인전의 회유와 포르노그래피의 유혹, 바탕에 깔려 있는 다른 존재와 하나가 되려는 욕망, ‘작은 죽음’이라고 불리는 오르가슴과 ‘위대한 죽음’이라 불리는 순교로 맺어지는 결말…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두 장르가 같은 뿌리라는 것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다.
순교에서도 포르노그래피에서도 육체와 정신은 결합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가해자와 희생자, 승자와 패자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정하고 그 경계를 심화시키려 온갖 노력을 쏟아 붓는다. (229쪽)
포르노그래피와 성인전설은 모두 기독교 문화의 산물이다. 두 장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기독교적인 육체혐오다. (268쪽)
서양의 포르노그래피가 기독교의 육체 혐오와 영육의 부자연스러운 분리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여성 육체에 경멸을 표할 뿐 아니라, 육체를 멸절하는 사드식의 포르노그래피가 나왔을 것이라는 짐작도 해 볼 수 있다. 이 대목은 비교문학의 재미난 주제로, 동양의 포르노그래피와 비교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전설과 포르노그래피가 같지 않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기독교적 순교에는 사드가 말하는 진정한 사디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자는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신앙을 포기하고 목숨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교자의 자유의지는 성인으로 시성되는 기본조건이다. 그러나 사드가 말하는 사악한 사디스트가 잔혹한 유희를 즐기려면 반드시 희생자가 반항해야 한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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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