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나카무라 우사기의 『프러포즈는 필요 없어』(책이좋은사람, 2007)와,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황매, 2004)를 읽다. -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모두 한심한 책 세 권을 읽고 나서, 내친김에 같은 작가의 소설 『프러포즈는 필요 없어』를 읽었다.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속어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의 ‘릿lit'이 합성된, 직장생활을 하는 20~30대 여성을 겨냥한 대중소설을 ‘칙-릿chick-lit’이라고 한다는데, 이 소설은 딱 거기에 맞는 소설이다.
패션 브랜드를 섭렵하느라 잔뜩 빚을 진 작가의 경력을 미리 안 까닭에, 다나카 야스오의 『어쩐지, 크리스탈』을 방불케 하는 작품을 보게 될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상당히 어긋났다. 수족관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며 남자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 자라는 관상어(열대어)가 될 것인가, 넓은 바다를 끊임없이 헤엄치는 회유어回遊魚가 될 것인가. ‘결혼이냐, 주체적 삶이냐’ 사이에서 갈등하는 스물아홉 살 직장 여성의 얘기였던 것이다.
스물아홉 살 여주인공 오가타 치즈루가 스물세 살짜리 후배 여사원을 보면서 생각하는 세대론은 흥미롭다.
우리 세대는 ‘자기 탐색’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으면 참된 행복을 잡을 수 없다고. 본인의 진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거짓 인생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거의 맹목적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노자키 가오루의 세대는 또 다르다. 진짜 자신은 어디에도 없고 그런 것에 굳이 신경 쓸 필요도 느끼지 않는 세대. 아아… 그래서 그렇게 쉽게 직업을 바꾸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거로군.
아마 노자키 가오루는 ‘열대어족’이 될지 ‘회유어족’이 될지 그런 것은 고민하지도 않겠지. 장소에 따라, 상대에 따라, 기분에 따라 열대어 흉내를 냈다가 회유어 흉내를 냈다가 자유자재로 자신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211~212쪽)
스물세 살짜리 여자 후배의 ‘정체성 없는 정체성’은 여주인공이 사귀고 있는 연하남의 인생관과도 통하는 데가 있다. “자기주장을 억지로 밀고 나가기보다 상대에게 맞춰 사는 게 편하다는 신야. 그것도 코스플레이 인생일까?” (212쪽)
여자 후배와 연하남의 반대편에 여주인공의 어머니가 있는데, 어머니는 내면에 숱한 가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의 ‘표정’만 가지고 일생을 연기해 온 세대다.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처음 읽은 건, 1년 전 단골로 다니던 헌책방 의자에서였다. 그런데 거의 1년 만에 이 책이 다시 보이기에, 또 읽었다. 『프러포즈는 필요 없어』에 분류된 세 가지 정체성 가운데 어느 하나에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의 남자 주인공을 끼워 넣으려고 하면, 넣을 데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가수 외에 모든 것에 무감각한 고등학교 1학년생 니나가와의 은둔성 외톨이 행태는 ‘진짜 자기’와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따’가 두려워 여기저기 ‘절친’을 맺는 또래의 학생들이 자기 정체성에 더 가까운 것도 아니다.
여주인공 하츠는 여느 학생들이 그렇듯이 따돌림을 두려워한다. 그런 조바심이 74쪽에 나와 있다.
또다시 있을 곳이 없어졌다. 이제부터는 책상에서 혼자 먹는 일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나날이 이어질 것이다 (…) 니나가와가 반 아이들에게 그런 대우를 받고 있는 건 눈치챘지만, 설마 나까지 그런 취급을 받으리라고는.
그러나 하츠는 따돌림이 두려워 억지 친교를 맺지도 않는다. 그건 78~79쪽에.
눈으로 우리 반을 찾고 있는데 키누요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가가 보니 키누요 주변만 줄이 일그러져 있다. 아이들은 또 그룹으로 똘똘 뭉쳐 있다. 리더격인 츠카모토를 중심으로 작은 원을 그리고 있다.
“슬라이드 같이 보자 이리로 앉아.”
키누요가 엉덩이를 움직여서 한 사람분의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들의 원이 시력 검사판의 C를 뒤집어 놓은 마크처럼 되었다. 키누요 옆에 앉아 있는 관악부 여자아이도 서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친근하게 웃는 얼굴로 반기듯 한다.
키누요가 뭐라고 주입을 시켰겠지.
우리 반에 하세가와 하츠라고 있잖아. 걔하고 중학교 때 친구였는데, 아직 우리 반에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아. 좀 안돼 보이는데, 우리 그룹에 끼워주면 안 될까?
이런 식이었을까. 말도 안 돼.
내어준 자리에 앉지 않고 원을 피하듯 뒤로 돌아가 줄을 서자, 키누요는 왜 - 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렇지만 나를 쫓아오거나 하지는 않고 원 안에 눌러앉은 채다. 관악부 여자아이가 보라는 듯 키누요의 어깨를 감싸 안고 위로한다. 키누요는 곧 누그러진 어른스러운 표정이 되어 무슨 일인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한기가 든다. 매일같이 쉬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함께 도시락을 먹고,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나를, 새로 생긴 친구와의 우정을 보다 돈독히 하기 위한 도구로 쓰고 있다.
니나가와의 은둔성 성벽(히키코모리)은 따돌림에 대한 과잉 방어로 해석될 수 있지만, 하츠는 은둔이라는 과잉 방어 속에 숨지 않는다. “난 중학교 때 신물이 났어. 친구 따위”(85쪽)라고 말하는, 하츠에겐 따돌림 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는 또래들의 잔꾀가 보일뿐더러, 어른들마저 그렇다는 게 간파된다. 그건 45쪽.
(…) 선생님은 여자들이 모여드는 게 기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기쁜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보인다. 그리고 선생님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날아오를 듯한 표정이 될 때마다, 생기가 넘쳐흐를 때마다, 나는 스스로의 삶의 방식에 대해 자신을 잃어간다.
길게 인용된 세 대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이 윗대목이다. 여주인공이 “내게는 그것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내게 무엇이 보인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만의 기준이 서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 비추어진 세계를 보며 “스스로의 삶의 방식”도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다리를 가리켜 “씩씩한 내 다리”라고 말하는 여주인공은, 그 강한 다리로 자신과 싸우는 육상 선수 활동에 임하면서, 니나가와의 ‘고양이처럼 움츠린 등’을 차주고 싶어 한다.
이, 어딘가 쓸쓸하게 움츠린, 무방비한 등을 발로 걷어차 버리고 싶다. 아파하는 니나가와를 보고 싶다. 갑자기 솟아오른,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이 거대한 욕망은 섬광과도 같아서 일순 눈앞이 아찔했다. (65쪽)
하츠가 처음 느꼈다는 ‘거대한 욕망’은,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자, 따돌림이 두려워 임기응변으로 맺게 되는 억지 친교와는 다른, 진정한 우정의 갈구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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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