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김명호 교수라면 잘 모르지만, ‘석궁 시위’의 장본인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분이 많을 것이다. 앞길이 밝았던 한 수학자가 석궁을 들고 자신의 사건을 판결했던 법관의 집 앞까지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서형의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 2009)은 ‘석궁 시위’의 원인이 된 김명호 씨의 교수 재임용 탈락 경위와 거기에 반발한 김명호 씨의 교수지위확인 소송의 전말부터 추적한다.
1977년에 내려진 대학교수 재임용 제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대학교원으로서 부적격하다고 인정되지 않은 한 재임용이 당연히 예정”되어 있다는 취지였다면, 1987년의 판결은 “임용된 교원은 그 기간이 만료된 때에는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당연히 퇴직된다”는 식으로 법률 해석이 변경됐다. 그런데 종전의 대법원 판결을 변경할 경우 3분의 2 이상의 대법관 합의체에서 판결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기욱 변호사의 말을 빌리면, 법원이 법원 조직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런 위법적 해석 변경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들이 법에 호소할 때마다, 재임용 여부는 임명권자의 자유재량이며, 재임용 탈락 결정 및 통지는 임기 만료만으로도 충족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왔다. ‘석궁 시위’가 발생한 중요한 원인은, 법원 스스로가 자신의 존엄을 세우지 못하고 법을 어긴 데에 있다. 거기다가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성균관대학교 측이 김 교수의 재임용 탈락 사유로 제시한 ‘교육자의 자질 부족’ 증거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거기엔 자의적이거나 허위 사실로 볼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재판부는 김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하게 된 구체적 맥락을 보려 하지 않았다.
다음은 오리무중과 같았던 ‘석궁 시위’의 진실. 모든 형사 사건은 피고의 범죄 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제시돼야 하고, 판사는 검사가 제시한 증거의 타당성에 따라 유·무죄를 판결한다. 그런데 ‘석궁 시위’의 경우, 박홍우 판사가 자신의 복부에 박힌 것을 뺐다는 ‘부러진 화살’도 없을 뿐더러, 그가 입고 있던 옷에 묻은 괴이쩍은 혈흔조차도 그게 누구의 것인지 아예 조사를 하지 않았다. 피고를 기소한 검사는 신바람을 내서 피해자의 혈흔이 묻은 옷가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어야 하지 않았는가? 검사는 더도 덜도 아닌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는 국가기관”이니 말이다.
한국인이라면, 법은 멀리하면 할수록 좋다는 말을 누구나 한번씩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을 읽고 난 소감은 그와 다르다. 법에 대한 기본 상식을 알면 알수록 관료적이고 권력 일방적인 ‘법치사회’를 살아가는 데 유리하다. 초·중·고등학교의 국민윤리 교과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잘 모르지만, 국가는 국민의 준수 의무이기도 하면서 국민 개개인의 권리인 법에 대해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
--------------------
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